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씨의 글을 읽고, 김현희씨에게 전해주고 싶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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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은 남북분단의 비극이 몰고 온 냉전시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테러로 인해서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115명 희생자들과 유가족 역시 냉전시대의 무고한 희생자이고, 어린나이에 북한의 대한항공 폭파공작에 참여한 북한공작원 김현희씨도 남북분단의 비극이 몰고 온 또 다른 희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현희씨가 최근 과거 인연이 있다는 이동복이라는 분에게 전달한 장문의 편지가 인터넷에 공개됐습니다.
장문의 편지 요지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03년부터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위 KAL기 폭사사건 조작의혹이 우리사회 일각에서 제기됐고, 당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 진상조사위라는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김형욱 전 국가정보원장 실종사건 등 우리 현대사에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된 사건들을 모아 진상을 재규명해 진실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있었고, 대한항공 폭파 사건도 그 중의 하나로 채택된 후 MBC 등 방송사에서 김현희씨를 취재하려고 했던 과정에서 김현희씨와 그의 가족들이 상당한 고통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김현희씨는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방송사와 짜고 자신을 엄청 괴롭혔다고 단정하고 이제라도 당시 자신을 괴롭힌 국정원 관계자와 방송사 관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김현희씨가 쓴 장문의 편지 내용은 김현희씨가 겪으면서 느낀 것들이라고 믿고 이에 대한 몇 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합니다. 반론이라는 것이 김현희씨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김현희씨에게 이해를 구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김현희씨 자신은 다시금 돌이켜 보고 싶지 않을 대한항공 폭파 사건 범인으로 해외에서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돼 왔습니다. 벌써 21년전의 일입니다. 김현희씨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우리 정부의 사면을 통해 남한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들은 더 큰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김현희씨는 범행 후 서울로 압송되어 우리 수사기간의 조사에 적극 협조했고 또한 자신의 공작활동으로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고, 희생 유가족들의 고통 속에서도 당시 국가와 국민이 김현희씨의 사면에 동의해 오늘날 김현희가 남한에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다고 봅니다.
김현희씨는 자신의 글에서 MBC 등 방송사에서 자신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집으로 찾아온 것을 “습격”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서울에 살면서 서울의 생활방식에 충분하게 적응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김현희씨가 서울식 표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에 일단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한은 북한과 달리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취재현장에 자주 달려갑니다. 숨어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를 김현희씨도 자주 목격했을 것입니다. 남한사회의 취재문화가 좋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인 취재풍토가 그렇다는 것은 일반상식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같은 기자들의 과잉 취재열기를 “습격”이란 단어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습격이란 전투용어에 가까운 폭력적인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김현희씨의 편지내용을 보면 당시 방송사에서 김현희씨에게 방송출연이나 인터뷰를 경쟁적으로 요구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국정원 관계자 역시 방송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개진한 것 같습니다.
김현희씨는 노무현정부때의 국정원과 그 이전,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사건을 담당했던 때의 국정원(안기부)과 엄격하게 구분하고 싶어했습니다. 그것은 무리한 방식입니다.국정원과 방송사가 공모해서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했다고 단정하는 것도 매우 무리한 추측입니다.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지금 진실을 밝히는 것 이외에 오히려 진실을 덮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때문에 노무현정부 당시 국정원과 방송사가 짜고 KAL기 사건을 조작된 것이라고 만들려고 했다는 김현희씨 추측과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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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씨의 신분이 특수한 것이었기 때문에 관계기관에서 보호하는 임무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김현희씨는 국정원이나 경찰의 보호활동을 ‘감시’라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들이닫치고 거주지가 언론에 노출됨에 따라서 당분간 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추방’으로 이해하는 것도 “습격”이란 단어와 마찬가지로 매우 어색한 표현입니다. 거주지 이전이 결코 추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관계기관에서 김현희씨의 주거지를 공개하지 않고 감시가 아닌 보호해야 하는 첫 번째 사유는 무고한 생명을 죽인 북한공작원을 사형시키지 않고 살려둔 것에 분노한 사람들에게 혹시나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점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한가지를 추가한다면 제 2의 북한 공작원이 김현희씨가 북한에서의 충성맹세를 망각한 것에 대해 배신자란 단서를 달아서 응징하기 위한 위협이 있을지 모른다는 점도 김현희씨를 보호하는 목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시라는 것은 혹시 김현희씨가 거짓전향을 했다고 보고 기회를 틈타 다시 북한으로 가버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면 북한으로 못가게 하기위해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보호와 감시는 이 처럼 큰 차이가 있는 단어입니다.
