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전망 ]건국 60주년 맞은 남-북-이스라엘

편집자 주: 이 글은 김삼석 군사외교 평론가가 통일뉴스에 기고한 오바마 정권 대외 정책 전망을 밝힌 글이다. 부분적으로 본지의 견해와 다른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의 유태계 핵심지배세력들에 대한 분석에 일리가 있으며, 특히 북과 이란의 핵무장을 막을 길이 없는 미국을 절박한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어 여기 소개한다.
사실, 이 글에서 지적한 대로 미국이 북과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런 나라들의 완전한 핵무장의 길을 막을 길이 없다. 만약 북의 2차핵시험이나 이란의 핵보유 선언과 같은 조치가 취해질 경우 미국은 그것을 막을 수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 지위는 이 글에서 지적한 대로 골목깡패수준으로 완전히 몰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영토가 작아 단 한발의 핵무기로도 전멸을 면할 수 없는 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의 경우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시아파 이란의 핵무장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가 많은 중동 각 국의 핵무장을 촉발할 것이며 그 핵물질이 이스라엘에 대한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품고 있는 팔레스타인들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핵전쟁이 나기도 전에 불면증으로 시름시름 앓다 다 죽게 될 것이다.
미국을 지배하는 핵심 세력은 유태인들이다. 그들은 일본, 우리나라 등 친미국가들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을 희생해서라도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받으려고 할 것이 자명하며 결국 북이나 이란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는 바로 그 유태계 미국 핵심지배세력과 한 판 승부를 펼치고 있는 북의 의지도 어느 정도 밝혀져 있으며 이런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정부와 국민이 어떤 정책을 선택해야하는지에 대한 화두도 던지고 있다.
김삼석 군사외교평론가가 2001년에 같은 주제로 쓴 1편도 첨부하였다. 

▲ 김삼석 군사평론가     ©자주민보 박준영기자



김삼석(군사평론가, 반갑다 군대야 지은이)
2008년 12월 21일 hiarmy3@hanmail.net


 이 글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유대계가 조종하는 미국의 중동전략과 동북아 전략이라는 시각이 아니라, 동방의 한(조선)민족의 대미전략과 이스라엘 전략의 일부에 관한 글이다. 이번 손자병법으로 본 북과 미국의 군산복합체 2편은, 오래 전인 2001년 5월 26일 부시 정권 취임 3개월경 <통일뉴스>에 기고한 ‘손자병법으로 본 미 군산복합체와 북한’에 이은 글이다.



미국의 변화(?)가 시작되나


변화를 내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 당선이후 미국 변화에 대한 기대가 전 세계를 휘젓고 있다. 남측의 서점에 오바마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탄생 배후는 부시라는 말이 있듯이 미국의 2008년 대선 이벤트는 몰락하는 미국의 궁여지책 퍼포먼스다. 침몰하는 타이타닉에 선장만 바꿔 탔을 뿐이라는 게 필자의 지적이다. 그 타이타닉 옆에 실용주의를 주창하는 한 MB 돛단배가 언제 파도에 휘말릴지 모르는 운명에 놓여 있는 형국이다.


2008년 하반기 미네르바가 인터넷을 휘저었다면 박영희(73) 건국대 명예교수(한국행정학회 회장역임)는 이미 월간 <민족21> 5월호에서, 재정경제학적으로 미국의 본격적인 쇠락과 경제위기를 예견하면서 중국의 융기, 북의 핵시험 뒤 2008년 이후 북‧미의 대타결을 예견한 바 있다.


박영희 교수는 결론적으로 재정경제학적 시각에서 북‧미 핵공방은 미국의 참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100년 전 동북아 정세가 ①중국의 국력 쇠퇴, ②일본의 부국강병, ③조선의 나약함 등에서 비롯되었다면, 현재의 지각변동은 ①미국의 국력 쇠퇴, ②중국의 화평굴기(和平堀起), ③북의 핵무기 개발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보았다. 재정경제학적 시각에서 지각변동의 역사적인 단초는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이 열었다고 진단한다.


1. 미국 연방정부 회계검사원의 Walker 원장이 파리에서 나오는 영자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2007년 8월 21일 기고한 기사, 즉 “미국은 로마제국의 운명을 답습하고 있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2006년 말 현재 연방정부가 안고 있는 부채는 50조 달러(단기부채 9조 달러, 장기부채 41조 달러)이다. 이 중에서 절반은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서 발생한 것이다. 다음 대통령과 의회가 들어서는 2009년 1월 말까지 환골탈태의 개혁을 시급히 하지 않으면 미국은 2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정적자를 축소해서 발표하기 때문에 회계검사원장인 자기가 적자재정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2. 미국 경제대통령으로 18년간 군림했던 유대계 펄 그린스펀 전 의장은 2007년 9월 하순에 펴낸 회고록에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큰 바다(ocean of debt)와 같다고 비유하였다.


3.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논설위원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유일 초강대국이던 미국이 작은 나라 북의 핵실험을 막지 못함으로써 세계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지적하였다.


4. 미국의 월 스트리트의 경제전문가들인 Bonner와 Wiggin이 2006년 여름에 펴낸 책은 이렇게 쓰고 있다. 대제국이 되어버린 미국은 역사상 과거의 제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망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서 그 길로 매진하고 있다. 경제를 파산으로 몰고 가면서 세계도처에 적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Walker가 지적한 로마제국 멸망의 3가지 원인은 ①국민들의 가치관의 타락, ②군사력의 과잉확장(overreach), ③정부재정의 파탄 등이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미국 추락의 3가지 원인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①미국민들의 가치관의 타락, ②군사위기 ③경제위기 등이다. 다만 김상일 전 한신대 철학과 교수의 지적대로 그래도 미국의 넓디 넓은 농업기반 때문에 멸망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지적이 있으나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는 게 다행일 정도다.


2006년에 무슨 일이?


미국의 2006년도 재정적자는 2,480억 달러, 경상수지적자는 8,570억 달러로 그 합계는 1조 1,000억 달러에 달하고 이러한 적자를 메우기 위하여 미국은 매일 30억 달러를 외국에서 꾸어오거나 자산을 해외에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가 되었다고 박영희 명예교수는 지적했다.


이처럼 2006년을 본격적인 시점으로 총기난사 등 미국민들의 가치관의 타락은 물론이고 미국의 군사위기와 경제위기로 표현되는 쌍둥이 양대 위기가 동시에 시작된다. 이 시점에 미국의 추락을 염려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위에서 토머스 프리드먼 논설위원의 지적대로 미국의 군사위기는 북의 2006년 7월 5일 미사일 실험과 10월 9일 지하핵시험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2006년은 미국과 이스라엘을 지켜 낸 핵-미사일 독점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해가 된다.


다시 말해 2006년은 미국이 2등국가, 2류국가로 전락하는 해가 된다. 북미관계에서 시간만 끌어 온 부시 정권의 자업자득이다. 미국이 2등국가, 2류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유대계인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에게 미국의 정치경제적 위신이 흔들리는 일로 재산의 감소를 뜻하는 것이다. 필자가 자주 언급하는 미 제국이 전국구 깡패에서 골목길 깡패로 추락하는 것을 뜻한다. 전국구 깡패에서 골목길 깡패로 추락한다는 것은 세계를 무대로 무기 장사를 해야 먹고사는 유대계 군산복합체가 무기를 겨우 팔아먹는 녹슨 주먹으로 추락한다는 것을 뜻한다.


2006년 7월 5일, 북의 미사일 실험 성공과 함께 공교롭게도 이날 LA타임즈는 이란 국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북 관계자들한테서 환영을 받았으며, 평양 주재 이란인 10명이 미사일 발사를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유대계에게 더욱 충격적인 것은 10월 9일 북의 지하핵시험이다. 이를 계기로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은 180도 유화적으로 바뀐다.


2006년 10월 9일 북의 핵시험 뒤 3개월만인 2007년 1월, 유대계 헨리 키신저가 리처드 홀부르크를 통해 중재, 성사된 2007년 2월 13일 베이징 6자회담에서 미국은 굴욕적인 북미관계정상화를 약속하는 2.13초기 합의문에 서명하고, 북의 재차 핵시험 협박에 밀린 2008년 10월 11일,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20년 9개월여만에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수밖에 없는 날까지 미국이 계속 밀렸다. 2008년에는 미국의 군사위기, 경제위기가 합병증이 되어 버렸다.


2006년부터 피어난 미국의 군사위기와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쌍둥이 위기는 유대계 군산복합체가 2008년 타이타닉에서 선장을 흑인으로 바꾼 변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양대 위기로 끝없이 추락하는 유대계 미국과 이스라엘 군산복합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 지 유대계 미국-이스라엘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심부름꾼인 리처드 홀부르크 전 미국 유엔대사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부장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1990년대 초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동방의 작은 나라와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지난 2008년 5월 8일은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은 날이다. 200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다. 중동의 한 작은 나라와 동방의 한 작은 나라가 각각 건국 60주년이지만 한 나라는 미국을 움직이는 나라이고, 한 나라는 알다시피 미국의 51번째 주다.


