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김종현(27·창원시청)은 2010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로 꼽는다.

한진섭(31·충남체육회), 김학만(36·국군체육부대)과 함께 나선 50m 소총 복사 단체전에서 ‘한끝 차이’로 준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1위를 한 미국과 1천791점과 같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동점시 표적 가장 안쪽의 작은 원(내10점) 안에 더 많이 명중시킨 팀의 순위가 우선하는 규정에 따라 2위로 밀렸다.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는 데에 다소나마 위안을 삼긴 했지만 한동안 국제무대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던 한국 소총이 모처럼 세계 정상에 오를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더 컸다.

그동안 한국 소총에 있어 세계의 벽은 높았다.

진종오(33.KT)의 등장을 계기로 최근 몇 년간은 권총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원래 한국은 주로 소총 종목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해왔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꾸준히 정상에 올랐고 올림픽에서 나온 첫 사격 메달도 1988년 서울 대회 때 현 차영철 대표팀 코치가 따낸 소구경소총복사 은메달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이은철(남자 소구경소총복사)과 여갑순(여자 공기소총)의 동반 금메달로 한국 소총은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하지만 1996 애틀랜타 대회 때 노메달로 상승세가 꺾였고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강초현(한화갤러리아)의 공기소총 은메달 이후로 올림픽 소총 종목에서는 한개도 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부터 사격복 강도를 제한하도록 규정이 바뀌면서 부드러운 사격복에 적응하지 못한 한국 선수들은 팔다리가 길고 탄탄한 골격의 서구 선수들에게 밀리기 일쑤였다.

그사이 권총에서는 진종오가 2004 아테네, 2008 베이징 대회에서 연속 메달을 따내며 전성기를 알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소총은 한진섭과 김종현 등 신세대 선수들의 등장과 함께 재도약을 꿈꾼다.

꾸준히 세계수준에 근접한 기록을 쏴온 이들은 2010년 뮌헨 세계선수권 50m 소총 복사 단체 은메달과 광저우아시안게임 복사·3자세 개인전과 단체전 석권으로 성과를 거뒀다.

2년 뒤, 이들은 ‘소총 메달 명맥을 잇자’고 다짐하며 함께 결전지인 런던 땅을 밟았으나 올림픽 무대는 쉽지 않았다.

10m 공기소총과 50m 복사에서 모두 메달 획득이 불발되면서 ‘한국 소총 부활’의 꿈은 다시 4년 뒤로 미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사격 마지막 날인 6일, 남자 50m 3자세에서 남자 소총사수 중 막내인 김종현이 은메달을 따내면서 한국 소총의 자존심을 세울 수 있게 됐다.

20년 만에 올림픽 시상대에 선 남자 소총 사수가 된 김종현은 시상식 뒤 인터뷰에서 "그동안 진섭 형과 함께 소총을 이끌어왔는데 둘이 열심히 했던 바를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메달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권총에서 금메달을 세 개나 따고 너무 잘해서 주눅이 들기도 했다"며 "그래도 (진)종오 형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같이 즐거워하자’고 말해줘 힘을 얻었다"며 ’금메달 기운’을 불어넣어 준 권총 동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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