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주도하는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계의 개편 방향을 놓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관료 집단인 금융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는 가운데 금감원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직을 둘로 나누면 앞으로 5년간 최소 1조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계산을 내놨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최근 거론되는 '쌍봉형(Twin Peaks)' 감독체계를 도입하면 비용 증가가 불가피해 국민 부담으로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쌍봉형 감독체계란 금감원을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기구와 금융회사 영업행태 감독기구로 나누는 방안이다.

호주와 네덜란드가 이와 비슷한 체제를 도입했으며, 영국도 내년부터 도입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저축은행 사태'로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기능을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신설했지만 이를 완전한 독립 기구가 아닌 금감원 산하에 뒀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 기구가 분리ㆍ독립하면 막대한 사회ㆍ경제적 비용과 혼란만 가져온다며 반대 입장을 정리했다.

비용 측면에선 영국 재무부의 보고서를 근거로 들었다. 감독기구 분리에 드는 비용이 연간 최대 1억7천500만파운드(한화 3천134억원)씩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이로 미뤄 우리나라도 쌍봉형 체제를 도입하면 인력ㆍ시설 확충, 검사횟수 증가, 금융회사의 규제준수 비용 등 1조~1조5천억원이 낭비된다고 금감원은 추산했다.

호주와 네덜란드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 쌍봉형 모델은 아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 체계인 만큼 섣불리 도입해선 안 된다는 점도 내세웠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행 통합감독체계는 외환위기 때 치열한 논쟁의 산물"이라며 "쌍봉형 모델을 도입하면 위기 이전의 구시대 체계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10여년에 걸쳐 전 정권의 감독체계에서 발생한 일부 문제를 이유로 5년마다 감독체계의 근간을 흔들기보다 백년대계를 내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쌍봉형 모델 도입을 두고도 영란은행 기능을 중시하는 보수당이 총선에서 승리한 데 따른 '정치적 산물'로 보는 게 맞다고 해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보호 기구를 따로 만들면 건전성 감독기구와 '밥그릇 싸움'을 벌이고 중요한 일은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학계와 정치권에선 금융위 해체와 금감원 분리가 한꺼번에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금감원의 이 같은 논리가 먹혀들지 미지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감독체계를 수술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금융위와 금감원은 공감하지만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금융위 해체를 강력히 주장하는 야권 대선후보들은 한결같이 금감원도 쌍봉형 체계로 분리해야 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소비자 권익을 지키는 영업행위 감독과 금융회사의 적정한 이익을 유지하는 건전성 감독은 한 기구에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명지대학교 원승연 교수(경영학)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것과 금융회사에 맞서 소비자 권익을 지키는 것은 이해 상충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감독체계를 두고 금융위와 금감원의 수장이 '동상이몽'을 하는 것도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전날 "그동안 금융정책이 금융소비자보호에 미흡했다"며 금감원의 기능을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로 나누는 데 찬성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감독 기능이 '공권력적 행정작동'이라며 금융위가 이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금감원에 대한 '견제구'로도 해석됐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그러자 같은 날 "금감원의 이원화에 반대한다"며 "하드웨어(조직)가 바뀐다고 소프트웨어(내용)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정반대 견해를 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금감원은 공권력 행사 주체로 행정절차법과 금융위설치법에 명시됐다"며 "공권력을 공무원만 행사한다는 건 과거의 얘기"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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