그러나 동방에는 작은 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남에 대한민국이 있고, 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 북에서는 2008년 9월 9일에 건국 60주년(9.9절)이었다.


2008년 6월 1∼4일 미국 워싱턴 DC의 컨벤션센터에서는 신의 조직이라 불리우는 에이팩(AIPAC: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의 연례행사가 열렸다. 오바마 후보가 비서진들과 함께 탄 리무진도 컨벤션센터 건물 앞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오바마가 미 민주당의 마지막 경선인 몬타나와 사우스 다코타의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고, 미네소타에서 승리를 선언하고 부랴부랴 이날 워싱턴 에이팩의 행사에 쏜살같이 달려온 것. 오바마 의원이 후보 확정 후 첫 공식일정이었다.


그는 600만 미국 내 유대계를 대표하는 7,000여명의 사람들 앞에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존속할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오바마에 기대를 걸었던 전 세계의 아랍인들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이날 오바마는 중동 지역의 모든 현안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가장 강력하게 밝혔다.


그는 또 "내 마음의 진정을 담아서, 여러분의 친구로서 말한다. 이스라엘의 안전은 절대로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란의 핵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이 연설에서 그야말로 친 이스라엘 강경파로 화끈한 변신을 했다. 이 행사에는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매케인 대통령 후보도 초청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오바마 의원, 공화당의 존 매케인 대선 후보가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전국위원회의 공동 부위원장 자리를 수락했다.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모든 후보들이 바로 이 에이팩에 찾아와서 충성 서약을 하고 지지를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뒤 이스라엘을 방문한 오바마 후보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는 등 틈만 나면 유대계와 이스라엘계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친 이스라엘 성향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강제로 고향을 등져야 했던 팔레스타인들은 "유대인들은 우리가 살아 온 땅 위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것이며, 그들은 건국일을 점령의 날로 기념해야 한다"며 이스라엘 건국 60돌을 `재앙(알-나크바)의 날로 기념했다.


유대계와 이스라엘계 유권자들에게 오바마 후보가 친이스라엘 발언을 쏟아 내던 워싱턴 DC의 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 연례행사 한 달 뒤 2008년 7월 9일 이란은 사막지대에서 페르시아만을 향해 1톤짜리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샤하브-3 미사일 등 중·장거리 미사일 9기를 쏘아 올렸다. 10일에도 미사일 발사실험은 이어졌다. 에이팩의 연례행사가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왔듯, 이란의 미사일 발사실험도 세계 군사외교가를 뒤흔들었다.


부시의 패권정책에 구멍을 내며 2006년 7월 5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춘 북의 수십기의 미사일 발사실험, 10월 9일에 지하 핵시험을 펼쳐 미국과 유대계의 핵, 미사일 독점전략을 뒤흔들어 놓았던 것처럼, 이같은 전례를 이란이 닮아가는 것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북의 핵시험은 부시 8년간의 임기동안 제일 충격적인 군사외교 실패로 기록된다.


오바마 당선 뒤 첫 방문한 동방의 외교관


“지금까지 여러 정책을 추구하는 행정부를 대상해 왔고 그 어떤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더라도 그에 준비돼 있다.”


위의 발언은 북 외무성의 리근 미국국장이 워싱턴을 방미중인 2008년 11월 6일 뉴욕에서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와 만난 뒤 기자들에게 “(미국의 새 정부가) 대화를 추구하면 대화를 할 것이고, 고립을 추구하면 그에 맞설 것”이라며 덧붙인 말이다. 미국의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어떤 대통령이든 그에 준비가 되어 있다는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배후에는 미국-이스라엘 군산복합체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서 언급한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평양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초미의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동방과 중동의 외교 책임자가 조용한 만남을 한다. 이북과 이란의 외상회담이다. 북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이 워싱턴을 방문하고 난 일주일 뒤 이란 마누체르 모타키 이란 외무장관이 이북의 평양을 방문했던 것.


이란의 모타키 장관의 방북은 2008년 7월 박의춘 북 외무상의 이란 방문에 따른 답례 형식이지만, 북과 이란 양국은 핵과 미사일 협력 문제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거리였다. 북과 이란의 외상회담이 열리는 평양을 주시하는 미국의 고성능 정찰위성과 고공 정찰기가 회담정보를 파악하려고 했지만 늘 그렇듯 평양과의 정보전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맹점이다. 이란의 모타키 장관이 방북하고 귀국직후 시점인 2008년 11월 중순, 이란 국방부는 유럽의 여러 표적을 공격할 수 있는 사거리 2000㎞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과시했다.


북과 이란 외상의 평양회담과 리근 북 외무성 미국 국장의 "그 어떤 행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더라도 그에 준비돼 있다"라는 워싱턴 발언은 첫째, 닉슨이든, 포드든, 카터든, 레이건이든, 부시 아버지든, 클린턴이든, 부시든, 오바마든 세계의 군사, 식량, 에너지, 철도, 소고기, 언론, 정보산업, 영화, 투기자본을 장악한 채 미국 대통령을 조종하고 있는 전 세계 유대계에 대한 의미있는 경고다.


둘째, 오바마가 지난해부터 물론 선거기간 중에 북과의 대화 의사를 여러 번 표명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2년여간의 대외 발언에서 여전히 북을 친구나 벗이 아니라 일관되게 ‘불량국가’ 또는 ‘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미 군산복합체의 추락


2006년도 뿌리에서부터 흔들린 미국의 군사위기, 경제위기는 2008년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한꺼번에 몰려왔나. 미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와 그물처럼 얽혀있는 군산복합체, 유대계의 핵심인물 중 리처드 홀부르크ㅡ브렌트 스코크로프트-헨리 키신저가 해야 할 일이 많지 않을 수가 없다.


오바마 당선자는 힐러리 클린턴을 미 국무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국무부 장관 후보에 올랐던 리처드 홀부르크는 힐러리 클린턴의 외교안보상임고문 중 한 사람이다. 리처드 홀부르크는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담당특사에 임명될 것으로 유력하다고 언론이 보고 있다.


1999년 3월 24일, 유고연방 전역에 대해 나토군의 폭격기와 순항미사일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직전 3월 23일의 코소보 평화회담을 결렬시킨 마지막 조정자는 클린턴 대통령의 특사로 파견된 리처드 홀부르크였다.


그전부터 발칸의 인종청소가 시작되었고, 유고 평화회담 결렬을 핑계로 미국군과 영국군이 주축인 나토군이 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홀부르크는 후에 미국 유엔(UN)대사로 승진한다. 그의 진짜 명함은 원래 월스트리트에서 유대계 로스차일드 재벌의 투자 은행 리먼 브러더스를 운영하던 이사였다. 카터 정권 시절에는 국무부 차관보로서 칼루치 CIA 부국장과 밀실에 박혀 이란 대사관 인질구출작전에 관여했다. 대통령선거에서 카터의 참모를 맡아 조지아주 땅콩 농장 주인 카터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공적이 있었다.


유고의 또 다른 연방내 공화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움직임으로 3년 넘게 내전이 계속되어 2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홀부르크의 지하공작이 시작되었다. 보스니아에서는 러시아 군부의 개입이 열쇠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옐친 대통령의 경제문제로 약점으로 잡으면서 미 재무장관 루빈과 홀부르크의 지하공작이 진행되었다. 결국 미군의 대규모 보스니아 파견이 이루어졌다.


루빈과 홀부르크는 공적인 직함을 빼고 보면 골드먼 삭스와 리먼 브러더스 출신의 족벌 상업 은행가다. 유고분쟁과 유고 전범 국제법정에 역시 같은 족벌의 조지 소로스가 막대한 자금원조를 하고, 리먼 브러더스의 임원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나토지상군을 유고에 투입하라며 전쟁의 수렁으로 이끄는 위험한 주장을 펼쳤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는 세계화를 주창한 자이다.


리먼 브러더스 출신 족벌 상업은행가 리처드 홀부르크와 오바마 당선자의 사적인 외교분야 고문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부시 아버지 대통령의 외교정보자문위원장)는 2007년 후반부터 본격화된 미국의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2008년 들어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제이피(JP)모건에 매각된 것을 시작으로,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메릴린치 매각, 에이아이지(AIG) 구제금융 신청 등을 거쳐 전 세계 경제위기로 번지는 것을 눈앞에서 쳐다 봐야했다.


