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욱 편집국장  
지난 19일 오후 8시3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학원 수업을 마치고 승합버스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가던 A양(12)이 현관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자동문을 여는 순간 한 남자가 따라 들어갔다. 술에 취한 상태로 약 1km 정도를 따라온 그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A양을 낚아채 엘리베이터에 탔다.

3층에서 내린 그는 계단에서 A양의 옷을 벗기고 자신의 하의를 벗은 다음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어머니 B씨(45)가 온몸으로 막는 바람에 도망갔다.

그는 오후 9시쯤 현장에 두고간 자신의 신분증이 든 가방을 되찾으려 왔다가 바지를 뒤집어입고 속옷도 안 입은 걸 수상히 여긴 경찰관에 의해 현행법(성폭력 하려한 혐의)으로 붙잡혔다.

25일 구속된 회사원 이모(27)씨의 사건조서 일부분이다. 이씨의 범행시간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녁, 장소는 피해자의 아파트 계단이었다.

아동 성폭행은 일반인의 상식처럼 인적이 드문 시간대와 한적한 장소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남 통영에서 최근 발생한 한아름(10)양 살해사건의 범인 김점덕(45)은 7년 전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던 전과자다. 하지만 그 사실은 경찰서든 인터넷 사이트든 어디에도 공개돼 있지 않았다.

전과 기록이 사전에 공개됐더라면 한양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양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공개(2010년  도입)·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2008년 도입) 부착 명령의 소급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경찰은 김점덕이 아름양을 죽이기 전에 성폭행 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DNA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성폭력(性暴力)’은 강간이나 강제추행 및 성희롱, 카메라 등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모든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말한다. 성폭력의 유형은 행위의 내용, 가해자와의 관계, 성폭력이 일어나는 공간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가 있다.

성폭력의 하나인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 미수를 의미한다. 강간은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부녀와 교접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형법 제297조에 따라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상습적 성범죄자는 정신상태가 일반인과 확실히 다르다고 조언한다. 성범죄자 가운데 상당수는 ‘반사회적 정신장애’로 불리는 정신병적 특성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성범죄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재범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성범죄자들의 천국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엽기적인 성범죄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다. 어린이와 노인 등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범죄 수법 역시 납치, 취업알선 유인, 마취제 사용 등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된다.

그러나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잇따르고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는 전근대적 수사관행이 온존해 있는 게 현실이다.

대가족 제도가 무너지고 사회와 격리돼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우리 사회의 성범죄 양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지만, 성범죄를 대하는 우리의 인식과 예방체계는 여전히 후진적이다.

급증하는 성범죄를 막으려면 이같은 반성과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성폭력은 육체적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잔인한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반도에 수십 년만에 몰아닥친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7월 하순. ‘멀쩡한 회사원이 초저녁 어린이 쫓아가 몹쓸 짓’ 제하의 뉴스를 씁쓸한 마음으로 접하면서 이를 계기로 관계 당국에게 우리 사회의 허술한 성범죄 예방시스템을 촘촘히 다시 세워달라고 ‘다시 한 번’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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