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수단 10-10 초과 달성…金 종목 다양화·구기도 선전

7월 27일(이하 현지시각)부터 8월 12일까지 영국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순위 10위 이내) 목표를 내세웠던 한국선수단은 그 이상을 달성했다.

‘총’으로 첫 금메달을 일궈냈고, ‘활’로 한국 궁사의 위대함을, 그리고 유럽 전유물처럼 여기던 ‘검’으로 세계를 놀라게했다.

그래서 한국선수단의 최종병기는 총, 활, 검이라는 말도 나왔다.
17일간 지구촌을 달궜던 태극전사들의 드라마를 정리했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 낭보를 전한 사격 간판스타 진종오(33·KT). 11월 아빠가 되는 그는 이런 소감으로 대한민국 초보 아빠들의 가슴을 ‘찡’ 하게 했다.

7월 28일 영국 런던 그리니치파크의 왕립포병대기지 사격장. 남자 10미터 공기권총 결선이 열린 이곳에 마지막 한발을 남겨놓고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본선에서 5백88점을 쏴 1위로 결선에 오른 진종오는 첫발부터 5발까지 모두 10점 이상을 쏘며 2위와의 격차를 4.4점까지 벌렸다. 금메달은 떼어논 당상 같았다.

하지만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다. 6~9번째에서 9.3, 9.0, 9.4, 9.7을 찍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을 남기고, 이탈리아의 루카 테스코니에 불과 1.3점으로 앞섰다. 그러나 진종오는 만점에 가까운 10.8을 쏘고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50미터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진종오는 한국 사격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을 딴 주인공이 됐다.

진종오는 이어 8월 5일 남자 50미터 권총 결선에서 다시 금메달을 추가하며 2관왕에 올랐다.

‘겁없는 20세’ 총잡이 김장미의 반란

한국 여자 권총의 ‘샛별’ 김장미(20·부산시청). ‘겁없는 막내 총잡이’도 일을 냈다. 8월 1일 여자 25미터 권총 결선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사격에서 한국 여자 선수가 올림픽 메달을 딴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여갑순(금메달),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강초현(은메달) 이후 세번째다. 화약 권총에서는 사상 처음이어서 더욱 값졌다. 여자 사격이 20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서 따낸 금메달이다.

김장미는 얼굴을 총에 갖다붙이는 소총 선수로 시작했다가 ‘덧니’ 때문에 자세가 나오지 않아 권총으로 바꾼 케이스. 총을 잡은지 5년 만에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궈낸 당찬 처녀다. 그는 “꿈에서도 금메달을 따는 생각을 했다. 본선에서 점수 차가 많이 나서 떨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막상 결선 무대에 서니 심장이 쿵쾅거렸다”고 했다.



 





한국 양궁은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한번도 여자단체전 금메달을 놓친 적이 없었다. 런던올림픽에서는 전무후무한 7회 연속 우승을 노렸다. 위업을 이루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여궁사들은 불굴의 투혼과 정신력으로 쾌거를 달성했다.

여자대표팀에서 최현주(28·창원시청)가 주인공이었다. 7월 29일(한국시각) 영국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양궁 여자단체전 결승. 결승전이 시작되자 빗줄기가 굵어졌다. 이성진(27·전북도청)과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가 각각 7점과 6점을 쏘면서 불안감은 증폭됐다. 악천후에 대비한 훈련을 많이 했지만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발목을 잡는 듯했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장미란이 역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메달 획득에 실패한 장미란이 역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간신히 태극마크를 단 최현주는 2엔드부터 4엔드 첫 발까지 연속 5발을 10점 과녁에 꽂으며 한국이 중국을 210 대 209, 1점 차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그리고 기보배는 마지막에 9점을 쏘면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최현주는 국내 선발전에서 한때 6위까지 처졌다가 비바람이 몰아친 경남 남해와 충북 진천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막판에 런던행 티켓을 거머쥐었으며 이번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기보배 2관왕… 김수녕·윤미진 계보 잇다

8월 2일 양궁 여자 개인전은 기보배가 장식했다. 금메달은 극적이었다. 결승에서 아이다 로만(멕시코)과 세트점수 5 대 5 동점을 이룬 뒤, 승패를 가르는 슛오프 한 발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기보배는 슛오프에서 8점을 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로만이 9점을 쏘면 금은 그의 차지가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로만은 실수로 8점을 쏘았고, 기보배의 화살이 과녁 중앙에 1센티미터 정도 더 가깝게 꽂혀 희비가 엇갈렸다. 한국 양궁이 여자개인전에서 2004 아테네올림픽 이후 8년 만에 정상을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기보배는 마지막 슛오프 상황에 대해 “너무 긴장해서 상대가 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맏형 오진혁, 남자 개인전 첫 금 ‘명중’

양궁 남자개인전에서는 ‘맏형’ 오진혁(31·현대제철)이 쾌거를 이뤄냈다. 8월 3일 결승에서 일본의 후루카와 다카하루를 세트점수 7 대 1로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이다. 한국이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오진혁이 처음이다.

