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어느 봄날이었다. 하동IC를 빠져나와 하동읍내로 향하는 내내 왼쪽 창밖을 따라 잔잔한 물줄기가 이어졌다. 보드라운 물길을 따라 흩날리는 화개의 벚꽃은 많이도 아련했다. 봄의 정점을 알린 후 꽃비되어 물줄기 주변을 맴도는 벚꽃.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다. 그가 섬진강이라는 것을.

단순히 ‘아름답다’는 단어로 봄 섬진강을 채우기는 곤란하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다고 해야 할까. 봄을 품은 섬진강은 고요하고 아릿하다. 섬진강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자. 그저 보기만 해도 차고 넘치는 섬진강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보이는 것만 살피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남도대교가 생기기 전 섬진강 줄배가 영남과 호남을 이었다. 축제장에서 나룻배 체험을 할 수 있으니 기억해두자 <사진제공·광양시청>



각도를 조금 달리해 남해에서 섬진강을 바라보자. 물줄기 왼쪽으로 전남 광양이, 오른쪽으로는 경남 하동이 닿는다. 이어 전남 구례를 지나 곡성·순창으로 뻗은 물줄기는 영남과 호남을 가르는 동시에 잇는다. 이번 여행의 주인공은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봄꽃이다. 맞다. 섬진강을 따라 전남 광양 매화마을과 경남 하동의 벚꽃 그리고 전남 구례의 산수유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벚꽃은 아직 이르지만 이왕 섬진강 줄기를 따라가는 김에 살짝 들러보자. 벚꽃이 만개할 즈음 다시 찾아오는 것도,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을 상상하는 것도 모두 향긋하다.



아련한 섬진강의 봄날, 광양 매화마을

먼저 광양 매화마을부터 출발이다. 매년 3월 중순에서 말 즈음 광양 다압면 섬진마을에서는 매화축제가 열린다. 2011년, 구제역으로 공식적인 축제와 행사가 없었음에도 찾는 이들이 많았던 봄꽃 축제의 대표주자다. 본명은 섬진마을이건만 매화가 하도 많아 흔히들 ‘매화마을’이라고 부른다. 2012년 올해 축제는 3월17일부터 25일까지 9일간 진행된다. 강력한 꽃샘추위 덕분인지 축제장을 찾은 3월20일에도 아직 매화는 만개 전이었다. 양지바른 곳에 터를 잡은 매화나무 몇몇이 하얀 꽃잎을 자랑할 뿐이다. 현장에서 만난 축제 관계자는 “3월 말에서 4월 초는 되어야 만개할 것”이라며 “만개시기와 축제 기간을 딱 맞추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백운산 자락 1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품은 덕분에 ‘매화마을’이라 불리는 섬진마을의 봄 풍경. 만개한 하얀 매화가 아련한 봄을 그려낸다
<사진제공·광양시청>




처음 광양 섬진마을을 찾았을 때에는 만개한 매화를 볼 수 있었다. 봄볕 품은 산언덕에 눈송이처럼 피어난 하얀 매화꽃 뒤로 섬진강이 유유히 흘러갔다. 올해 매화는 만개 전이었지만 언제고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섬진강은 여전했다. 이제 곧 봄볕 가득 스며든 섬진강 주변으로 하얀 매화꽃잎이 꽃비를 뿌릴 것이다. 그 즈음 섬진강이 품은 재첩과 참게, 그리고 벚굴에 살이 오르며 봄을 채워 가리라. 참, 벚꽃 필 무렵 난다고 벚굴이라 이름 붙은 그는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 나는 봄별미다.



[왼쪽부터]2012년 3월 매화마을에서 바라본 섬진강 /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매화는 활짝 꽃을 피워냈다