홀부르크는 원래 오바마 의원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지지해왔다. 그의 문하생이 현 6자회담 미국쪽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다. 힐 차관보는 유고연방의 갈등과 내전이 진행되던 1990년대 내내 남부 유럽 외교에 깊숙이 개입한다. 힐 차관보는 1994~96년 국무부 중남부유럽과장, 리처드 홀부르크 보스니아 특사의 수석보좌관을 맡았고, 이어 1996~99년 주마케도니아 대사 겸 코소보 사태 담당 특사, 1999~2000년 NSC 남동유럽담당 선임보좌관을, 2000~2004년 주폴란드대사, 2004년 8월12일 주한 미대사로 부임했다. 힐은 27년 뒤 자신의 스승인 홀부르크가 27년 전 맡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자리를 맡아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로 있다. 그는 보스니아 평화협정에 대한 공로훈장(?) 등을 수상했다.


리처드 홀부르크는 1980년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시절, 이남의 광주를 진압한 책임이 있다. 그의 문하생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는 1995년 유고에서 홀부르크의 수석보좌관을 하고 있었다.


미국을 압박하는 북-이란 외교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의 최대의 관심이 북과 이란의 핵-미사일 협력을 차단하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핵독점으로 세계 정치‧경제를 주물러 온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외교력이 북의 핵보유는 인정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핵확산이 반미 성향의 중동, 특히 이란에 미치는 것을 제일 우려해 온 터다. 미국의 양대 위기 뒤에 나온 2008년 12월 북의 핵보유국 관련 발언이 미국에서 연이어 터져 나왔다는 것은 우연의 일이 아니다.


부시의 북에 대한 핵정책은 대실패로 끝나고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수순을 밟고, 한 차원 높은 최상급의, 최고 지도자간의 외교를 재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오바마 당선자도 후보시절부터 북이 핵보유국임을 확인에 확인을 해주었다.


2008년 7월 23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당시 오바마 상원의원이 북이 개발한 핵무기가 8개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미국의 북핵 인정은 오바마 당선 뒤 최고조에 이른다.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끝나갈 즈음인 2008년 12월 초~중순에 연이어 북 핵보유 사실이 터져 나왔다. 미국방부와 장관, 합동군사령부, 국가정보위원회까지 나섰다.


미 국방부 산하 합동군사령부(USJFCOM)도 2008년 12월 10일 공개된 ‘2008 합동작전 환경평가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대륙 연안은 이미 5개 핵보유국의 본산”이라며 5개 핵보유국으로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러시아를 명기한 바 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포린 어페어스 2009년 1월호 기고문에서 "북한이 여러 개의 핵폭탄을 제조했다"고 밝힌 게 최근 드러났다. 미 국가정보위(NIC)가 지난 11월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2025’라는 전망보고서에는 “미래에 북한과 같은 ‘핵무기 국가(a nuclear weapon state)’에서"라는 표현을 적었다.


2008년 12월 15일, 미국의 전략태세와 관련한 의회 위원회가 발표한 중간보고서에서 "지금 우리는 핵확산이 폭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전환점(tipping point)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이 저지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폭발적인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이란 외교의 파괴력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기사다. 이번 보고서 작성에는 빌 클린턴 행정부(민주당) 시절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냈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리처드 닉슨 행정부(공화당)의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 등이 참여했다.


2008년 12월 17일, 미국 국무부의 폴라 데서터 비확산검증-이행 담당 차관보는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지만 북한이 몇 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확인한 것으로 산케이 신문이 보도했다.


2008년 11월 13일, 평양의 북-이란 외상회담은 바로 새 오바마 정부와 이스라엘 정부에 대해 일방주의적인 패권정책을 중단하고 새로운 외교를 펼치라는 압박으로, 북-이란 두 나라의 전략적인 동맹의 위력이 한껏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을 압박하는 북과 이란의 군사외교에 대한 오바마 당선자의 핵정책은 일단 분리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게 현재 상황이다. 오바마 당선인이 유대계 앞에서 이스라엘의 안전을 이야기하고 이란의 핵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여기에서 나온다.


이란 전문가?발리 나스르(41)는 2008년 6월 3일, 프랑스 탈루아르의 한 수도원에서 열린 미국과 이란 관계 전망 회의에서 "미국은 정말이지 대이란 전략이라는 게 없다"면서 "핵무기가 이란으로 하여금 미국과 전략적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은 물론 재래식 무기에 있어 미국의 우위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바마가 에이팩(AIPAC) 총회에서 연설한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리면 오바마는 “이스라엘의 안보는 신성불가침이고 협상 대상이 아니며,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것은 미국을 위협하는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이에 대해 유대계 유권자는 대선에서 78%의 지지율로 오바마의 ‘지지 맹세’에 화답했다. 차기 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 역시 지난 유세도중에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을 경우 거대한 반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오바마 당선인은 이스라엘을 이란의 핵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한 전략협정 체결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이스라엘의 하레츠지가 2008년 12월 11일 보도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물론 미국의 외교안보장관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 장관들처럼 유대계에 대한 충성맹세를 잊지 않았다.


중국의 베이징에서 12월 10일경, 6자회담이 끝나갈 즈음에 북의 핵보유국, 핵무기국이란 보도가 쏟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시료채취나 핵검증 의정서 채택이라는 문구 조정에 얽매일 만큼 6자회담에 참가하는 미국은 한가하지 않다. 작은 행동 대 작은 행동이 아닌 즉, 핵폐기를 위한 회담이 아닌 핵보유국을 인정한 가운데 북과 미국이 전략적인 단계에서 대타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큰 행동 대 큰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시점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대계 충실한 민간 외교관 키신저가 자주 여론에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오바마의 군사‧외교진영은 어떤 인물


미 대통령의 오른 팔과 왼 팔은 국무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이다. 먼저 미 국무부 장관으로 내정된 힐러리 클린턴은 민주당 대통령 경선 때 이란이 이스라엘에 핵 공습을 할 경우 이란을 "초토화 시키겠다"라고 위협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또 민주당 내에서도 이스라엘의 입장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해온 나머지 아랍 외교관들 사이에서 "과연 힐러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을 정도다


대통령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은 이란 및 시리아, 북한의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있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행동하는 오바마를 두고 "외교 정책에 있어 너무 순진하단 증거"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녀는 이란이 핵무기를 사용해 이스라엘을 위협한다면 이란을 제거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이라크의 미래에 관한 회담에서 이란과 시리아를 비롯 다른 중동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끔 했다.


미 국방장관에 유임된 로버트 게이츠는 부시 대통령의 인맥이 포진해있는 투기자본 칼라일(Carlyle)그룹의 수장인 프랭크 칼루치의 오른 팔이다. 칼루치는 카터 정권 당시 CIA부국장으로 적국 이란에 미국이 무기를 밀수출한 이란 콘트라 사건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다. 칼루치는 1981년 레이건 정권에서 국방차관, 1986년 대통령 보좌관에 이어, 1987년 국방장관에 올랐다. 로버트 게이츠는 스탠더드 석유의 거대한 석유이권을 둘러싼 이란 인질사건 이래로 칼루치의 오른팔이 되었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북과의 군사인연(?)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미류나무 벌채사건으로 북과 미국이 극한 군사대결 직전이었다. 당시 포드 대통령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을 의장으로 당시 CIA의 조지 부시 국장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참석했고 딕 체니는 비서실장이었다. CIA의 조지 부시 국장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수석 보좌관을 하고 있었던 자가 로버트 게이츠다. 당시 미국은 항공모함 미드웨이와 전략 폭격기까지 동원해 북에 으름장을 놓았지만 씨도 먹혀들지 않았다.


로버트 게이츠는 1979년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수석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어 1987년 레이건 정권에서 CIA국장으로 지명되었으나 이란 콘트라 사건 의혹으로 철회되었다가, 1991년 부시(부시 아버지) 정권에서 CIA 국장에 무사히 취임하여 퇴임뒤 록펠러계의 칼라힐스 두뇌집단인 스왓(SWAT)에 참여한다. 칼라힐스는 스탠더드 석유에서 록펠러가 키워 낸 통상대표다.


로버트 게이츠는 부시 정권과 오바마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연임하는 유일한 장관으로 유대계의 정치, 군사력을 과시할 인물로 적임자다. 그는 "북의 최고 지도자 김일성은 군부에 의해 암살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퍼뜨려 온 자이다. 2008년 9~12월 오바마 정권 전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건강 이상설을 끊이지 않고 퍼뜨리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CIA와 미 국방부의 군사공작 정보전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부시 정권과 오바마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연임하는 로버트 게이츠를 통해 CIA와 미 국방부의 입장에서는 오바마 정권이 민주당이냐 공화당이냐에 따라 대외 군사작전이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바마의 사적인 외교분야 고문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헨리 키신저 밑에서 일하면서 그의 외교이론의 세례를 받았다. 그는 키신저 어소시에이츠(Kissinger Associates)사단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다. 리만 브러더스의 임원이다. 그는 닉슨-포드-부시 아버지 정권 3대에 걸쳐 대통령 보좌관을 지냈다. 부시 대통령의 인맥으로 똘똘 뭉쳐있는 칼라일 그룹의 간부다. 오바마 당선자의 국방장관으로 유임된 로버트 게이츠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한 제임스 존스도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사단에 속한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국가안보보좌관 시절 부보좌관이 바로 현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이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로버트 게이츠 모두는 록펠러계의 칼라힐스 두뇌집단인 스왓(SWAT)에 참여하고 있다.


