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부모님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 시


미안한 가방의 지퍼는 밤중에만 열린다

최혜숙 시인




가방의 지퍼를 열기도 전에 수많은 눈동자가 달라붙는다

가방의 배가 점점 볼록해진다

사방에서 반짝이는 어린 눈들이 아버지의 가방을 기웃거린다

가방은 점점 커져서 온 방을 다 차지하고

자꾸만 식구들을 방밖으로 밀어낸다



아버지의 손때를 덕지덕지 매달고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다

각진 모서리엔 낯선 냄새가 빼곡히 숨어있다

모두들 잠든 한밤중에 소리 없이 가방이 열린다

가방 안에서 낮게 코를 골며 주무시는 아버지



다음날 아침

방구석엔 훌쭉해진 아버지의 가방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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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현실 등단


작가의 말/
어린시절 군대에서 외출나오신 아버지의 더불 백 터질 것처럼 항상
배가 불렀지요 선물에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오른 나는 가방을
만져보고 빨리 열리기를 기다렸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좀체 가방을
열지 않고 난 그만 잠이 들고 말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니 가방은
텅 비어 있고 선물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그 서운함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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