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욱  편집국장 
지난 4.11 총선 유세 중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총선을 “이념투쟁이냐 민생이냐를 결정하는 선거”라고 규정했다. 박 위원장은 총선이 끝난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민생을 강조했다.

한명숙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도 유세에서 “99%의 민생을 파탄 냈던 이명박 정권 4년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이제 선거는 끝났고 정치권은 약속대로 민생을 보살펴야 할 때다.

정치권이 공짜 복지로 민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기획재정부는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다 지키려면 5년간 최소 268조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간 최소 53조 6000억원의 추가 재원이 소요된다는 대차대조표를 제시한 이상 정치권도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여야가 쏟아낸 복지 공약은 재정 형편으로 보아 실현 여부가 불확실하다.
이에 따라 재원 조달 계획은 물론 증세 세목, 세출 구조조정 계획 등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세 부담 증가로, 또 누군가에게는 혜택 축소나 철회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막연히 세 부담 증가를 최소화하고, 불요불급하거나 중복되는 세출을 줄이겠다는 식의 총론만으로는 나라살림을 어디로 끌고 갈지 판단하기 어렵다.

민주당은 올해 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외쳤다가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자 ‘재협상’으로 말을 바꾸었다. 정권 또는 국회 다수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제 협정을 뒤집거나 폐기하는 나라라면 세계가 상대하기 꺼릴 것이다.

국정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민주당이 국격을 추락시키는 과도한 주장을 펴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새누리당이 국회 의석수의 과반(過半)을 차지함에 따라 한미 FTA 폐기 주장은 현실적인 추진 동력을 잃었다. 정치권과 정부는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조항 등을 보완하는 대미(對美) 협상에서 한미 FTA 반대파의 불만을 줄이려 하기보다는 종합적인 국익 극대화에 나서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정 사업을 대폭 늘린 결과 2007년 298조 8000억원이던 국가 채무가 지난해에는 420조 7000억원으로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34.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97.6%에는 한참 못 미친다지만, 부채 증가속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잠재성장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고민은 없이 ‘대기업 때리기’와 ‘나눠 주기’로 표심을 자극한 정치권의 행태는 매우 위험하다.

야권은 출자총액 규제의 부활, 법인세 인상 등을 공약했고 19대 국회가 시작되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재벌개혁’ 구호를 감안하면 대선 정국까지 순환출자 해소 등 대기업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나 횡포는 법에 따라 조치해야 옳지만 기업 규모와 이익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시장경제 원칙에 반하는 규제를 한다면 일자리 감소 같은 심각한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가 이어지면 민생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주장이다.

특히 기업정책은 외국인투자가가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최근 한국의 경제 수준에 맞지 않는 정치권의 복지 확대 공약을 우려했다.

새로 구성될 국회가 공약의 거품을 빼고 알뜰하게 나라살림을 꾸려 나가야만 민생을 살찌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새 국회는 재정과 국민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잣대로 터무니없는 복지공약은 과감히 걸러내야 한다. 그리고 수출 주도, 재벌 의존적인 경제 구조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새 국회는 우리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 방향타를 바로잡아야 할 시급한 때라는 것을 절실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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