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성·전시성 활동 떠나 저소득층 학습지원

작년 6월 15일 창립 100주년을 맞은 IBM의 기념행사 메인이벤트는 사회공헌 활동이었다. IBM은 이날을 '100주년 봉사의 날'로 선언하고 전 세계 지사에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120개국 5000개의 자원봉사 프로젝트에 직원 30만명과 퇴직자·고객·협력사 등이 참가해 8시간 이상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 이들이 이날 하루 사회공헌 활동을 한 시간은 총 250만 시간에 달했다.


▲ 지난 6월 충남 태안 원북초등학교 방갈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이‘경제교육 봉사활동’에 나선 대학생들로부터 4시간 동안 경제 교육을 받은 뒤 인증서를 펴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생명 등 한화금융네트워크가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통해 벌이는 사회 공헌 사업이다. / 대한생명 제공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적인 건 다른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은 대체로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화됐다.

GE는 2004년 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의료 지원 사업을 남미 온두라스(2007년), 인도네시아와 캄보디아(2008년)로 확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인 LVMH(루이비통 모엣 헤네시)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세계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글로벌 물류기업인 UPS는 청소년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호텔 체인 매리어트는 빈곤층에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른바 나눔 경영, 사회공헌에 관한 한 글로벌 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010년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2010년 한 해 동안 2조8735억원을 사회공헌 활동에 썼다.

2009년보다 8.4% 증가한 것이다. 특히 대기업들은 금융 위기가 본격화된 2008~09년에도 매년 10% 이상씩 사회공헌 지출을 늘렸다.

같은 시기 일본 기업들이 경제 위기를 이유로 사회공헌 지출을 줄인 것과 대조적이다.

전경련 진용한 사회공헌팀장은 "아직 집계 중이긴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지난해 사회공헌에 지출한 금액도 전년보다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 포스코의 모잠비크 농업훈련원 교육과정을 마친 1기 졸업생들이 농기계를 다루고 있다. 포스코는 교육생 50명에게 6개월간 고수익 작물 재배법 등을 가르쳤다. / 포스코 제공
◇사회공헌 패러다임이 바뀐다

기업의 나눔경영, 사회공헌은 이제 '제3의 경영'으로 불린다.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일회적으로 하는 경영 활동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벌여야 하는 핵심적인 경영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 사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사회공헌이 기업의 핵심 가치로 떠오르면서 그 패러다임도 바뀌고 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고 연말에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는 일회성, 전시성 봉사활동은 옛말이 됐다.

이제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단순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는 인식이 부각되면서 질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이는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가 제시한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전략과 맞닿아 있다.

CSV는 기업이 빈곤이나 경제 문제 해결에 기여해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면서 기업의 수익성도 동시에 올릴 수 있다는 개념이다.

미국의 탐스슈즈(TOMS shoes)가 대표적인 사례다. 탐스슈즈는 소비자가 신발 한 켤레를 사면 다른 한 켤레를 제3세계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1대1 기부공식'을 세웠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제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구매해 더 큰 만족을 얻고, 기업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위스 식음료업체인 네슬레는 지난 50년간 원유(原乳)를 공급하는 인도 지역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위생과 기반시설이 부족한 곳에 젖소 관리에 필요한 기술을 전수해 주고, 축산 농가에 대한 자금 지원과 교육에도 힘썼다.

덕분에 젖소 농가의 우유생산성이 크게 늘었고, 인도 전역에서 네슬레 제품 판매도 동시에 증가했다.

커피 회사인 네스프레스도 아프리카 지역 원두 생산자들에 대한 교육과 투자를 한 후 매년 20% 이상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국내 기업도 질적인 성장

이런 흐름에 맞춰 국내 기업들의 사회공헌 사업도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들은 단순한 기부나 봉사활동을 넘어 회사가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갑수 수석연구원은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우리 기업들도 사회공헌의 패러다임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지난 3월부터 저소득층 중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한다는 취지로 시작한 '드림클래스' 사업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 사업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습 기회를 놓친 중학생들을 선발해 우수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평일에 이뤄지는 방과 후 학습 교실, 주말 교실, 여름 캠프 등 세 가지 유형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국 21개 주요 도시 중학생 5000명이 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

삼성 측은 "교육 복지를 통해 사회 양극화를 조금이나마 해소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현대차는 우수한 청년기업가를 발굴해 창업을 지원하는 'H-온드림 오디션'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단기적으로 재정지원만 하는 게 아니라 멘토를 선정해 청년기업가들에게 경영 역량을 전수하고, 컨설팅과 구매 지원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지원을 하는 사업이다.

5년간 150개 기업의 창업을 도와 1500개의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태양광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한화그룹은 태양광을 통해 우리 사회에 행복을 전달한다는 '해피 선샤인' 사업을 펴고 있다.

작년에 20개 복지 시설에 태양광 설비를 지원했고, 올해는 36개 복지 시설로 지원 규모를 늘린다는 계획이다. 복지 시설은 전기료 절감 같은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고, 한화그룹으로선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SK는 사회적 기업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취약 계층에 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영리 활동을 하는 사회적 기업을 키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SK는 지금까지 11개의 사회적 기업을 세웠고, 62곳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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