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는 학위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다. 평생을 바쳐 한 분야만을 파고들다 보면 그 방면에는 달통하게 된다.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분야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에 입각하여 모르던 분야에 접근하게 된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 또는 자연과학의 많은 분야를 혼자서 모두 섭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학문을 해도 전공분야가 다 다르다. 박사학위는 자기가 연구하고 탁마한 분야에서는 독보적임을 국가가 인정하고 증명해준 것 일뿐 모든 분야에 통달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 어떤 전공으로 받았던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고 하면 세상만사를 다 아는 양 인식하는 풍조가 있다. 광복직후 이박사, 조박사하면 이름을 굳이 댈 필요도 없이 이승만, 조병옥임을 누구나 알았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사실상 봉쇄되었다.

일제는 철저히 식민지 백성의 우민화정책을 강행했으며 돈 많은 일부의 자제들만이 유학의 길을 떠나 사각모를 쓸 수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학사학위를 받을 때나 한 번 써보고 두 번 다시 쓸 일이 없지만 일제 때는 사각모가 나타나면 모두 우러러 보았다.

일제가 철저히 대학교육을 기피하자 3.1만세운동 이후 우리의 선각자들이 모여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논의하게 된다.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선이 왜놈들에게 망한 것은 백성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선진과학 문명을 따라가지 못한데 있음을 개탄하고 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젊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터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민립(民立)대학 안이다. 당시의 경제주체는 지주(地主)계급이었기 때문에 각도(各道)의 대표적인 지주들이 민립대학을 세울 수 있는 자금을 대기로 했으며 구체적인 분담금도 정해졌다. 조선 역사상 대학의 역할은 성균관이 전담했는데 그나마 왜정 하에서는 폐쇄되었다. 따라서 민립대학이 설립되면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이 된다. 총독부는 발칵 뒤집혔다.

조선인들의 손으로 대학이 설립되면 통제하기도 힘들고 엄청나게 많은 교육 수요에 의해서 수많은 고급 지식인들이 양산되는 것이 두려웠다. 많이 배운 사람이 결국 식민지를 벗어나려는 지도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은 그들도 충분히 내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태동하기 시작한 민립대학을 힘으로 억제하게 되면 제2의 3.1운동이 또 일어날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고민을 거듭하던 간악한 일제는 묘수를 찾아냈다. 민립대학 추진자들을 만나 관립(官立)대학을 설립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민립추진자들은 힘으로 맞설 수 없음을 깨닫고 이를 받아드렸다. 민립대학의 꿈은 일제의 교육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세울 수 없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총독부에 의해서 세워진 최초의 현대 대학교육 기관이 이름하여 경성제국대학이다. 오늘날 서울대학교의 전신(前身)인 경성제대는 일본소재 동경제대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졌다. 그나마 일본인 학생의 입학에 특전을 부여하고 조선인들에게는 학생숫자, 전공학부 등이 일본의 조선 통치에 유리하도록 짰다.

조선인의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를 눈곱만큼 충족시키면서 더 철저하게 식민지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더구나 대학이 생기긴 했지만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시스템은 갖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경성제대는 학부에 국한되었다. 석사, 박사학위를 따려면 외국으로 나가 더 크고 넓은 세계에 접해야 했다. 박사가 드물 수밖에 없는 연유다.

8.15광복 후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 나라에는 무수한 대학이 난립한다. 그동안 억제되었던 학구열이 새 세상을 만나 마음껏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 같지 않은 대학들이 판자 집처럼 늘어났다. 전쟁을 겪으며 대학재학생의 특혜가 발표되자 너도나도 우골탑(牛骨塔)으로 몰려들었다. 외국에 나가 학위를 받아오는 엘리트는 참으로 귀한 존재여서 경쟁적으로 모셔갔다.

박사학위는 무소불위의 상징이 되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박사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국의 사기꾼들이 이름도 없는 대학의 박사학위를 바겐세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산지는 미국이다. 한국의 명사들은 비싸게 사들였다. 나중에 들통 났지만 실존하지 않는 대학의 박사들이 큰 소리 땅땅 치며 거들먹거린 것은 참으로 코미디였다. 국회의원 출마자들도 사들인 ‘박사’로 당선을 거머쥔 이들도 있다.

지금은 대리집필이나 표절로 정식박사가 되는 수가 있다. 이 것 역시 가짜박사임에 변함없다. 더구나 대리집필자가 표절한 논문에 대해서는 의뢰자가 알 길이 없다. 대리집필자는 돈을 받고 써주는 일이니 문책(文責)은 모두 의뢰자의 몫이다. 이런 방법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해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이번 총선을 겪으며 그 효용성을 알게 되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학위를 땄다면 그것은 사기다.

당선자 중에도 상당수가 그런 사람이라는 풍문이다. 당국에서는 이에 대한 진위를 조회(照會)하고 학위논문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 의구심이 크기 때문이다. 단 한 점이라도 표절이나 대리집필이 확인되면 스스로 사퇴하는 길이 정자(政者) 정야(正也)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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