미 대통령과 CIA와 미 국방부 인사를 감독하는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에게 미국의 정치경제적 위신이 흔들리는 일은 재산의 감소를 뜻하는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다시 나서는 유대계 키신저


2008년 초 자신의 구멍 난 양말이 세계토픽감이 돼 청렴하게 사는 것처럼 조작된 폴 월포위츠 세계은행 총재도 유대계다. 세계 언론이 사진 한 장에 놀아날 수밖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유대계다. 한국에 이건희-정몽구 재벌이 있다면, 세계에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이 있다. 로스차일드 재벌의 중추적인 투자은행이 골드먼 삭스다. 대부분 유대계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외정책은 1등 국가의 지위를 가진 채 세계를 상대로 전쟁과 무기장사, 인권 외교를 동시에 해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핵과 미사일 독점이다. 그 법적 장치와 기구는 IAEA, NPT, MTCR, CTBT로 연명해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과 미사일 독점전략이 뒤흔들리는 즈음에 노회한 유대계 전직 미 외교관 키신저가 등장한다. 오바마 후보 시절에서도 키신저의 이름이 더욱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키신저는 2008년 이스라엘공공정책위원회의 연례행사는 물론,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전국위원회 전국위원으로 참여했다.


키신저는 후진타오 주석과 조지 부시 대통령 사이를 오가면서 두 사람을 설득해 2007년 북-미 합의(2.13 초기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앞서 살펴본 바 있다.


2007년 3월 5일 김계관 북 외무성 부상이 워싱턴을 방문할 때도 만난데 이어, 그로부터 약 1년 8개월 뒤인 리근 외무성 미국 국장이 2008년 11월 6일 워싱턴을 방문할 때도 키신저는 이들을 찾았다. 오바마 취임 앞뒤로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부 장관과 더불어 미국의 대북특사로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2007년 3월 5일 북과 미국의 실무그룹 회담에 앞서 김계관 부상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외교 가정교사’로 알려진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별도로 만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 비공개 토론에 참석했던 두 사람은 1시간여 뒤 월도프 아스토리아호텔 인근 ‘뮤츄얼 오브 어메리카’ 건물에서 몇 분의 시차를 두고 나왔다. 두 사람은 이 건물에서 30여분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 김 부상은 오후 3시 15분께 숙소인 밀레니엄호텔로 돌아갔다.


2007년 3월 김계관 부상과 키신저 전 장관이 비공개리에 만난 사실은 6개월 뒤 드러났다. 연락책은 리처드 홀부르크 전 유엔대사가 맡는다. 2007년 9월 21일, 미국 안보전문가 리온 시걸 미 외교관계협회(CFR) 동북아안보협력 담당 국장은 일본 월간지 ‘주오코론(中央公論)’ 8월호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지닌 키신저가 2006년 10월의 북한 핵실험 직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을 경유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베를린 회동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중국 방문 전 키신저는 부시 대통령과 만나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상 대화밖에 해결방법이 없었다는 조언을 했다. 당시 이라크전쟁에 매달려야 했던 부시도 대안을 찾을 수 없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 베를린 회동의 연락책은 리처드 홀부르크 전 미국 유엔대사가 맡았고 키신저의 조언에 따라 힐 차관보를 베를린에서 열리는 ‘아메리카 아카데미’ 강연에 보내 김 부상과 만나도록 했다고 한다.


2007년 11월 16일 미국 뉴욕에서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와 코리아소사이어트가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북에서 기광호 재무성 대외금융국장을 단장으로 재무성 리철용 외환관리국 부국장, 무역은행의 현용일 부국장과 김이철 수석법무관, 대성은행의 조근찬 금융전문가 등 금융 관계자 5명 및 김명길 미국 주재 공사가 참석했다. 세미나에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 알렉산더 알비주 국무부 부차관보,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및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로버트 호매츠 골드만삭스 부회장 등도 참석했다.


북 정부 관계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북 정부의 의지를 전달했고, 함께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도 북을 영원한 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고 화답했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양측은 지금 양국 관계를 변화시킬 역사적 기회를 맞이했다"면서 "미국 정부는 이런 프로세스를 완결할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11월 19일부터 이틀간 뉴욕에서 금융실무회의를 갖고 상호 금융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


한편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9월 28일 뉴욕 맨해튼 숙소인 프레아 호텔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비공개리에 만난 적이 있다.


"북핵을 없애려면 검증 등 기술문제를 논의하기보다 폐기 자체를 설득해야 한다."


2008년 12월 4일, 정몽준 한나라당 한미비전특위 위원장과 같이 미국 오바마 당선자 인맥을 찾은 홍정욱 의원 등에게 헨리 키신저가 한 말이다. 그 며칠 뒤 6자회담은 검증 등 기술문제를 논의하려다 타결을 보지 못하고 다음 회의를 기약했다. 노회한 키신저의 말은 핵 폐기를 언급했지만 그건 미-이스라엘 유대계 군산복합체의 뜻일 수는 있으나 그건 양대 위기속에 몰린 그들의 희망일 뿐이라고 본다. 헨리 키신저의 말은 역설적으로 검증 등의 기술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핵보유국과 마주하려면 상대에게 주고받아야 하는 큰 행동 대 큰 행동인 핵군축이 불가피한 협상임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키신저는 공직에 있을 때 미국의 20세기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불릴 만큼 미국의 외교사에서 굵직굵직한 문제에 깊이 간여했고 소련과 미국의 긴장완화정책, 즉 데탕트(detente)를 추진했고,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사시켰다. 또한 1972년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개선시켰는데, 이것은 중국 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이래 중국에 대한 미국 최초의 공식 접촉이었다. 그는 또한 베트남 분쟁을 해결하고 평화 유지에 애쓴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키신저의 이면이 중요하다. 동전의 이면 말이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베트남 외교에 개입했던 적이 있고, 베트남 평화 협상을 4년이나 고의로 지연시켜 수많은 미국 군인과 베트남 민중의 목숨을 잃게 했다. 닉슨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된 뒤 키신저는 폭격대상을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확대했는데, 이는 중립국인 두 나라를 선전 포고도 없이 폭격한 것으로 미국의 교전 수칙마저 위배한 것이다. 더구나 고엽제를 비롯한 화학 무기까지 사용했다. 이 때 미군 폭격에 희생된 민간인은 캄보디아에서 60만명, 라오스에서 3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미국이 1970년대 초반 세계 각지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대량 학살, 암살, 납치 등에 헨리 키신저가 관련되어 있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미국 대학 교수인 키신저 재판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의 책을 키신저 재판에 제출될 기소장이라고 잘라 말한다.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한다면 어떤 초거대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며, 전쟁범죄나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어떤 제3세계 독재자도 법정에 세울 수 없을 것이다. 키신저 혼자서만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우리가 그처럼 역겨운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수치스러운 꼴밖에 안 된다. 이제 유명 무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가할 때가 되었다."


2008년 12월 4일, 정몽준 위원장은 미국 방문길에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지난 달 뉴욕을 방문했던 북한 외무성 리근 미주국장이 키신저 전 장관을 만나 북한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다시 북과 미 군산복합체의 샅바싸움


영국의 국방과 외무장관을 지낸 맬컴 리프킨드 경, 데이비드 오웬, 더글러스 허드, 조지 로버트슨 등 원로정치인 4명은 2008년 4월 30일자 더 타임스 신문에 공동 기고한 글에서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핵보유국이 핵무기 감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공동선언은 헨리 키신저ㆍ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샘 넌 전 미 상원의원이 1월 4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공동 기고문에서 핵무기 폐기를 촉구한 데 뒤이은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유대계다. 이들이 다급한 것인지 아니면, 언론플레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럼 북과 미-이스라엘 유대계가 담판을 지어야 할 큰 행동 대 큰 행동은 무엇일까. 필자는 북‧미 수교와 북‧미 과거청산, 핵군축이라고 본다. 헨리 키신저가 중국과 미국의 수교에 수훈을 쌓았던 당시의 중-미 관계보다는, 지금의 북-미 관계는 미국에게 불리하기 짝이 없다. 샅바가 잡힌 건 미국이다.


미-이스라엘 유대계 군산복합체가 지구위에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전쟁범죄는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한 이들과의 담판은 불가피하다. 구체적으로 미국의(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대통령을 조종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인 이스라엘 유대계인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과 핵과 미사일을 안받침하는 선군정치의 자주적인 힘으로 샅바싸움 중인 북과의 첨예한 대결구도는 결국 풀어야 한다.


