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이하면 듣기 좋은 덕담을 주고받는다. 대부분 송구영신의 의미를 담아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함께 새 해를 맞이하는 희망을 말하게 된다. 어느 나라 사람을 막론하고 한 해를 정리하며 하고자 했던 일을 성취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 해를 맞이할 때마다

“금년에 이것만은 꼭 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도 막상 연말이 되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음을 한탄한다. 직장에서 승진을 하려던 계획,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싶었던 일, 화가는 전시회를, 과학자는 세계적인 과학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싶었고 정치지망생들은 당선이라는 꿈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뜻했던 바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드물다. 꿈은 실패의 확률이 더 높다. 그래도 꿈이 없으면 인생은 허무하다. 도전과 응전을 통해서 역사의 발전이 이뤄지듯이 인간은 꿈이라는 희망! 막 미래를 개척한다.

그 과정에서 온갖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수도 있지만 거대한 꿈을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이 발전의 문턱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해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고 보인다. 우선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의 불행은 인간적으로 엄청난 동정을 샀다. 그의 서민적인 면모가 자살이라는 극한적 선택과 어우러지며 오히려 국민적 조문행렬을 빚어낸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4.19혁명 때 쫓아냈던 이승만의 하야를 눈물로 전송하는 국민이니 십분 이해가 되는 정경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갔지만 국민장을 국장으로 고집하고 대전 현충원을 거부하고 서울 현충원을 붙잡고 늘어진 것은 국민의 조문열기를 오히려 식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기축년 한 해를 흔들었지만 노무현의 자살이 부패혐의로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서 돌출한 것은 유감이다. 이로서 우리는 부정부패에 대한 심각한 고뇌를 안게 되었다.

김대중은 원래 공천헌금과 자식들의 비리로 시중의 화제꺼리였지만 사자(死者)는 말이 없다. 다만 그들 밑에서 큰 벼슬을 했던 한명숙의 뇌물사건은 국민들의 가치관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한명숙은 운동권 출신으로 그의 남편 박성준이 통혁당 사건으로 오랫동안 옥고를 치른 경력자여서 국회의원으! 로 발탁되었을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노무현에 의해서 사상 최초의 여성총리라는 명예도 얻었다. 살아온 과정으로 볼 때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여성 최고의 공직자가 하찮은 공기업 사장 하나 만들어주려고 5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는 믿기 어렵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발뺌을 하다가 검찰에 불려가거나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부패에 연루한 사실이 발가벗겨지는 것을 수없이 목격해온 국민들은 “10원도 안 받았다”는 발명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수사 전문가인 검찰이 사실 입증을 위해서 뇌물 공여자의 진술에만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정황증거를 내놓고 있어 기언가 미언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특히 담당 장관이었던 정세균이 동석한 회식자리에 공기업 사장 희망자가 함께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한명숙 사건은 전 정권에서 빚어진 일이지만 현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공성진의 정치자금 및 뇌물사건은 어디로 불똥이 튈 것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공성진은 검찰에 불려가 17시간이라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일단 귀가했다. 그도 예외가 아니어서 돈 받은 사실을 완강히 부인한다. 그에 앞서 한나라당 현경병은 이미 불구속 기소되었다. 형평의 원칙상 모두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게 할 모양이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어째서 부정비리가 끊이지 않고 접종하는 것인지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는 이번에 원조를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원조국’으로 위상을 달리 했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부패지수는 어느 정도일까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다. 그들에게도 공직자의 비리가 100% 없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 임명직이나 선출직을 막론하고 비리에 손대지 않고 부정에 끼어들지 않는다. 높은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근무한다. 전쟁이 났을 때 멀쩡한 손가락을 자르거나 튼튼한 어깨뼈를 탈골시켜 병역을 기피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중동전쟁이 터졌을 때 미국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청년들이 공항이 미어터지게 출국한 일이 단순한 애국심이라고만 보면 안 된다. 선진국의 공명정대한 자존심과 긍지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것이 인류문화의 상징이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높은 차원의 애국심과 문화의식 그리고 가치관을 가진 공직자로 넘쳐날 때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

경제가 좀 나아졌다고 거들먹거리거나 남의 주머니만 엿보는 공직자의 부정부패 비리의 척결 없이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재판을 통해서 진부가 가려질 것이지만 고위공직자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의 경고를 항상 가슴 속에 간직하고 다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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