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마을 방문한 박근혜, 權여사와 20분간 면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다. 박 후보는 참배 후 곧바로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권양숙 여사와도 20여분간 만났다.

박 후보는 권 여사가 사저 계단의 중간쯤까지 내려와 자신을 맞자 "여기까지 뭐 하러 내려오시느냐.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권 여사는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다"며 박 후보를 사랑채로 안내했다. 박 후보는 권 여사가 내온 차(茶)와 무화과를 앞에 놓고 "이 무더위에 건강하셨습니까"(박 후보), "저야 그럭저럭 지냈지만 박 후보는 이 무더위에 얼마나 더우셨느냐"고 덕담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박 후보와 권 여사의 만남은 비공개로 이뤄졌지만 동석했던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대화 내용을 전했다. 다음은 대화 요약.



◇박 후보="후보로 선출되고 나서 노 대통령님 묘역을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싶어서 왔다. 옛날에 제 부모님 두 분이 갑자기 다 돌아가셨고, 그 충격이 얼마나 크고 힘든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권 여사님께서도 얼마나 가슴 아프실까, 그 마음을 잘 이해한다. 그때 (나에게는) 국민이 큰 힘이 돼 주셨는데 권 여사님도 많은 국민이 위로해 드리는 게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권 여사="많은 분이 봉하마을을 잊지 않고 찾아주신다. 그래서 어떨 때는 사람들이 없어도 불빛을 밖에서 보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서 이 방에 불을 켜 놓는다. 많은 분이 많이 찾아주시는 게 감사하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후보로 선출된 바로 다음 날 먼 길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

◇박="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제가 감사드린다."

◇권="이 마을 전체가 친환경이다."

◇박="노 대통령께서 친환경 농사를 지으신 걸로 안다. 제 꿈은 어느 지역에 살든 어떤 직업을 갖든 모든 국민이 꿈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드는 거다. 열심히 잘해서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 건강 잘 챙기시라."

이어 권 여사는 "이 일(나라의 일)이 참으로 힘든 일이고, 얼마만큼 힘들다는 걸 내가 안다"며 "박 후보도 건강을 잘 챙기시라"고 했다.

권 여사가 "박 후보가 바쁜 일정에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마운 일이다.
한 나라 안에서 한 국가를 위해 애쓰는 분들인데…"라며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남에는 박 후보 측에서 이 의원과 이학재 의원 2명이, 권 여사 측에선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3명이 배석했다.



박 후보의 '깜짝 발표'

박 후보는 이날 대선 후보가 된 뒤 첫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전직 대통령 묘역들을 참배했다. 참배가 끝난 뒤 그는 "오후에는 봉하마을에 간다"고 직접 발표했다. 당에서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어서 급히 교통편을 준비하는 등 허둥댔다.

박 후보는 "대한민국의 한 축을 이루고 계신 전직 대통령이기 때문에 참배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 측 관계자는 "사전에 발표할 경우 정치적 이벤트로 비칠 수 있을 것을 우려했다"며 "후보 캠프 안에서도 극소수 인원만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봉하마을에서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와 박 후보 지지자들 800여명이 모였다. 일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 '참 나쁜 후보의 선거운동 일환으로 계획된 참배를 단호히 반대한다'는 등의 글자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를 본 박 후보 지지자 일부가 "왜 그러느냐"고 항의를 하며 양측 간에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들은 양측 지지자들 모두 묘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자제를 당부했다.



DJ 묘소도 참배

박 후보는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을 때는 방명록에 '호국 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국민 대통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습니다'라는 글을 적은 뒤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도 참배했다.

경선 캠프 대변인이었던 이상일 의원은 "국민 대통합의 뜻을 실천으로 보여준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지난 199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비슷한 일을 했다.
대선을 2주 앞둔 12월 5일 박태준 당시 자민련 총재, 부인 이희호 여사 등과 함께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은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 아들 지만씨와 대화를 나누며 '국민 통합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부각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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