2008년 12월 초, 6자회담은 결국 북과 미국이 정치‧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는 가운데 핵군축회담을 통해 북‧미 수교라는 대타결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불러온다. 앞으로 핵보유국 북과의 협상 자리에서 미국이 자신의 핵군축을 탁자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북‧미 수교와 북‧미 과거청산은 동전의 양면이다. 키신저의 대북 특사 역할은 역할이 끝난 뒤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는 동전의 양면이다(책 키신저 재판 참조). 이제 6자회담과 병행되는 북-미 정상회담이 핵군축회담이 되는 이유다. 핵군축회담은 북‧미 수교 회담이자 북‧미 과거청산 회담이다. 북‧미 수교로 가는 길에 미국이 과거 한반도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민간인 학살 만행, 물적 피해, 정신적 피해 등은 숫자로 나와 있을 만큼 미국의 사죄, 배상이 불가피하다. 미국의 사죄, 배상과 동시에 반성한 미국과 북‧미 수교가 가능하다.


북‧미 수교 회담이자 북‧미 과거청산 회담은 핵과 미사일로 인류를 쥐락펴락한 미-이스라엘 유대계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을 양대 위기에서 군사위기를 벗어나게 한다. 아울러 북미 상호 공존 속에 미국의 경제위기를 차츰 벗어나게 하는 주요한 밑거름이 된다. 시베리아 자원지역으로 횡단철도가 지나가고, 북-중-러 동북만 지역은 석유와 텅스텐, 마그네사이트 자원의 보고이자 경제현장이다. 북‧미 수교와 북‧미 과거청산은 자주통일과 동전의 양면이다. 그 중요한 공은 한민족이 가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 유대계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속에 동방의 작은 나라 이명박 정권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08년 2월 21일 저녁 삼청동의 한 식당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들과 만찬을 함께 하면서, 앞서 통의동 집무실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일본 민주당 대표와 접견했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뤼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대학 교수는 "이명박 정권식의 대북 ‘실용주의’가 한국을 속수무책의 고립상태에 빠뜨리고 한반도를 외세의 탐욕에 내맡기게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던가. 2008년 12월 16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 8주년 기념 대강연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북한에 보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실현해야 한다"며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 대화로 해결하려는 조류에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면 통미봉남식 고립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자는 박영희 교수가 보는 북-미 관계를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음은 박 교수가 앞의 자신의 글에서 밝힌 마지막 내용으로서, 이렇게 끝난다.


"지금 밀려오는 지각변동에 남북이 힘을 합치면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지만, 분열하면 또 외세에 당하게 될 것이다."


2009년 타이타닉이 좌초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열쇠는 오바마가 아니라 미국-이스라엘 유대계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이 가지고 있다. 이 재벌이 자주통일을 앞둔 한민족에게 샅바를 잡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스라엘, 대한민국이 건국 60주년을 맞은 2008년의 해도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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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석 약력-2001년 정리>


지리산 옆 함양에서 태어남. 수원에 삼

한국외국어 대학교 러시아어과 졸

92년 최초로 한국군을 전면 해부한 `청년과 군대`를 동료들과 같이 씀

92년 11월 이 책이 일본어판으로 출판

92년 반핵평화운동연합 정책위원

93년 남매간첩조작사건으로 4년 복역, 97년 출소

98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보안관찰법` 담당 실무

99년 2월 사면

99년 사회정의연구소 연구원, 보안관찰법철폐모임 대표간사

2000년 1월 보안관찰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



현재 회사원생활을 하며 군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또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정책위원, `한국 민권연구소` 연구위원, 인터넷 대학뉴스 `유뉴스` 칼럼니스트로 군사문제, 군 인권 관련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고 있다.





<참고자료>



[김삼석] 손자병법으로 본 미 군산복합체와 북한 1


김삼석 (군사문제 연구가 hiarmy@orgio.net)

2001년 05월 26일


손자병법의 손자가 `닉슨`이란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다 본 결론은 "권력은 닉슨에게서 나오지 않는다"였다. 영화를 본 값이 그리 아깝지 않았다.



그렇다. 마찬가지로 부시정권을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뒤에는 그들을 움직이는 검은 손인 군산복합체가 버티고 있다. `그림자 정부` 또는 `죽음의 상인`, `프리 메이슨`으로 불린다. 군산복합체의 원조는 다름 아닌 미국 독립전쟁 때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또 그들은 남북전쟁 때도 무기를 팔았고, 동족인 유대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무기를 제공했던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 재벌이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투기꾼이 있지만 이 투기꾼을 뒤에서 조종하는 세계 1%의 검은 재벌, 이들을 모르고서는 복잡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화된 미국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신토불이의 한반도 조선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먼저 부시 일가를 움직이는 미 군산복합체 칼라일(Carlyle)그룹을 살펴보자.



`부시에게서 권력이 나오지 않는다`


칼라일 그룹을 알면 부시일가가 보인다. 이 그룹은 백악관 배후에 있는 첩보기관의 군사두뇌집단이다.



칼라일 그룹은 지난 1987년 무명의 펀드로 출발해 유명 정치인들을 활용해 현재는 164개 기업의 대주주로 사실상 미 굴지의 군수업체이자 정보통신업계를 주도하며 연평균 34%의 수익률을 자랑하고 있다. 이 그룹은 94년 월가에서 조지 소로스를 영입해 99년 당시 현금 자산만 40억 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5위 수준의 투자 전문 금융사로 위장해 있을 뿐이다. 99년 당시에 이 그룹의 간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유고전에서 나토군을 지상군에 투입하라고 했을 정도이다.



부시 현 대통령 입장에서는 칼라일이 아버지가 고문으로 활동 중인 회사를 넘어 지난 90년 경력쌓기에 몰입했을 때 비행기 기내식 전문 자회사인 `케이터에어`의 이사직을 맡겼던 기업으로 인연을 맺고있다. 그룹의 명예회장은 미 대선 재검표 파동때 공화당 대변인을 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며 그는 걸프전을 주도하며 이라크 민중에게 무자비한 폭격을 자행한 명령자이다. 또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 출신으로 칼라일의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프랭크 갈루치 그룹회장은 카터 정권에서 CIA 부국장, 레이건 정권에서 국방차관, 장관을 지낸 바 있다. 갈루치는 도널드 럼스펠드 현 미 국방장관과 대학동창이다. 부시 전대통령의 국방장관 출신인 딕 체니 부통령도 부통령이 되자마자 그룹 고문직을 내놓았다. 여기에다 딕 체니는 2000년 9월 부통령후보로 나서기 전에 최고경영자로 있던 석유시추사 `홀리버튼`의 주식을 팔아 2천 60만 달러를 한달 만에 벌어들인 적이 있다. 워싱턴에 사무실이 있는 칼라일 그룹의 대표이사는 루빈스타인이다.



이를 보여주듯 지난 2001년 2월, 갈루치 회장이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체니 부통령을 만나 국방문제를 논의했다. 칼라일이 투자를 한 방산업체들의 수 십억 달러 프로젝트를 검토했다.



부시일가는 텍사스의 석유를 기반으로 칼라일에서 온 몸을 다 바쳐 꽃을 피우고 있는 잘 나가는 집안이 되었다.



부시 할아버지인 프레스코트 부시는 록펠러의 맹우인 철도왕 해리먼가의 `브라운 형제 해리먼` 사의 중역이었으며 부시아버지는 록펠러 모건의 석유회사에 텍사스 이권을 판 석유채굴업자출신이었다. 부시 아버지는 한국에 대해 가히 정력적으로 일을 한다. 한국은 그들에게 맛이 당기는 꿀단지 시장이다. 한국에 대한 칼라일 그룹의 작전은 집요하다. 92년 퇴임 뒤 시티은행 고문 자격으로 자주 한국을 드나들었다. 시티은행은 세계 3대 재벌인 로스차일드-록펠러-모건이 합친 98년 자산으로 세계최대의 금융기관이다.



여기에다 99년 5월 28일에는 부시가 자문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 인수합병 전문회사인 파나콤(주1)의 대한생명에 대한 투자문제를 위해 한국에 왔다. 이때는 김종필 총리와 박태준 자민련 총재, 임동원 통일, 조성태 국방,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 이경훈 대우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을 만나고 갔다. 이 날 김종필이 주최한 점심에는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 대사와 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이 자리를 함께 했다. 한미간에 군수, 경제 커넥션을 확인하고 이권을 나누는 단결의 장인 셈이다. 이날 부시 전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1999년 5월 28일, 이 날은 칼라일 그룹의 한국사무소를 여는 날이었다. 김병주를 칼라일 코리아 사장으로 앉혔다. 김병주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박태준 전 총리의 사위다. 한국의 군수업체 포항제철의 출신자들과 미국 투기 자본이 연대해 이익을 얻는 곳은 투자은행이다.



김병주를 앞세운 칼라일 그룹은 2000년 9월 미 군산복합체의 우두머리인 JP모건과 컨소시엄을 이루 11월 한미은행에 5000억 원을 투자해 은행지분을 확보한 대주주가 되었다.