국정원 관계자가 다른 나라로 이민이라도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거나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한 것은 결코 “추방”이나 "감시"라는 표현으로 매도될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김현희씨는 2003년 노무현 정부를 친북좌파정부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북이념 대결에서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김현희씨가 자신을 보호해주는 정부를 친북좌파정부로 매도하는 것도 매우 충격입니다.
‘친북좌파’라는 표현은 남한내 정치권에서 권력을 잡기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낸 구호일 뿐입니다. 다만 제 2의 김현희 같은 희생자나 제 2의 KAL희생자가 발생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차원에서 남북이 대결상태를 끝내고 상호 화해협력해서 같은 민족끼리 함께 잘 살아보자는 정책을 추구하는 정치집단일 뿐입니다.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주장이 왜 친북이고 좌파입니까?
남한 내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정적을 매도할 때 사용하는 정치적인 용어인 친북좌파라는 용어를 남북대결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는 북한 공작원 출신 김현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은 어색하다는 것입니다.
한 때 무시무시한 공작원이라는 딱지를 받았지만 이제 김현희씨도 남한에서 행복하게 살아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시도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좀 더 여력이 있다면 다시는 자신과 같은 남북분단 비극이 만들어낸 희생자나 KAL희생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길은 다른 것이 나닌 남북화해 시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전쟁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다시 실시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조작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한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노무현 정권이 북한과 친밀한, 북한과 한통속인 정권이었다면 그런 결론을 스스로 내리겠습니까?
전쟁을 한 원수나라끼리도 이제는 서로 협력하면서 함께 잘살기를 추구하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한반도만 남북이 아직도 대결상태를 끝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KAL기 희생자들도 이제는 남북이 화해하고 다시는 자신들과 같은 분단비극의 희생자가 없기를 바랄 것입니다. 김현희씨도 자신과 같은 공작원들이 북한에서 계속 양성되는 것을 바라지 않겠지요?
김현희씨는 결코 “습격”당한 적이 없고, "감시"나 “추방”당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에 이에 걸맞게 그 속에서 지혜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가끔은 대한항공 피폭희생자 위령탑을 조용히 찾아 115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일도 잊지마시기 바랍니다.
<정광일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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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폭파사건이란?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근해에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공중폭파된 사건.
사고기는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출발하여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에 기착한 후, 다시 방콕에 기착하기 위하여 비행하던 중이었으며, 기내에는 중동에서 귀국하던 해외근로자가 대부분인 한국승객 93명과 외국승객 2명, 그리고 승무원 20명 등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 여객기는 29일 오후 2시경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의 무선보고를 끝으로 소식이 끊겼다.
사건발생 15일 만인 12월 13일 양곤 동남쪽 해상에서 공기주입펌프 등이 파손된 KAL기 구명보트 등 부유물 7점이 발견됨으로써 비행 중 폭발에 의하여 추락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수사 결과 KAL기는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고 기내에 두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에 의하여 폭파되었음이 밝혀졌다.
사건의 진상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하여 각종 제재를 가하였고, 일본도 북한공무원의 입국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고 1988년 2월 10일에는 이 사건의 토의를 위하여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가 소집되어 많은 국가대표들이 북한의 테러행위를 규탄하였다. 이 사건으로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외교적 불이익을 자초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하였다.
원본 기사 보기:뉴민주.com
정광일 / 안중근청년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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