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행정고시 상위권 합격자가 즐비한 엘리트 관료 조직이다.

수천개 금융회사의 인가와 폐업은 물론 임직원 징계에 이르기까지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금융정책 기능도 있다.

소속 공무원은 퇴직하면 금융공기업, 금융회사, 관련 단체의 대표나 임원 자리를 꿰찼다.
명실 공히 금융권력의 핵심이다.

이런 금융위가 다음 달 대선을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에서 금융위를 분리ㆍ해체해야 한다는 논의가 사방에서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로 출범한 지 15년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섰다.

금융위의 지도ㆍ감독을 받는 금융감독원도 개편 바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록 무자본 특수법인 형태의 민간기구지만 관련 법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조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가 `힘의 논리'와 `줄대기'에 얽매었던 구태에서 벗어나 국민의 권익에 큰 영향을 주는 금융감독체계를 효율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반복된 감독체계 개편

우리나라에서 금융감독체계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그전에는 정부(재무부)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가운데 은행감독원ㆍ보험감독원ㆍ증권감독원ㆍ신용관리기금 등 민간 감독기구가 이를 뒷받침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면 단일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는 4개 감독기구를 금융감독원으로 합치고,
그 위에 정책결정 기관으로서 합의제 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를 얹었다.

금감위는 재정경제부에 금융정책 기능을 남겨두고 감독정책 기능만 떼어 왔다.
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직하는 형태로 만들어 두 조직의 효율적인 업무 협조를 도모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는 갈수록 덩치를 키우는 금감위와 금융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금감원 사이의 갈등을 빚었다.

고려대학교 오정근(경제학) 교수는 "가벼운 조직으로 출범한 금감위가 애초 약속과 달리 점점 몸집을 불렸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금감위는 기획재정부의 금융정책 기능도 가져와 현재의 금융위로 확대 개편됐고, 이때부터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도 따로 임명됐다.

야권에선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금융감독체계를 대폭 손질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권이 정권을 잡아도 감독체계 개편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금융권은 관측하고 있다.

금융당국 재편 논의 속 금융위 해체 압박

새로운 감독체계를 두고 학계와 정치권에선 조금씩 다른 밑그림을 제시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공론화한 방안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금융위를 분리ㆍ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감독체계 구상을 발표한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측은 금융위의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보내고, 감독정책 기능은 금감원이 맡되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조직을 분리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캠프에 참여한 명지대학교 원승연(경영학) 교수는 "(금융위의)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을 분리하고 금융위는 기재부로 합쳐 국내외 금융정책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가 과거 금융산업의 팽창이나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금융정책을 편 결과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의 도화선이 됐고, 이는 금융시장 안정을 지켜야 하는 금융위의 감독정책 기능과 모순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홍기 교수는 7일 한국경제학회 심포지엄에서 "금융위와 금감원의 업무가 뒤섞인 탓에 정책이나 감독이 실패해도 어느 기관에 책임을 물을지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권한은 많이 가지려고 저마다 인력과 조직을 늘리면서도 책임질 일은 상대방에 떠넘기는 부작용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각종 현안을 두고도 엇박자를 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김 교수는 꼬집었다.

성균관대학교 김인철(경제학) 교수는 감독정책 기능을 넘겨받은 금감원 조직의 성격에 대해 "감독기구를 정부 조직으로 만드는 건 1980~90년대로 회귀하자는 것"이라며 전문성을 갖춘 민간기구로 두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정근 교수는 금감원 조직을 분리하고 정책 결정ㆍ조율 기구를 따로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건전성 감독ㆍ소비자보호 통합 vs 분리 `분분'

금감원과 관련한 조직개편 현안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하느냐 여부다.

건전성 감독기구와 소비자 보호기구가 양립하는 `쌍봉형(Twin Peaks)'으로 분리하느냐,
두 기능을 통합하느냐를 두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쌍봉형을 지지하는 쪽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이해가 서로 부딪히기 때문에 한 기관에 둘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이 두 기능을 모두 맡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소홀해져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다는 게 이들의 논거다.

원승연 교수는 "서로 목적이 다른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은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통합형을 주장하는 쪽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있으며, 두 기능을 나누면 오히려 업무가 겹쳐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미국이나 주요 유럽 국가에서 쌍봉형을 택하지 않은 것도 이런 까닭에서라고 설명했다.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양기진 교수는 지난달 세미나에서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 사이에 대립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선 후보들은 쌍봉형 체제로 무게중심이 다소 기운다.

안철수 후보는 쌍봉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안 후보 측은 금감원을 금융건전성감독원과 금융시장감독원으로 나누는 개편안을 내놨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는 아직 관련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으나 쌍봉형을 추진할 가능성이 더 크게 점쳐진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 6일 한국금융연구센터 세미나에서 "건전성 감독 중심의 현 체계에서 소비자 권리가 무시되는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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