올해 3월 결혼을 앞둔 김모 씨(28)는 최근 서울 송파구 잠실의 한 빌라에 전셋집을 겨우 구했다. 방 2개에 화장실이 1개 있는 전용면적이 40㎡가량 되는 작은 집이었지만 집주인은 1억3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고심 끝에 김씨는 반(半)전세로 돌리기로 하고 보증금 7000만원에 월 20만원 조건으로 계약을 마쳤다.

김씨는 애초 출·퇴근이 편한 강북의 아파트에 전셋집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성동구 금호동 등 도심과 가까운 지역에서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김 씨가 가진 돈으로 아파트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공급면적이 79㎡ 정도인 아파트도 전세금은 2억원 가까이 됐다.

김씨는 “서울 아파트 전세금이 너무 올랐다”며 “아파트가 아닌 다세대주택이지만 1월 초부터 부지런히 쫓아다닌 덕분에 한시름 놓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전세금 상승세는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지만, 서울지역 빌라·다세대주택 전세 시장은 오히려 국지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심으로 접근이 비교적 쉬운 지역에서는 겨울철 비수기인데도 전세금이 꾸준히 오르고 전세 물건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그동안 치솟았던 아파트 전세금 때문에 신혼부부 등 전세를 구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와 다세대주택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치솟은 아파트 전세금…빌라·다세대로 눈길 돌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일대. 이곳은 2500가구에 달하는 고덕시영아파트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올해 전세난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강남으로 이동이 비교적 편해 전세 시장에서도 인기 지역에 속한다.

국토해양부는 올해 상반기 중 고덕동 인근 지역에서 5200가구의 입주가 예정된 만큼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이미 이 지역 전세시장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강동구 고덕동의 전세금은 지난해 가을 이후에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 지역 공급면적 80㎡(25평)대 S 아파트 전세금은 1억8000만원 안팎이다. 아파트 전세금이 오르자 빌라·다세대주택으로 사람들이 몰리며 전용면적 50㎡(15평)대의 소형 다세대 주택 가격도 1억2000만~1억3000만원 정도로 작년 10월보다 2000만~3000만원 정도 상승했다.

고덕동 M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전세는 거의 없다”며 “빌라·다세대주택도 물건이 이따금 나오지만, 신혼부부 수요가 워낙 많아 전셋집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이 지역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본격적인 이사철인 3월이 가까워 오면 전세시장은 더욱 불안해 질 것으로 내다봤다.

◆ 도심 접근성 뛰어난 지역 국지적 전세난 조짐

“이 근처 다 돌아봐도 전세 매물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수리도 잘 돼 있고 깨끗한 빌라가 하나 있긴 한데. 버스정류장서 10분 정도 비탈길을 올라가야 해요. 그거라도 괜찮으면 보여줄게요.”(불광동 J 공인중개사무소)

고덕동 일대 뿐만 아니다. 종로, 강남, 여의도 등 서울 주요 도심으로 출·퇴근하기가 비교적 쉬운 배후 주거 지역의 전세 시장은 올 초부터 꿈틀대고 있다.

은평구 불광동의 경우 방 3개에 화장실이 딸려 있는 신축빌라의 전세금은 1억2000만~1억4000만원 정도다. 버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과 가까운 곳의 매물은 동난 지 오래다.

이곳은 아파트가 많지 않아 예전부터 빌라 전세 물건이 많았던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홍제동 등 인근 아파트 전세금이 오르면서 전세 수요가 이 지역까지 확산하면서 전셋집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구로구 고척동과 관악구 봉천동 빌라·다세대주택 전세금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관악구 봉천동 방 3칸짜리 빌라는 1억6000만~1억7000만원 안팎으로 작년 가을보다 3000만원가량 올랐고 구로구 고척동 역시 2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 도시형생활주택 공급 많아…전세난 해결에 큰 도움 안 될 것

문제는 빌라·다세대주택의 전세난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주택 공급 부족이 여전히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6371가구로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는 최근 2~3년간 급증한 다세대주택 건설이 전세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 지난해 서울에서 준공된 주택 6만5093가구 가운데 다세대주택은 2만4307가구로 전체의 37.3%를 차지해 2010년(33.2%)보다 4.1%포인트 늘어났다.



그러나 다세대주택 중 상당수가 1인 가구를 위한 도시형 생활주택이라는 점은 우려스럽다. 국토부는 올해 강동구 인근 지역에 입주예정 물량이 5200가구에 달하며 다세대·다가구, 오피스텔이 3183가구가 공급돼 전세난을 해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중 3분의 1이 넘는 1160가구가 도시형 생활주택과 소형 오피스텔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윤달이 끼어 있어 결혼을 서두르는 신혼부부가 많아 예년보다 전세난이 일찍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데다 윤달이 끼어 있어 전세난이 보다 일찍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집주인들도 많아 수요자들은 전셋집 찾기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