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 나라만의 특성이나 특징이 있다. 아무리 작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특이한 점을 반드시 갖고 있다고 봐도 틀림없다. 그것이 그 나라만의 문화다. 어떤 나라든지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발달해왔다. 역사가 오래된 나라일수록 문화의 깊이는 깊다. 문화는 국민의 생활을 편안하게도 하고 국가의 안보를 지켜내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문화란 겉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내면적으로 응축되어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지 실은 정신적인 면이 훨씬 크다. 정신적으로 기초가 되어있어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생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단군 이래 5천년을 건너오며 유구한 역사성을 자랑한다. 대륙에서 발원하여 한반도에 터를 잡은 이래 중국과의 끊임없는 국경분쟁과 왜구와의 남해안 일대 해적행위를 겪어야 했다.

이로 인해서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화랑도 등 국난에 대처하는 안보문화에 능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고려의 서희나 강감찬, 조선시대의 이율곡이나 이순신 등은 이러한 문화적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해와 시기의 대상으로 온갖 수난을 받으면서도 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 한 것은 오늘날에도 후손들의 추앙과 존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백제의 왕인박사는 일본에 한자(漢字)를 전하는 등 일본문화의 꽃을 피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일본문화의 시조로 일컫는다. 왕인박사에 대해서는 고향인 영암에서 대대적인 왕인유적지를 조성하여 성지로 만들어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여 그 업적을 찬양한다. 이런 역할로 볼 때 왕인이야말로 오늘날 아무에게나 붙여주고 있는 한류의 시조가 아닐까 싶다.

일본은 왕인의 문화전수에 감사하면서도 임진왜란을 일으켜 7년 동안의 분탕질로 조선국토를 폐허화시키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조선을 합병하여 창씨개명과 독립운동자 살해로 씨를 말리려고 시도했다. 왕인이 전해준 고귀한 문화를 후손들에게 아름답게 물려줬더라면 그처럼 못된 짓을 했을 리 만무하다. 막부정권의 사무라이들은 칼질에만 익숙했지 문화와는 담을 쌓고 지낸 때문이다.

사명대사가 통신사로서 일본에 다녀간 것은 왕인이후 두 번째 조선의 거인을 맞이한 것으로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줬다. 지금까지도 기록과 그림으로 통신사 행렬을 극찬하고 있으며 외경의 눈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한반도를 무시하고 기회만 있으면 집어 삼키려는 야욕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흘러간 요즘 배용준이라는 한국의 배우가 일본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에게는 최고의 경칭으로 ‘욘사마’로 부른다. 영국 왕이 내리는 ‘기사’의 작위가 경(卿)으로 존경받는 것과 비슷하다. 그가 한국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것은 10년 전 쯤 ‘겨울연가’라는 TV드라마가 일본에서 방영되면서부터다. 최지우와 함께 아름답고 감성적인 연기와 화면에 펼쳐지는 경치가 대 호평을 받았다. 이후 일본에서는 주로 주부층을 중심으로 한국 드라마 붐이 일어났고 여러 배우나 탈렌트들이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시들해진 줄 알았던 배용준이 며칠 전 도쿄돔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인데 본인이 직접 원고를 쓰고 사진까지 찍어 그 느낌을 전하는 답사기 또는 탐방기 같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일본 출판사가 무려 8억원의 선인세(先印稅)를 주고 일본어 독점출판권을 가져갈 정도로 상품성은 높다. 도쿄돔을 가득채운  5만 명의 입장객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전국의 극장에서 실황중계를 봤다니 이 날만은 배용준 혼자서 일본을 독점한 셈이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다. “해외 팬들이 한국에 왔다가 촬영장에서만 맴돌다 돌아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책을 쓰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도 과거에 무엇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지 궁금했다”고 인간내면의 천착(穿鑿)을 보였다. 일본총리 하토야마의 부인 미유키 여사와의 환담에 대해서도 “문화교류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으며 한국어로 인사말을 나눴다”고 말했다. 특히 한류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그것은 일방적인 표현으로 한국에 무릎 꿇었다는 식의 표현은 한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아주 옳은 말이다. 한류는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 ‘한국적인 것’ ‘한국식’ ‘한국문화’등을  모두 합쳐 외국인들이 ‘한류’라고 표현해야만 어울리는 단어다. 우리가 양복, 양식, 일식이라고 쓰는 것과 같다. 마이클잭슨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지만 미국신문이 미류(美流)라고 쓰는 것을 봤는가. 우리 언론에서도 앞으로는 한류를 풀어 써서라도 일방적인 자만에 빠진 용어인 ‘한류’는 뒤로 물리고 겸손한 용어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온 듯싶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에게 용어선택을 하라고 하면 ‘한식’(韓式)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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