이어 2000년 12월 부시가 정권을 잡자 아시아본부를 서울로 옮겨 본격적으로 한국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지부장 김병주는 아시아지부장으로 승진되었다. 해가 바뀌어 2001년 1월 14일 쌍용정보통신 지분을 인수해 한국 정보통신시장도 서서히 먹어 삼키고 있다. 또 세계적인 한국의 전자업체를 20억 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2001년 4월에는 한미은행 이사회까지 장악해 경영권을 가로채기 직전이고 하나은행과 합병을 모색하고 있다.



칼라일 투자의 3분의2가 정부의 지출이나 정책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국방과 통신분야 기업 등 한 나라의 정치·군사적인 핵심분야에 집중돼 있다는 것은 이 그룹이 군수와 기업을 통해 한 나라를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주2) 결국 한국경제와 금융권의 구조조정의 결과는 외세자본과 손잡은 국내 반민족자본만 먹여 살리는 짜고 치는 놀이패다.



한국시장을 접수하는 부시일가


때는 한반도가 남북최고위급회담과 남북공동선언으로 화해와 통일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2000년 6월 21,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안 신라호텔.



호텔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름하여 칼라일 그룹 아시아 고문 및 임원 정례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철저한 비공개였다. 참가자는 그룹의 아시아 담당 선임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파냐라 쿤 전 태국수상,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자 그룹 전무 등 50여명. 솔직히 말하면 아시아는 물론 한국의 국방과 통신, 금융분야 정책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말로 영향력 행사지 끊임없는 돈벌이를 위해 아시아 정치권과 모의하고 자기들은 엄청난 돈을 챙기고 이익의 찌꺼기를 조금씩 나눠주며 공생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목적은 끊임없는 부의 창출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공동선언을 하고 서울에 돌아온 며칠 뒤였다. 하지만 남북공동선언이든 전쟁이든, 평화든 그들에게 돈벌이가 얼마나 되느냐 안 되느냐가 그들의 잣대이자 관심사이다.(주3)



다시 2001년 4월 17일, 부시 일가의 텃밭인 `석유유전지대` 텍사스 A&M 대학 부시행정대학원. 대학 정문 앞으로 고급 승용차가 물밀 듯 미끄러져 들어왔다. 이 행사를 위해 스스로 초청장을 보낸 부시 전 미대통령이 타고 있었다. 이 대학원의 학장이자 부시 전 미 대통령시절 CIA 국장이었던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가 주최자였다.(주4)



이름하여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는 한반도 학술회의가 공개적으로 열렸다. 참가자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인 부시 전 미대통령을 비롯,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대변자로 그룹의 전무에서 명예 회장이 된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 존 매클러런 중앙정보국 부국장, 록펠러의 대변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주5),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 등이었고 양성철 주미대사 등 한반도 전문가들만 300명이었다. 부시정권이 대북정책을 재검토인 시기여서 세계의 눈을 끌었다. 학술회의 제목은 "오늘의 북한 : 포용인가 대치인가".



먼저 부시 전 대통령이 들어왔다 그는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이라면서 한결같이 정책재검토를 말하며 강력한 한미공조를 약속했다. 남한에서 날아간 제리 험블 주한 유엔군 부사령관도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대북 경계론`을 폈고, 록히드 마틴의 한 군수업체 대표 윌리엄 페리는 "북한과 다룰 안보 문제의 우선 순위는 핵·미사일·생화학·재래식 무기의 순서가 돼야 하고, 주한미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혔고, 제임스 릴리와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도 대북 상호주의를 훈수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말한대로 대북정책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이다. 그러나 최근 대북정책 재검토는 미 군산복합체의 전술차원이다. 잘 보자. 지난 2000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클린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견되었다. 드디어 북한과 미국이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잘 살자고 약속하기로 잡혀 있었다. 이는 98년 8월 31일 북한의 인공위성 `광명성 1호`의 발사성공으로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지위가 흔들린 결과였다. 미국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한 미 군산복합체는 그들의 재산유지는 물론 돈벌이가 줄어드는 중대한 고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이 때 미국의 정권교체를 틈타 미 군산복합체는 북미사이의 평화공존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고 싶었다. 대북정책 재검토 운운하면서 다시 한번 북한의 위협을 핑계로 NMD를 구축하면서 그 틈에 한국 등에 구식무기를 팔아먹기로 했다.



정확하게 부시정권이 들어서자마자 2001년 3월, 미국이 김대중의 통일정책을 지지해주는 대신에 100억불 달러(14조 5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사라고 (카린리, 존 페파-미국 친선봉사위원회 동아시아 담당 공동대표-의 기고문 참조) 강요한데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가동시켜야 하는 미 군산복합체의 충실한 영업부 책임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주6)



그 동안 미 국방부는 엔엠디 시험을 5번했다. 그 중 3번의 요격시험에서 2번은 실패했다. 중요한 것은 실패한 엔엠디 시험으로 수 십억 달러의 국가적 손실을 입혔지만 미 군산복합체에게는 그만큼 군사무기를 소비했기 때문에 이익은 남는다는 사실이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부시일가와 미 행정부, 정보기관은 모두 미 군산복합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부시 일가가 한국 경제를 주무르고 정치군사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역시 앞서 살펴 본대로 끊임없는 돈벌이다.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 `죽음의 상인`


왜 한나라의 대통령이 이럴 수밖에 없는가. 전쟁의 한가운데서 `죽음의 상인` 들이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 대통령을 움직인 그 역사를 살펴보자.



미 군산복합체는 자칭 잘 나가는 부호다. 세계의 원자력 발전사업은 물론 무기판매사업, 석유, 식량, 철도, 전기통신, 철강, 컴퓨터, 인터넷, 언론, 금융, 영화, 스포츠, 대학에 이르기까지 깊숙히 개입하여 백악관과 군부, 정부기관을 뒤에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인류의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보면 쉽다.



먼저 1~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도 미 군산복합체의 핵심인 록펠러- 모건 재벌과 관련이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 핵무기 개발과 군비경쟁의 뒤에도 이 재벌이 있었다. 동족인 유태인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까지 무기를 팔아먹은 자들이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은 물론 최근의 걸프전쟁, 유고 전쟁 뒤에도 이들의 검은 그림자가 있다. 이들은 백년이 넘도록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엔 `무기 팔아먹을 자유`만 있는 셈이고 결국 세계 무기시장을 쥐락펴락한 결과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가문은 20세기 세계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미 군산복합체 록펠러-모건 재벌의 시작인 JP모건 1세는 듀퐁 대령(세계적인 군수탄약, 화학업체 `듀퐁` 창업주)과 결탁해 미국 남북 전쟁 때부터 구식 카빈총을 6배나 비싸게 되파는 방법으로 부를 늘렸으며 이어 1차 세계대전에서는 아들 잭 모건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잭 모건은 군수업체 `듀퐁`에 지시해 탄약, 화약을 대량생산케 했고, 듀퐁은 화약제조로 남북전쟁에서 떼돈을 벌었다. 잭 모건은 `에디슨` 연구소가 군함용 전화, 대포의 조준과 발사장치등 살인 무기 발명에 몰두케 한다. 그러자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은 이들 무기를 사들이는 데 거금을 조성하기 위해 `채플린` 같은 영화인들을 동원해 당시 미국인들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인 `희극왕`들을 좋은 선전요원으로 쓰게 된다. 그 뒤 `영화`는 모건이, 미국 `라디오`는 록펠러가 접수했다. 853만 명의 전쟁희생자의 시체 한편에서 `아메리카 드림`의 꽃을 피워가고 있었다. [유니버셜], [파라마운트]는 모건의 영화사이고 [20세기 폭스사]의 최대주주는 록펠러, [워너 브러더즈]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대주주이다. 허리우드영화 스크린의 초점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 예로 [20세기 폭스사]가 만든 영화 `타이타닉`을 보자. 실제인물 `로즈 데이비스`를 그린 영화다. 로즈는 미 국제 금융미디어가 지배하는「워싱턴 포스트」지의 소유주 에드워드 맥린의 내연의 처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악질 부자에게서 동양여성의 얼굴을 한 여자를 구한다. 가난한 3등 선객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열연해 얼음바다로 사라져 가는 슬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최대주주 록펠러에게서 [20세기 폭스사]를 인수한 미디어 왕 루퍼트 머독과 로즈 극장의 소유주 로런스 티슈(미 CBS 방송 소유주)에게서 중요한 것은 블루 다이아몬드가 로즈 것인지, 로즈가 타이타닉 호에서 사망한 것인지, 1941년까지 살아 있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영화의 줄거리를 `가난한 관객 편`으로 해 가난한 자인 전 세계 대중에게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2차 대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2차 대전의 여러 지휘관은 록펠러- 모건재벌의 고문변호사이자 회장 사장 중역들이다. 예를 들어 스팀슨 육군장관은 모건 상사의 고문 변호사였고 스테티니어스 전시자원국장은 유에스 스틸 회장이다. 그것은 군인에 의한 전쟁이 아니었다. 군수업자들이 앞장서서 스스로 군복을 입고 작전 사령관실을 차려버린 것이다. 작전본부는 증권거래소라고 보면 되었다. 군인은 군수업자를 위한 들러리였다. 전 지구가 2차 세계대전에 쓴 지출액의 7분의 1을 [모건상사]와 록펠러 가의 [체이스 내셔널 뱅크]의 총매출액라고 보면 된다.



