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는 소리 들으며 달려가고픈 우리들의 장터


하남시 덕풍 재래 장터 / 김리영

푸줏간 쇠고리에 매달린 정육덩어리처럼
피 고인 채 숨 끊어지려 하였지.
오레곤 서부, 태평양에서 바람 불어오면
몰아쉴수록 숨통 조여 왔어.

수선화 낮게 흔들리던 날
지붕 위에 위성 접시 달아
재방송 되는 한국말 마감 뉴스를 보았을 때,

비로소 조금씩 트여오던 숨!
앓던 내부의 힘으로 여기까지 돌아와 서고
먼지 이는 찻길, 새 봄 밝힌 날,

그릇에 좁쌀, 녹두, 참깨 담아 파는
할머니의 미소와 하품 사이 오가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그리워했을 냉이 쑥 달래의 향기!
이제 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승에서 목 놓아 울 일은 없겠지.

하얀 천막 사이, 오색 파라솔 아래
씁쓸한 민들레 이파리마다 살아 붙은 숨!
5일마다 흐린 날에도 장이 서면,
내 마음 발가벗고 장터 한가운데 나가
깊은 숨 고르며 오래 거닐 수 있을 거야.

 ***시작노트 - 김리영

사람은 앞 일을 알 지 못한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어 내일의 일을 모르고 산다.
친미주의자도 아닌 내가 무언가에 떠밀리듯 미국으로 갔고
한국인이 거의 없는 도시에서 만 9년을 살았다.
바다처럼 큰 호수들과 만년설이 보이고 사슴들이 내 차 옆을 스쳐 갔다.
자유로운 캠퍼스에서 어릴 때부터 받고 싶던 미술교육을 받으며 행복 했지만,
누군가 말했던가. 모국어로 글을 쓰고 싶은 푸른 끼를 가지고 어떻게 떠나서 살 수 있겠냐고......
돌아온 나는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 우리말의 잔묘미에 자지러지듯 웃다 울고 말았다.
내 어머니가 나를 부르고 처음으로 대답하던 한국어가 아니라면, 어떻게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홉 살 이전에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은 자주 체했다
우거지국과 김치 이파리에 싸 먹는 콩자반이 미치도록 먹고 싶었다
미나리, 쑥갓, 깻잎의 향기가 코 끝에  머물렀고 흔하던 콩나물도 날마다 생각이 났다.
한국 음식이 조금만 덜 먹고 싶었다해도 나는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사람은 제가 자라난  땅에서 자란 곡식과 푸성귀를 먹어야 삶의 제맛을 느낀다.
이 시는 내가 고국에 돌아온 진정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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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현대문학>에 시 '죽은 개의 슬픔'외 5편 당선으로 등단,세종대학 무용교육학과 졸업. Southm Oregon University Art 수학.1993년월간 현대시 기획시집<서기 1054년에 폭발한 그>, 1999년 <바람은 혼자 가네>, 2006년<푸른 콩 한줌>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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