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만명 회원정보 유출당한 네이트, 위자료 지급하라" 첫 판결

법원이 작년 7월 해킹으로 인해 개인 정보가 유출된 네이트(포털사이트)·싸이월드(미니홈피) 회원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해, 위자료를 주라는 첫 판결을 내렸다.

대구지법 구미시법원의 임희동 판사는 26일 네이트·싸이월드 회원인 유능종(47) 변호사가 운영업체인 SK커뮤니케이션즈를 상대로 "손해배상금 300만원을 달라"며 낸 소송에서 "SK컴즈는 유씨에게 위자료로 1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네이트·싸이월드 회원 3500만명의 주민등록번호나 주소, 전화번호 같은 개인 정보가 해킹을 당해 중국 해커 집단으로 넘어간 사건이다. 이런 식으로 넘어간 개인 정보는 통상 보이스 피싱(전화사기)이나 스팸문자를 보내는 데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 경찰이 중국 공안과 공조 수사를 진행 중이다.

사건 피해자들은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인터넷상에서 수십~수만명씩 모임을 결성해 단체로 소송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SK컴즈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람도 전국적으로 수천명에 이른다. 정보유출 피해를 입은 사람 수가 무려 3500만명에 이르기 때문에, 초대형 소송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다.

산술적으로 피해자 3500만명이 모두 이번 판결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된다면, 위자료는 35조원에 이를 수도 있다.

한국에는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대표자가 소송을 내서 이길 경우 소송을 내지 않은 피해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인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위자료나 배상을 받으려면 피해자 본인이 직접 소송을 내야 한다.

이번 소송처럼 소송가액이 2000만원 미만인 민사 소액사건은 판결문에 이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임희동 판사는 이번 판결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위자료는 법적으로 위법하거나 명백한 과실이 있을 때 지급하게 돼 있어서 임 판사는 SK컴즈가 해킹을 제대로 막지 못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낸 소송에서도 이번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해킹을 막지 못한 과실을 어디까지 인정할지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향후 진행될 소송에선 ‘해킹 방지 기술’과 SK컴즈의 과실 여부를 둘러싼 법정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컴즈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SK컴즈 측은 “임 판사에게 현재 진행 중인 경찰 수사를 지켜본 뒤 판결하기를 요청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며 “내부적으로 검토를 거쳐서 항소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개인 정보 유출 피해와 관련한 단체 소송의 결론은 피해자들에게 꼭 유리하다고 보기만은 어렵다.

지난 2008년 인터넷 쇼핑몰 옥션이 해킹당하면서 고객 정보가 무더기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하자 14만여명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옥션이 관련법이 정한 기준을 어겼다고 볼 근거가 없다”며 피해자들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지난해 7월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의 개인정보 유출로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이 회사 초고속통신망 가입자들이 낸 집단소송에는 1심 법원이 피해자 2348명에게 모두 4억6000여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위자료 지급 판결의 이유는 하나로텔레콤 판결이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텔레마케터들에게 임의로 제공해서 불법행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아이폰 위치정보 수집 문제와 관련해서도 2만6000여명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기업의 과실이나 불법행위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법적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일각에선 변호사들이 수임료를 챙기기 위해 이 같은 소송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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