진주만 공격 직후 월트 디즈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피터 팬` 기획을 포기하고 군용필름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고, 미국 군인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방영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군수업자를 위해 종을 울리는` 전의를 북돋우는 영화에 불과했다.


`진주만 공격`이라는 영화가 2001년 6월 4일 가난한 관객들을 상대로 또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도 미국인들의 사기진작과 전쟁분위기 고조에는 예외가 없다.



미국의 군대는 대통령의 명령보다 군수업자인 록펠러-모건 재벌의 지시를 받아 운영되는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체이스 맨해턴 은행은 은행이 아니라 군대다`라는 말이 나온다.(주7)



존슨 미국 제 36대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을 크게 확대한 책임자이며 록펠러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된 닉슨도 베트남전 당시 북폭을 강화했고, 체이스 맨해턴 은행의 고문회의 의장이 다름아닌 헨리 키신저로 그는 데이빗 록펠러의 비서와 결혼했으며 베트남전쟁의 필요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베트남 전쟁의 1급 전범이다. 그들에게는 전쟁은 비즈니스였다. 베트남 전에서 미국은 졌지만 록펠러-모건 재벌은 막대한 치부를 했다. 부시 전 대통령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은행인 시티뱅크 고문으로, 전 미 국무부장관인 조지 슐츠는 세계적인 원자력 발전업체인 벡텔의 사장으로 일본을 대상으로 원전장사하기 바쁘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몇년전 한국의 서울 평화상 추진위원회가 준 `서울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짜고 치는 화투다. 원자력 발전업과 무기판매업이 세계에서 제일 짭짤한 장사 중의 장사라는 것은 두루 아는 사실이다.



덜레스, 러스크, 키신저, 번즈, 머스키 등 6대에 걸쳐 미국 내각의 우두머리인 국무장관을 록펠러-모건 재벌의 수뇌가 차지한 것은 우연인가. 40년이 넘도록 말이다. 조지 슐츠, 올브라이트 전 장관, 파월 현 장관도 마찬가지다. 파월이 중동평화협상과 한반도 평화협상에 바쁜 것 같지만 철저하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 아니 구체적으로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월은 록펠러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늘 앞세운 것은 세계와 아시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다는 것이었다. 그럴싸하다. 전쟁물자를 끊임없이 토해내야 하는 모건과 록펠러, 듀퐁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은 진보적 민족주의자라는 걸 숨기면서 말이다.



학문의 전당이어야 할 미국 대학은 또 어떤가. 미국서부의 `펜타곤`(국방부)`이라 불리는 스탠포드 대학을 창립한 것도 모건 집안이다. 예일대학도 모건 집안의 조상이 세웠으며 하버드 대학은 `록펠러 대학` 이고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집안의 사재로 이루어졌다. 미국의 원자폭탄사업의 `독점`을 인정하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에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이 앉은 뒤 록펠러 2세가 뉴욕 유엔 빌딩이 세워질 땅을 기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01년 2월 22일, 록펠러계인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마틴의 코리아 김용호 지사장은 우주항공분야 발전을 위한 록히드-마틴과 세종대학교 간 산학협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학금 3만 달러(약 3천 8백만원)을 전달해 한국대학생들에게 당근까지 던져주는 이미지를 쌓아나가고 있다.(주8)



록펠러-모건 재벌과 한국전쟁


전쟁의 늘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4일 전에 `시카고 데일리 트리뷴`지에는 1면 톱으로 `루즈벨트의 전쟁계획`이 특종으로 보도되었는데, 여기엔 루즈벨트 대통령이 얼마나 전쟁을 고대하고 있는가가 잘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결국 미국의 함정에 빠지듯이 기습을 감행했다.



한국전쟁을 보자. 4백만 명 이상의 한국민이 전쟁 때 죽었고, 그 3/4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다. 충복 영동군의 노근리를 비롯해서 말이다.



98년 한국전쟁 48주년 때 `38선도 6·25도 미국의 작품이다`라는 책을 썬 전 극동지역 CIA고위책임자 하리 마오 박(한국이름 박승억)은 99년 6월호 월간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6·25 5개월 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정보를 입수해 보고했는데 워싱턴 당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이 애초 예상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이 2년이나 빨리 끝나 버리자 산더미같이 쌓인 남은 무기, 전쟁물자, 농산물들 때문에 미국경제는 공황으로 치달았다. 아사지경에 빠진 미국 거대 군수산업은 줄곧 트루먼 행정부를 괴롭혔다. 결국 워싱턴 당국은 한국전쟁을 유도해 38선 언저리에서 정전을 하고, 국토재건에 미국의 잉여물자를 쏟아 붓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미국정부의 전쟁계획이 파놓은 함정이듯 한국전쟁도 미국 군수산업의 전략적인 함정 속에 빠진 것에 다름 아니다.



그는 또 "50년 당시 미국의 GNP는 전 세계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대국이 아무리 전후 공황이 와서 실업자들이 아우성을 친다 하더라도 이제 겨우 독립해서 살겠다고 버둥대는 한국에서 무자비하고 처참한 전쟁판을 벌여서야 되겠는가" 라고 토해냈다.



한국전쟁 최후 점검으로 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파견하여 50년 6월 19일 38선 일대를 비밀리에 시찰까지 마친 뒤 북한을 유인한다. 전쟁이 시작되었다. 비로소 충북 영동의 노근리를 비롯한 한민족에 대한 양민학살이 록펠러-모건 재벌의 록히드사 전투기의 기총사격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 미 국무부 장관의 직함을 벗겨내면 그는 유엔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고. 로버트 로베트 국방장관은 록펠러 투자은행인 [브라운 형제 해리먼]의 중역이었고, 한국전쟁당시 전쟁정책과 전략을 수립한 리지웨이 장군은 록펠러 동지인 멜런가의 [멜런 공업 연구소]의 사장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미국본토 네바다 주에서 대기권 핵실험이 30여 차례 있었다. 50년 `영화연맹`의 회장인 존 웨인은 전쟁과 핵실험을 앞장서 주장하게 된다. 영화연맹은 모건이 나치즘을 지원하기 위해 부동산업자를 시켜 설립하였다. 존 웨인과 일행은 네바다 주에서 가까운 사막에서 촬영을 끝내고 돌아오지만 다수가 암에 걸린다. 결국 그는 79년 6월 암으로 사망하고 죽기 전까지 록펠러의 석유와 얽히고 설킨 조무래기 투기꾼 인생을 마감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신문기자들이 영화배우들의 신변잡기, 주변기사만 쫓아다니다 보니까 진짜 역사는 모르게 된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 전쟁이 비밀리에 준비되고 있었다.



록펠러 가의 축복을 받으며 재클린과 결혼한 케네디가 61년 록펠러-모건 재벌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에 비밀부대를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시작되었고, 14년에 걸친 살상극이 펼쳐진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의 딘 애치슨은 베트남전쟁에서도 유감없이 실력을 드러낸다. 이미 딘 애치슨은 트루먼 대통령당시 때부터 프랑스의 베트남개입을 지원할 것을 권고한 탄약제조업체 [듀퐁]의 고문변호사였다. 전쟁 제일보를 내딛은 미국은 비밀부대 파견 뒤 늘어나는 미군전사자를 핑계로 본격적으로 개입을 해 미국전체가 전쟁에 돌입했다.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딘 러스크 국무장관, 윌리엄 로저스 장관(닉슨때 국무장관)등은 케네디의 막후에서 베트남 전을 확산시킨 록펠러-모건 재벌의 관계자들이다. 록펠러-모건 재벌은 쉬는 날이 없었다.



또 베트남 전쟁의 종식을 위한 파리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불과 반년만에 록펠러-모건 재벌은 오일쇼크의 발단이 된 제 4차 중동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은 유태인재벌을 미국 내에서 조종해 아랍민중을 벼랑 끝까지 내몰아 폭발시킨 인공전쟁이었다.



1984년 논픽션 `죽음의 상인`을 쓴 조셉 그루덴은 "이 지구상에는 불가사의한 집단이 존재한다. 세계최대의 군대와 은행을 장악하고 그 은행에 금화를 그득 채우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전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기공장을 완전 가동시켜야 하는 집단이다."라고 할 정도이다.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끝까지 무기를 팔아먹을 뿐이다."


