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의 경제 위기… 세계 석학 4명에게 듣는 해법

앞으로 4~5년 안에 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 등 5개국에서 최소 3개국이 국가부도를 낼 것이다. 이 중 아일랜드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케네스 로고프·하버드대 교수).

"세계경제는 10점 만점에 커트라인인 6점에 걸려 있다. 이 위기는 20년 넘게 지속될 수 있다"(린이푸·베이징대 교수).

"중국은 2014년부터 6%대 성장을 할 것이며 매년 성장률이 더 추락할 것이다"(리처드 쿠퍼·하버드대 교수).

빚더미에 눌린 세계경제가 불확실성의 수렁에 빠진 채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세계 1위와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기 부양을 위해 각각 8500억달러와 4조위안의 자금(양국 합계 약 16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경제 회복 조짐조차 불투명하다. 오히려 글로벌 교역량이 줄고 실업률은 치솟고, 중산층 붕괴와 부(富)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암울한 모습이다.

세계화와 테크놀로지를 추동력으로 인플레이션 없는 고(高)성장을 20년간 질주하며 '무한 성장'의 기대감에 충만하던 세계경제의 황금기가 막을 내리고, 장기 저성장 또는 무(無)성장의 공포가 정부와 기업, 개인을 짓누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로존이 2027년까지 0%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번 위기를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 후 80여년 만에 찾아온 초유의 사태라고 일컫는 이유이다.

경제 위기 탈출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세 가지 원인을 내놓는다.

첫째, 그동안 심각한 위기를 겪어본 적이 거의 없는 선진국들이 미봉책을 내놓으며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정공법을 계속 연기(延期)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급한 불을 끄고 단기 성장만 이루면 경제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재정지출을 늘렸다. 그러나 유럽 재정 위기 등이 터지면서 반짝 회복은 다시 침체로 돌아섰다. 그 결과 2001년 18조달러이던 전 세계 공공(公共) 부채가 지금 약 50조달러로 280% 급증했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고 있다. 국가부채 급증은 신용도 추락까지 낳아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다.

둘째, 통화정책의 난맥상이다. 3차례에 걸친 미국의 양적완화(QE)와 올 들어 각기 두 차례 중국의 기준금리 및 지급준비율 인하, 일본 중앙은행의 10조엔(약 140조원)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 등으로 전 세계에 엄청난 돈이 풀리고 있다. 하지만 각 경제주체가 돈을 움켜쥐고 있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진 상황에서 일련의 조치가 시장에서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2009년 21.8%이던 세계 평균 저축률이 올해 24%로 상승해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풀린 자금은 신흥국 증시와 외환시장에 대거 몰려 변동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마지막은 리더십 실종과 국제 공조(共助) 부재이다. 올해에만 60여 개국에서 국가지도자가 바뀌는 선거가 실시되면서 경제 현안 해결이 정치 논리에 좌우되고 그나마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세계경제 이슈를 책임 있게 조율할 국제적 리더십이 없는 데다, 미국 대선과 유로존 회원국 간 갈등, 10년 만의 중국 최고지도부 교체 등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꺼리고 소비 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물론 희망도 일부 보인다. 유로존 회생의 관건인 5000억유로 규모의 유로안정화 기구(ESM)가 이달 8일 출범해 유로존의 최악 상황 탈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올 연말까지 주요국 선거 종료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내년부터 경기 회복 노력이 본격화할 수 있고, 신흥국들의 경제 활력이 여전히 높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내년도 세계 경제성장률을 3.6%로 올해 전망치(3.3%)보다 0.3%포인트 높게 잡았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잖다. 지금 어떤 진단과 해법을 내놓고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세계경제의 '잃어버린 시간'이 연장 또는 단축될 수 있는 탓이다. 대공황기에는 4년 만에 뉴딜정책이 나왔지만 지금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4년이 지났는데도 명확한 해법조차 안 보인다.

창간 6주년을 맞은 Weekly BIZ는 표류하고 있는 세계경제의 현주소와 갈 길을 찾기 위해 미국·중국의 최고 경제 석학 4명을 직접 만났다.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마틴 펠드스타인, 리처드 쿠퍼 교수와 베이징대의 린이푸 교수가 그들이다.