오진혁은 8강전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을 세트점수 7 대 1로 꺾고 큰 고비를 넘겼다. 4강전에서는 중국의 다이샤오샹한테 질 뻔했다. 세트 점수 5 대 5로 비긴 뒤, 슛오프에서 9점을 쏴 1점차로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오진혁은 혜성처럼 나타난 ‘소년 신궁’이었지만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충남체고 2학년 때인 1998년 제5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고3 때 일찌감치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깊은 슬럼프에 빠졌다.



펜싱 김지연(왼쪽)이 여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러시아 소피야 벨리키야에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다.
펜싱 김지연(왼쪽)이 여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러시아 소피야 벨리키야에 공격을 성공시키고 있다.





 





런던올림픽 이전 언론은 모두 플뢰레 여자 간판스타 남현희(30·성남시청)에만 주목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 은메달 불운을 설욕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기대치 않은 곳에서 금맥이 터졌다. 주인공은 ‘무명’ 김지연(24·익산시청). 8월 1일 열린 사브르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소피야 벨리카야(러시아)를 15 대 9로 꺾고 한국 여자 펜싱 사상 첫 금메달 역사를 만들어냈다. 김지연은 우승 뒤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지연은 4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매리얼 재거니스(미국)한테 한때 8점까지 뒤졌으나 극적으로 13 대 13 동점을 만든 뒤 15 대 13 대역전드라마를 일궈냈다. 학창 시절 ‘발발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처럼 날쌘 발과 거침없는 성격이 금메달의 밑돌이 됐다.

사브르 남자 4총사, 한국 1백번째 금 선사

8월 3일엔 사브르 남자 단체전에 출전한 구본길(23), 김정환(29), 오은석(29·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원우영(30·서울메트로)이 결승에서 루마니아를 45 대 26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내 한국 펜싱의 돌풍을 완성했다. 하계, 동계 올림픽 통틀어 한국의 통산 1백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유도에서는 세계 1위 김재범(27·한국마사회)이 4년 전의 한을 풀었다. 그것도 그랜드슬램으로 완벽하게 풀었다. 7월 31일 영국 런던의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유도 남자 81킬로그램급 결승. 그는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패배를 안겨준 독일의 올레비쇼프를 유효 2개로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세계선수권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한국 유도 선수로는 이원희에 이어 두번째. 김재범은 “4년 전엔 죽기 살기로 했는데, 이번엔 죽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전국체전에서 왼쪽 무릎인대를 다친 데 이어 올해 초 왼쪽 어깨가 탈골되는 부상으로 몸상태가 성치 않았지만, 불굴의 투혼으로 정상에 올랐다.

송대남 33세 마지막 올림픽에서 ‘해뜰날’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한을 풀게 돼 굉장히 기분이 좋다.” 한국 유도대표팀 ‘맏형’ 송대남(33·남양주시청). 그는 8월 1일 남자 90킬로그램급 결승에서 쿠바의 아슬레이 곤잘레스를 누르고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고는 두 손을 번쩍 치켜올린 뒤 한없이 흐느꼈다. 연장 시작 11초 만에 거둔 기쁨이었다. 뒤늦은 나이에 올림픽에 출전한 그를 그 누구도 금메달 후보로 예상하지 않았다. 세계랭킹 12위.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유도 선수 중 10위 안에 못 든 유일한 선수였다. 집념과 패기로 일군 ‘인간승리’였다.

원래 81킬로그램 세계랭킹 1위였던 송대남은 2009년 파리 그랜드슬램유도대회 등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권영우에 밀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체급을 바꾸고 올라온 김재범에 밀려 출전권을 잃었다. ‘복병’ 김재범이 등장한 뒤로 줄곧 2인자였다.