[왼쪽]청매실농원 마당을 가득 채운 장독대
[오른쪽]청매실농원 뒤에 자리한 왕대밭. 영화 <취화선>을 촬영한 곳이다



우선 매화마을부터 한 바퀴 돌아보자. 매화마을 초입에서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 안내책자를 챙기는 게 먼저다. 초입 안내판에는 더 자세한 트레킹 지도가 준비되어 있다. 축제 기간이 아니라면 안내판으로 대신하면 된다. ‘낭만으로’ ‘사랑으로’ ‘소망으로’ ‘추억으로’ 등의 산책로는 모두 15분에서 30분 정도면 걸어볼 수 있다. 대부분의 코스가 매화마을의 원점으로 꼽히는 청매실농원과 닿는다. 청매실농원 뒤로 자리한 대숲을 지나 만나는 전망대는 절대 놓치지 말자. 청매실농원에 자리한 수천개의 장독대와 함께 매화 그리고 섬진강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트’다. 매화마을 곳곳에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소로 선택된 공간이 제법 있다. 드라마 <다모>의 초막, 영화<취화선>의 왕대숲 등을 기억해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왼쪽]축제기간에는 야외무대에서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오른쪽]2012년 3월20일 매화마을 풍경. 축제는 3월25일까지이지만 만개한 매화는 축제 후에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넉넉하게 매화마을을 살피려면 두어 시간은 필요하다. 가만, 매화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어디일까. 취향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마도 청매실농원이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매화마을에서는 청매실농원을, 청매실농원하면 홍쌍리 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매실박사’라 불리는 그녀는 지금의 매화마을 농원을 만든 장본인. 농원 마당은 장독대로 가득 차 있다. 매화 뿐 아니라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 역시 귀하신 몸이다. 꽃이 피고 지면 5월 말에서 6월 중순 매실이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알려졌으며 이땅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져 고려시대부터 약재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매실은 술이나 장아찌 또는 음료수로 맛볼 수 있다.



영남과 호남이 어우러지는, 하동 화개장터의 벚꽃

자, 이제 매화향기로 봄내음을 맡았다면 다시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보자. 고소산성을 지나 화개면에 도착하면 화개천과 닿는다. 저 위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물줄기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몸을 섞는 곳, 남도대교가 전남과 경남을 잇는 이곳에 화개장터가 있다. 예전의 화개장터는 화개천을 사이에 두고 북쪽, 그러니까 화개교 건너 자리했다. 지금은 화개교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벚꽃이 만개한 하동 십리벚꽃길. 2012년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4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열릴 예정이다




옛날 화개장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약용 선생은 <화개동을 노래함>에서 ‘장날이면 포구에는 돛단배들이 떼 지어 몰려든다’며 ‘중국 비단이 들어오고 울릉·제주 생선이 화개로 든다’고 노래했다. 바다와 닿는 대부분의 강줄기가 그러했듯 섬진강 하구 역시 수운이 발달했음을 짐작케 하는 구절이다. 각종 물자를 실은 전국 팔도의 배는 물론 한반도 남쪽 끝이라는 위치 덕분에 이웃나라 물품도 들고 나기 수월했을 것이다.



바깥에서 바라본 하동 십리벚꽃길. 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혼례길’이라고도 전해진다



수운의 발달은 곧 각종 물자와 함께 사람들을 모이게 했고 이는 난전, 곧 ‘장(場)’의 형성으로 이어진다. 서해와 닿는 금강 끝자락 강경장을 떠올린다면 좀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중부 지역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금강 줄기가 서해와 몸을 섞기 전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 배가 드나들던 강경포구에 전국 3대 장으로 꼽히는 강경장이 있었다. 섬진강 줄기 화개장 역시 같은 맥락이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로 꼽혔다. 지금의 화개장터는 1999년 12월 복원사업으로 새롭게 조성된 것. 한창때의 명성과 규모는 아쉽지만 옛 장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위로가 된다.

이 화개장터는 섬진강과 화개천이 더해지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화개천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쌍계사와 닿는다. 화개장터와 쌍계사를 잇는 초입이 바로 그 유명한 쌍계사 십리벚꽃길이다. 화개장터 벚꽃길이라고도 한다. 봄날의 꽃비는 문장이나 말로 풀어낼 방법이 없다. 그야말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2012년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오는 4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진행된다. 함께 걸으면 백년해로한다는 풍문 덕분에 더욱 유명한 쌍계사 십리벚꽃길이 이곳에서 화개천을 따라 쌍계사 부근까지 이어진다.



샛노란 산수유가 전하는 봄 노래, 구례 산수유마을

하동에서 섬진강을 따라 19번 국도를 타고 전남 구례로 들어선다. 산수유마을로 알려진 산동마을을 찾아 가려면 월전리에서 섬진강과 더해지는 서시천을 따라 가면 된다. 19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산동마을과 닿는다. 먼저, 섬진강과 서시천이 만나는 즈음 자리한 구례 관광안내소에 들러 보는 것도 좋다.