석학들은 "지금 세계경제는 심장마비에 걸린 환자가 침대에서 겨우 일어나 병실 안만 빙빙 돌고 문밖을 나가지 못하는 모습과 같다. 이런 상황이 최소 10~15년 계속될 것이다"고 했다.

Weekly BIZ는 이들에게 물었다. 세계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며 돌파구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은 어떻게 대응·변신해야 하나?


그렇다면 한국은?
"금융이 재벌보다 중소기업 지원케 해야…
정년 연장하면 소비 늘어 고용 창출돼"

"한국을 보면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 많은데 이를 받쳐줄 금융시스템은 아주 조악(粗惡)합니다. 이들을 위한 벤처캐피털이 보이지 않습니다.(케네스 로고프 교수)"

"저출산으로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한국은 정년을 10년 늘리는 것 외에 방법은 없습니다.(리처드 쿠퍼 교수) "

세계 석학들은 한국 경제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들은 예전과 달리 한국 경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꿰뚫고 있었다. 세계경제에서 한국의 위상 상승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들의 해법은 크게 세 가지다.

① "대기업 편중 금융시스템 등 바꿔야"

로고프 교수는 "재벌 위주의 금융시스템을 타파하는 게 한국 경제의 당면한 최대 과제"라고 했다.

"한국인들의 천성에는 뭔가 다른 나라와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확실히 그런 독립성을 가지려는 의지가 강해요. 하지만 지금처럼 대기업에 의한 '큰 과학' '큰 연구'만 있으면 안 돼요. '작은 과학' '작은 연구'를 발전시켜야 합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은 손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시작한 회사들이에요. 아주 탄탄한 금융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쿠퍼 교수도 "한국 정부는 최소한 지난 30년간 SME(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이야기하고 재벌 집중을 척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전혀 실행된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더 대출하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것. 그는 "은퇴 정년을 올리면 젊은 층 채용이 타격을 입는다는 우려가 있는데, 사실 청년층 실업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다"며 정년 연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고령층의 소득이 높아지면 소비가 늘고, 그러면 고용이 더 창출되는 선순환 기대 효과에서다.

② "세계화 기술혁신 혜택 골고루 확산시켜야"

최근 한국에서 불거진 경제 민주화 이슈에 대해선 대의(大義)는 공감하면서도 진단은 달랐다.

마틴 펠드스타인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초점은 소득불균형이 아니라 빈곤 극복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경제 통계는 글로벌 사정과 비교해보면 크게 소득 불균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빈곤 분야나 계층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토록 자원을 집중하면 된다"며 "그것은 '누군가 엄청 부자가 되는 게 싫다'고 말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얘기"라고 했다.

로고프 교수는 경제 민주화가 추진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 "(분배 요구와 대기업 개혁 같은) 경제 민주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공정한 소득 분배가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이제 세금정책 등을 통해 세계화와 기술혁신 등에 따른 혜택이 골고루 전 계층에 나뉘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 의존도 낮추며 중국·일본을 넘어서라

쿠퍼 교수는 한국 경제가 대(對)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권고했다. "캐나다는 수출의 70%를 미국에 의존하는 바람에 문제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이 한국 경제 성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갈수록 더 부담스럽습니다. 유럽·아르헨티나·브라질 등 전 세계로 수출을 다변화해야 합니다."

린이푸 교수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활용하는 게 활로"라며 "중국 일본을 넘어서는 '경쟁 우위'와 '표준(standard) 설정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삼성 같은 한국 기업이 미국 등 첨단 기업과 경쟁할 때 승부처는 '표준'을 설정하는 능력입니다. 과거 일본과 미국의 기술력이나 품질은 비슷했으나, 미국 기업들은 일본 시장보다 배나 넓은 미국 시장을 적극 이용해 통신·IT 분야에서 표준을 선점했어요. 그 결과 일본과의 경쟁에서 이겼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이런 전철(前轍)을 밟지 않으려면 거대 경제동맹체를 형성해 시장을 넓히면서 '경쟁 우위'와 '표준 설정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아세안(ASEAN)+한·중·일', 즉 '10+3'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넓은 시장을 확보하면 원가를 낮추고 표준 설정 능력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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