베이징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뒤 큰 충격을 받아 6개월간 매트를 떠나 은퇴를 결심할 정도로 방황했다. “은퇴를 결심하고 도복을 입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무릎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서고 싶은 욕망이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웠다.

1년 동안 하루 5끼, 보통 운동선수의 4배인 2만칼로리를 먹으며 체중을 불렸다. 한 끼에 스테이크만 13개를 먹은 날도 있다. 모두 근육으로 만들려고 체중이 하루에 3~4킬로그램이 빠질 정도로 운동했다.



 





8월 6일 영국 런던 노스 그리니치 아레나에서 열린 체조 남자 도마 결선. 양학선(20·한체대)의 금메달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양학선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금메달 확률은 99퍼센트. 1퍼센트는 당일 컨디션에 따른 변수라고 했다. 자신이 개발한 ‘양1’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갖춘 그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양학선은 이날 결선 1차 시기에서 최고 난도 7.4점의 ‘양학선 기술’(도마를 두 손으로 짚은 다음 공중에서 3바퀴(1천80도)를 돌아 도마를 등지고 서는 기술)을 선보였다. 착지에서 두 발자국 정도 움직였으나 3회전을 정확히 해냈다. 16.466점. 2차 시기에서는 난도 7.0의 ‘스카라 트리플’(옆돌리기 식으로 도마를 짚어 공중에서 3바퀴를 도는 기술)을 뛰어 정확하게 착지했다. 점수는 16.600점이었다. 한국 체조가 올림픽에 참가한 지 52년 만에 나온 첫 금메달이었다. 양학선은 경기 뒤 “2차 시기 때는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고 컨디션이 좋았음을 털어놨다.



 





준결승 때부터 오른쪽 눈은 퉁퉁 부었다. 앞이 안 보여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현우(24·삼성생명)는 부상을 이겨내고 기어코 한국 레슬링에 금메달을 안겼다.

8월 7일 영국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킬로그램급 결승. 김현우는 멍든 눈을 하고 결승에서 터마시 뢰린츠(헝가리)를 세트점수 2 대 0으로 제압하고는 태극기를 들고 환호했다. 김현우의 투혼으로 한국 레슬링은 8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레코로만형 66킬로그램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김현우가 처음이어서 더욱 값졌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는 유난히 ‘오심’이 많았다. 특히 한국선수단에 희생자가 적지 않았다. 비록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그들의 투혼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열띤 박수로 성원했다.

수영 남자 자유형 4백미터 올림픽 2연패에 도전했던 박태환(23·SK텔레콤)이 첫 희생자였다. 7월 28일 런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예선 3조경기에서 박태환은 3분46초68를 기록해 조 1위, 그리고 예선 전체 4위로 결선에 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DSQ’(Disqualified·실격)란 표시가 느닷없이 떴다. 부정출발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선수단의 공식 항의로 몇 시간 뒤 실격 판정이 번복됐다. 페이스를 잃은 박태환은 결선에서 아쉽게 중국의 쑨양(20)한테 금메달(3분40초14·올림픽 신기록)을 내주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7월 29일 유도 남자 66킬로그램급에 출전한 조준호(24·한국마사회)는 두번째 오심의 피해자였다. 이날 8강전에서 일본의 에비누마 마사시(세계 4위)와의 경기에서 승리했다는 판정이 났지만, 심판위원장의 정정으로 판정패를 당했고 결국 동메달에 그친 것이다.

펜싱 에페 여자개인전에 출전한 신아람(26·계룡시청) 역시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의 희생양이 됐다. 7월 30일 열린 4강전에서 신아람은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브리타 하이데만(독일)과 맞섰다. 3분 3회전 5 대 5 동점. 이어 1분 연장전. 둘은 무려 8차례나 동시 찌르기를 하는 난타전을 펼쳤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단 1초. 무승부로 끝나면 경기 전 추첨으로 우선권(Priority)을 받은 신아람이 결승에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멈춰버린 1초’였다. 주심의 시작 지시에 따라 두 번이나 하이데만이 공격을 시도했지만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마침내 세번째 공격에서 하이데만이 득점했고, 경기는 끝났다. 어처구니없는 결과에 신아람은 1시간 넘게 피스트(경기대)에 주저앉아 눈이 붓도록 울었다. 비디오 판독 뒤에도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신아람은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해 개인전 노메달의 한을 풀었다.

이밖에 올림픽 2연패를 노렸던 역도 장미란(29·고양시청)은 교통사고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4위에 그쳤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국내외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