노란 산수유꽃으로 일렁이는 산수유마을 풍경 <사진제공·구례군청>


광양이 매화향에 취해 있는 동안 구례는 노오란 산수유꽃 물결이 일렁인다. 지리산을 등에 업고 구례분지를 품은 산동마을. 이제 막 깨어난 산수유의 노란빛이 수줍다. 광양의 매화와 마찬가지로 아직 만개 전이다. 3월23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축제기간에 만개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마을주민들은 비나 바람이 심하지 않다는 가정하에 3월말에서 4월 초 즈음으로 만개 시기를 예측했다. 사실 만개 전이나 후나 산수유마을을 찾은 이들이 신이 나는 건 매 한가지일 터다. 꽃바람 섞인 공기에 속이 뻥 뚫리니 그 정도면 산수유꽃도 제 역할은 다 한 셈 아닐까.

 


병아리처럼 노란 산수유꽃으로 가득 찬 산수유마을<사진제공·구례군청>

봄이 깊어지면 산수유마을 돌담길을 따라 산수유들이 들어찰 것이다. 축제를 이틀 앞둔 상위마을의 산수유는 이제 막 깨어나고 있었다



막 깨어난 병아리 같은 산수유꽃이 반갑던 차,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산수유가 이렇게 많은 걸까.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에서 한 처녀가 시집오면서 가져온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산동면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그럴만도 싶다. 또 하나, 척박한 산자락 마을에서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산수유 밖에 없었다고도 전해진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별다른 선택권 없이 심었던 산수유가 이렇게 효자 노릇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국에서 봄이면 산수유를 보러 산동마을로 몰려드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왕 산수유를 보러 산동면을 찾았다면 산수유마을을 살핀 후 산수유 시목(始木)이 자리한 계척마을도 들러보자. 처음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산수유를 볼 수 있다. 더불어 산수유마을로 흔히들 알고 있는 상위마을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한 중동 원좌마을도 놓치지 말자. 산수유축제의 메인 장소다. 내비게이션에 ‘산수유마을’만 찍고 가다 상위마을만 보고 오기에는 너무 아깝다. 여유가 있다면 <중동구판장>의 닭튀김도 기억해두자. 노오란 산수유에 마음이 살랑, 노릿한 닭튀김에 몸이 호강한다.

 
여행정보

1. 찾아가는 길

광양 매화마을
남해고속도로→진월IC→2번 국도→861번 지방도→신원초교→매화마을

하동 화개장터
남해고속도로→하동IC→19번 국도(하동읍 방면)→화개장터(→2번 군도→쌍계사)

구례 산수유마을
남해고속도로→하동IC→19번 국도(하동읍 방면)→화개장터→19번 국도(구례 방면)→산동로타리에서 우회전→중동마을→상위마을(산수유마을)

광양~하동~구례
남해고속도로→진월IC→2번 국도→861번 지방도→신원초교→매화마을→861번 지방도(화개 방면)→남도대교 건너면 바로 화개장터→19번 국도(구례 방면)→산동로타리에서 우회전→중동마을→상위마을(산수유마을)


2. 맛집

*광양
삼대광양불고기: 광양읍 / 광양불고기 / 061-763-9250
섬진강고향집: 다압면 / 재첩 / 061-772-0766

*하동
하동원조할매재첩식당: 하동읍 섬진강대로 / 재첩 / 055-884-1034
원조하동할매재첩식당: 하동읍 섬진강대로 / 재첩 / 055-883-8520

*구례
할매된장국집: 구례군 산동면 / 버섯비빔밥 / 061-783-6931
중동구판장: 구례군 중동면 / 닭튀김 / 061-783-1333




3. 숙소

*광양
티파니모텔 : 광양읍 / 061-762-3833
칸무인텔: 다압면 / 061-772-5482

*하동
그린힐여관: 하동읍 섬진강대로 / 055-884-0004
들꽃산방: 하동군 화개면 / 011-559-2399

*구례
지리산송원리조트: 구례군 산동면 / 061-780-8000
지리산가족호텔: 구례군 산동면 / 061-783-8100



출처:글, 사진: 한국관광공사 국내스마트관광팀 이소원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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