노병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걸프전은 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냉전이 끝나면서 국방예산이 줄어들자 국방관련 조직과 군수산업체에는 마치 마약중독자에게 마약 투입을 중단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금단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방예산 감축에 따른 금단현상이 가장 심한 곳은 아무래도 군수산업체였다. 국방예산 가운데서 군수산업체 몫으로 들어가는 빵의 전체크기(군복에서부터 항공모함에 이르기까지)가 87년에는 무려 2천60억 달러였는데,92년에는 1천6백10억 달러로 22%나 줄어들었다.약 3백만 명의 노동자 가운데 10%가 넘는 31만 명의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적절한 위기’인 바로 전쟁이 필요했다.



걸프전쟁의 위기가 크게 고조될 당시의 한겨레신문 94년 2월 2일자 외신 면을 살짝 보자.


미 중앙정보국(CIA) 전 요원이었던 필립 에이지는 "군산복합체를 근간으로 하는 미국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위기’가 필요하며, 걸프전쟁은 바로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군사적 케인스 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 했다.


또 지칠 줄 모르는 록펠러-모건 재벌의 007 무기 가방은 유고로 향했다..



미국과 나토의 유고에 대한 침략전쟁행위는 미국 군산복합체들의 이윤추구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유고전쟁에서 군산복합체들이 신이 났다.



미국의 유고침략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산복합체들의 월스트리트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다. 미국의 침략전쟁행위가 두 달이 채 되기 전 미국하원은 99년 5월 18일 120억 달러의 전쟁 지원금을 통과시켰다. 상원통과는 물어 볼 필요도 없다.



4월 17일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비교적 자세하게 무기제조업체들의 이윤과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하원의 뒷이야기 기사를 다루었다. 물론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굴지의 신문 방송들도 발칸전쟁 발발 이후 월스트리트의 군산복합체 주가들이 횡재 만난듯 껑충 뛰었다고 전했다.



이 기사는 미 공군이 세계 제1의 군산복합체인 록히드 마틴사(Lockheed Martin Corp.)에게 "21세기형 순항미사일"(21st-century cruise missile) 제조를 주문하는데 30억 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역시 같은 기사는 미 해군 또한 새로운 형태의 미사일개발을 위해 굴지의 미사일제조업체인 레이시온사 (Raytheon Corp.)와 8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그들은 또한 현재 소유하고 있는 624개의 구식 순항미사일을 배 모양 형태의 미사일로 바꾸는데 긴급예산에서 4억 2천만 달러를 지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폭격이 두 달 가까워 오면서 역시 굴지의 미국 군산복합체 중의 하나인 보잉(Boeing)과 그 계열사들은 그들의 이해를 성실히 대변하는 공화당의원들을 동원하여 미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모든 무기장사꾼들의 활기 띤 거래는 워싱턴 포스트지를 비롯한 미국 주요신문들에 유고폭격에 동원되고 있는 전함과 폭격기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사일의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의 이야기들이다.



미국의 건국이 원주민 대량학살로 이루어졌다면, 건국 이후의 역사는 해외침략과 전쟁,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이루어진 역사다. 19세기 이후 2백년 동안 미국의 해외침략사와 전쟁사, 내정간섭의 역사는 끝이 없다.


트리폴리 전쟁 (1801∼1805), 모로코와 전쟁 (1801∼1805), 스페인과 전쟁 (1803∼1806), 캐나다와 플로리다를 빼앗긴 위해 영국에 선전포고 (1812∼1815).... 중국 상해, 광동 침공 (1854∼1856)...조선 침공 (1867∼1872)....하와이 제도 병탄 (1898)...조선 상륙 (1904), ...니카라과 침공 (1926∼1933)...코리아 전쟁 (1950∼1953)...통킹만 무력도발 (1964), 베트남 전쟁 (1964∼1972)...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1973)...이란에 대한 군사행동 (1979∼1981), 카스트로 암살 기도 (1960∼1981), 카다피 암살계획 (1981)...인디라 간디에 대한 음모 (1981)...그레나다 침공 (1983), 걸프전 (1990-1991), 소말리아 무력개입 (1992-1995), 수단, 아프가니스탄 미사일 공격, 이라크 공격 (1998), 유고연방 침공 (1999), 이라크 공격 (2000),이라크 공습 (20001 2월).


지난 200년 동안 세계 민중이 겪어온 역사적 경험은 미 군산복합체는 제3세계에 대한 지배와 약탈을 강요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데서 미 민주당 세력이나 공화당 세력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록펠러- 모건재벌과 노벨 평화상


다만 전쟁사 그 어디에도 록펠러나 모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꼭꼭 숨어있을 뿐이다.


위에 살펴 본 해외침략, 내정간섭, 해외비밀공작, 전쟁에 대해서도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늘어놓거나, 아니면 세상사람들이 모르게 덮어두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거짓말하는 버릇은 적어도 2백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 이제는 거의 체질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년간의 전쟁에 깊숙히 개입한 루즈벨트, 루트, 우드로 윌슨, 찰스 도즈, 조지 마샬 등의 자랑스러운(?) 노벨 평화상 수상자 6명은 군산복합체 록펠러나 모건 연합의 대표들이다. 또 헨리 키신저도 수상자였다. 오른손으로 평화를 내세우며 왼손으로 전쟁을 수행한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면모를 보여준다. 노벨 평화상은 전쟁수행을 위한 `케인즈의 경제학상`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스웨덴의 다이너마이트 제조업자 노벨은 그의 군수공장 `보펄즈`의 미국지점인 [듀퐁]탄약제조업체를 탄생케 하고 모건 상사와 1~2차 세계대전을 치룬 병기업자였기 때문에 노벨상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짜고 치는 수상잔치인 것이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데이비스 컵` 테니스 대회의 데이비스는 `모건 상사`와 손잡고 나치스에 융자한 [전쟁금융회사] 중역이었으며, 록펠러가 투자한 콜럼비아 대학에 저널리즘학과가 생기면서 퓰리처상이 탄생했고, 그래미상의 비밀 투표용지는 `디트로이트 하킨즈 세일즈 회계사무소`에 보관되는데 이 사무소는 록펠러 가의 군수산업에서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며 악명높은 월스리트 가의 8대 사무소의 하나다. 퓰리처상, 그래미상,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환상에서 언제까지 헤맬 것인가. 김대중 대통령이 이런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엔엠디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조작



다시 손자는 미 군산복합체의 여론에 휘둘리는 우리들에게 중심을 잡으라고 한 말씀한다.



`평화`로 위장된 노벨 평화상은 오늘 우리 집 앞에 배달되는 신문의 국제면까지 누가 평화를 사랑하고 누가 평화를 헤치는 지 구분도 못하게 여론조작을 한다. 북미관계나 국제정세를 부시정권을 조종하는 미 군산복합체들이 `없는 긴장도 만들어 긴장을 격화시키는` 군사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줏대를 가지고 세상을 보아야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 있다.



손자는 신문에서 국가미사일 방위체제(엔엠디)구축이라는 굵은 글자체만을 보지 않는다. 굵은 글자체로 뒤에 숨은 미 군산복합체를 본다. 사실 엔엠디는 미 본토를 공격하는 상대방 미사일을 땅 위에서 다른 미사일을 쏘아 맞춘다는 것인데 이는 `총알을 총알로 맞춘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어거지 군비확산 정책이다. 그럼으로 `총알을 총알로 맞추는` 공상소설 같은 세계적인 여론조작은 `별들의 전쟁`처럼 북한의 정치군사력에 의해 파탄날 날이 머지 않았다.



손자병법의 가르침은 아기들의 티없는 눈동자처럼 참 맑다.



첫 번째, 손자병법은 `사실을 제대로 보라`고 가르친다.


사실, 미국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 생산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다. 소국인 북한의 핵이 어떻고 미사일 위협이 어떻다고 퍼뜨리는 것은 사실을 가려 거짓을 키우는 대표적인 여론조작이다. 미 군산복합체가 세계의 여론조작에 통신사, 신문, 방송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뒤집어보면 북한의 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이 아니라 미국 미사일이 위협적인 것이 맞는 말이다. 그래서 초강대국 미국의 미사일 따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서 스스로 국방력을 튼튼히 다지는 것은 북한의 경우에 더욱 절실한 문제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두 번째, 손자병법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가르친다.


이 병법은 98년 8월 31일,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1만 2천 킬로미터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한 북한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킴으로써 세계적인 정치·군사적인 판도를 바꿔 놓은 병법이었다. 엔엠디가 미국의 21세기 제국경영을 위한 핵심적인 군사전략의 실체라는 것은 손자가 보기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또한 엔엠디가 미 군산복합체를 앞으로 10년 이상 안정적인 돈벌이를 할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 군산복합체의 일방적인 바램일 뿐이다. `광명성 2호`는 엔엠디와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법을 보여줄 것이다.


세 번째, 손자병법은 `유비무환`을 가르친다.


미국은 엔엠디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먼저 부시정권은 엔엠디 구상에 내재한 기술적 문제와 높은 비용, 그리고 아직 공사를 시작할 준비조차 돼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무비유환`인 셈이다. 손자가 보기에도 코웃음이



원본 기사 보기: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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