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농업 관련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읽을 축사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관련된 내용을 놓고 2번이나 입장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발표 전 배포한 원고에는 한미FTA 재협상과 관련한 강도 높은 내용이 담겨있었으나 수정 원고에서는 해당 내용이 삭제됐다.

현장에서는 “재협상을 통해 불이익을 바로잡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식의 처음 보다 완곡한 발언이 나왔다.

'위기의 먹거리, 희망을 말하다' 토론회_20121018

18일 오전 8시30분. 민주통합당은 이날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릴 농업 관련 토론회에 앞서 문 후보가 발표할 축사 원고를 출입 기자들에게 미리 배포했다.

당시 원고는 ‘한미FTA는 반드시 재협상과 개방제한을 이뤄내겠음’이라는 소주제 아래 ‘농업에 대한 몇 가지 구상’ 8가지 정책을 담고 있었다.

'위기의 먹거리, 희망을 말하다' 토론회_20121018

그 중 6번째 항목은 ‘한미 FTA에서 검역주권을 반드시 회복하겠다’, ‘쌀, 양념채소류, 과일, 특작, 축산 등의 품목이 양허 제외가 되도록 하겠다’, ‘FTA로 인한 무역이득환수 및 피해보전 제도를 통해 상생기금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문 후보는 지금까지 한미 FTA에 대해서는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를 비롯한 독소조항을 재협상하겠다”고 말해왔으나 검역주권이나 주요 농산품에 대한 양허 제외, 무역이득 환수와 같은 발언은 한 적이 없었다.

'위기의 먹거리, 희망을 말하다' 토론회_20121018

문 후보가 지금까지 한미 FTA를 놓고 한 발언 가운데 가장 ‘강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전 11시 34분 민주통합당은 수정 원고에서 6번째 항목을 모두 삭제된 채 배포했다.

사전 원고라는 것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될 수는 있지만 이렇게 주요 내용이 통째로 빠지는 것은 드믄 일이다.

민주캠프 노동위원회 출범식_20121018

이에 대해 문 후보의 대변인인 진선미 의원은 “미리 배포된 사전 원고를 못 봐서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원고를 배포하는 공보실 쪽에서 상의없이 초안을 실수로 배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문 후보의 생각은 변한 게 없는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민주캠프 노동위원회 출범식_20121018

문 후보는 이날 행사에서 “한미 FTA는 국회에서도 2011년 이미 재협상 촉구를 결의했고 ISD 등 독소조항에 대한 국민적 우려도 큰 만큼 재협상을 통해 불이익을 바로잡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농업분야의 피해 상황을 점검하고 피해 보전대책을 마련하는데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문 후보가 한미 FTA를 놓고 ‘여론 눈치보기’ 때문에 제대로 입장을 정하지 못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미 FTA에 대한 초고 내용이 강력하자 보수층의 여론을 감안해 수정안에서는 관련 내용을 전부 삭제했다가, 다시 한미 FTA에 대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진보층의 비판이 나올 것을 우려해 다소 완곡한 표현으로 고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노무현 정권이던 2006년부터 우리 정부의 한·미 FTA 협상 대표로 나섰던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2일 문 후보에 대해 “한미FTA에 대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통합당의 한 의원은 “정확히 왜 원고가 두번이나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며

“그 만큼 한미 FTA라는 민감한 사안을 놓고 문 후보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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