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수장들이 최근 정치권과 학계에서 불거진 금융 행정ㆍ감독 체계 개편과 관련해 잇달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7일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세미나에서 "(금융행정체계를) 바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1789년 설립돼 223년째 이어오는 미국 재무부와 달리 5천년 역사의 우리나라가 5년마다 바꾸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김 위원장의 인식이다.

그는 "변화와 혁신만큼이나 역사와 전통이 소중하게 보존되는 미국의 모습은 정권 교체기마다 금융행정체계를 개편해 온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된다"고 지적했다.

금융행정체계 개편과 관련된 논의가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된 금융행정체계 개편 논의는 금융부문의 변화와 발전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금융행정이 실제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실증적 이해보다는 이론 중심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보험회사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 참석해 감독원을 건전성 감독기구와 소비자보호기구로 나누는 쌍봉형(Twin Peaks) 체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하드웨어가 바뀐다고 소프트웨어가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권 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쌍봉형 체제를 도입한 나라는 호주와 네덜란드 두 나라뿐인데다 이들 나라에서도 기관 간 알력다툼으로 부작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감독원을 하나 더 만들면 연간 2천억원이 들어가게 된다"며 "이 비용은 결국 소비자와 금융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새 집을 준다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감독체계 개편은 조직을 바꾸는 것보다 구성원의 생각과 사고가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미 금감원 외에도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소비자보호를 위한 기관이 많이 있는데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금감원 내에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설립하는 등 자체적으로도 소비자 보호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원장은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공급자인 금융당국보다는 소비자와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봐야할 문제"라며 "중요한 건 금융회사가 소비자 보호에 좀 더 노력하고 당국도 이런 방향으로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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