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ㆍ청소년 성범죄 등 강력범죄에 대한 사회적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사실상 폐지상태로 분류되는 사형 집행을 이참에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흉악범죄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강경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정부도 강력범죄 예방과 엄단을 위한 강력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온 불심검문 부활 등 경찰력 투입에서 이른바 '화학적 거세' 대상 확대, 성범죄자 신상공개 강화 등 가히 '백화점식'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나 각종 강경 대책이 잇따르는 강력범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의견도 적지 않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급조된 '백화점식' 대책…실효성은 의문 =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대책은 가장 기초적인 경찰력 동원부터 성범죄 전과자 관리까지 다양하다.
 
경찰은 강력범죄를 막고자 방범 비상령을 선포, 앞으로 한 달간 가용 인력과 장비를 성폭력범죄 예방 등 민생치안 활동에 투입하기로 했다. 인권침해 논란으로 2010년 사실상 사라진 불심검문도 2년 만에 전격 부활했다. 인터넷이나 메신저 등으로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을 전송하거나 노트북ㆍ스마트폰ㆍUSB 메모리 등에 해당 음란물을 보관하는 행위 등도 입건할 방침이다.
 


성범죄 전과자 관리 수위도 강화된다. 정부는 성범죄자의 성욕을 낮추는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 대상을 현행 16세 미만에서 19세 미만으로 확대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4일 밝혔다.

특정범죄자 위치추적에 관한 법률과 치료감호법 등의 개정도 추진, 전자발찌 제도 도입 전 범행한 성범죄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소급 부착하고, 보호관찰관이 월 4회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를 면담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고 여론이 악화하자 불과 며칠 만에 내놓은 이들 대책은 범죄 예방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들 대책에 대해 "범죄 대응을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생각하기보다 '한 달 바짝 하면 되겠지' 식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신상공개 제도는 입력된 대상자 수가 너무 적고, 전자발찌는 착용자 1천명을 보호관찰관 10명이 관리하는 현실"이라며 "화학적 거세는 의학적 효과가 분분하고 경찰의 우범자 관리는 법적 근거가 없는 등 대책들이 속 빈 강정"이라고 꼬집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나름대로 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내놓은 조치들이지만 이것으로 모든 범죄를 사전 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오히려 경찰은 발생 범죄에 대한 효율적 대응이 더 중요할 수 있으므로 경찰이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범죄 문제를 공권력에만 일임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으며 사회ㆍ경제적 차원의 중장기 대책 마련이 근본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웅혁 교수는 "경찰이 복지 문제는 복지 기관과, 정신이상자 문제는 상담센터와, 낙후 시설은 국토해양부와 협력해 접근해야 효과가 있다"며 "경찰이 전ㆍ의경 몇 명 풀어놓고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교수도 "기본적으로 범죄 발생 자체에 사회ㆍ환경적 요인이 작용한다"며 "장기간 경기침체로 살기 어려워지는 등 범죄와 연관지을 수 있는 요인들이 있는 만큼 개인뿐 아니라 사회가 함께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흉악범 사형집행' 다시 화두 되나 = 이런 가운데 흉악범에게 형법상 최고형인 사형을 실제로 집행, 재범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온다.

한국은 1997년 말 이후 15년째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다수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흉악범죄자에 대해서는 교화나 갱생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포털사이트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서는 사형제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게시글에 수천개에 이르는 댓글이 달리는 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사형제 찬성 논리는 흉악범의 생명을 빼앗는 징벌적 성격의 최고형을 내림으로써 잠재적인 범죄자들의 범죄 동기를 약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데 있다.

실제 국내에서도 지난 2009년 아동 성폭행 사건인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사형집행 재개 요구가 높아지자 서울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던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불안감으로 자살한 전례가 있다.

사형제 존치에 찬성하는 이재교 변호사는 "사형집행으로 흉악범죄가 실제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범죄로 사망하는 피해자를 몇 명이라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형집행은 필요악"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사형집행을 국가권력이 악용할 수 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현재 국내에서 사형은 유영철 등 흉악범에게 예외적으로 선고되고 정치범에게는 일절 선고되지 않는다"며 "국가가 사형제를 악용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반박했다.

다만 이 변호사는 "우발적 살인범 등에게까지 사형을 집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며 "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이는 따로 요구하지 않아도 사법부가 잘 판단하고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사형제 반대론자들은 사형 외에도 중범죄자를 처벌하고 격리할 다양한 대안이 있고, 사형제가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 흐름을 거스른다는 반론을 편다.

김일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이런 분위기에서 사형집행을 요구하는 것은 범죄 위험에 대한 일종의 정서적 반응"이라며 "사형집행이 없어서 아동 성폭행이나 살인 등 범죄가 발생한다고 속단하는 것은 합리적 분석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종신형이나 집중적 보호관찰제,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 등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무엇보다 사형이라는 극형은 세계적 추세로 볼 때 폐지로 기울어진 지 오래"라고 말했다.

그는 "범죄자가 범죄에 이르기까지 본인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있다는 취지에서 국가가 예산을 들여 이들을 수용하고 교정하는 것"이라며 "형사정책의 목표는 범죄자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교화시켜 그들이 재범하지 않고 한 명의 동료 시민으로 이 사회에서 살아가게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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