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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재벌 그룹들이 저마다 계열사 합병·정리를 통한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연말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건 것도 대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10대 그룹의 상당수는 이미 계열사 정리작업에 돌입해 내년까지 축소 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재계 '쌍두마차'인 삼성그룹과 LG그룹은 비주력 사업을 청산하거나 유사 업종 계열사들을 합병해 계열사 수를 5~10% 가량 감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삼성그룹은 2008년 초 59개였던 계열사 수가 현재 80개로 늘어난 상태지만 내년 초까지 4개를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2004년 분사했던 삼성광통신이 다음달 4일 삼성전자에 재합병된다.

삼성광통신은 원래 광섬유·광케이블을 만들던 삼성전자의 한 사업부였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는 계열사인 세크론, 지이에스를 내년 1월 합병해 하나의 회사로 재탄생하고, 전기차 배터리를 만드는 SB리모티브는 100% 지분을 보유한 삼성SDI에 합병된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삼성전자의 LCD 사업부를 분사시킨 후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합쳐 삼성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켰다.

LG그룹도 현재 64개 계열사 가운데 6~7개를 연말까지 청산, 매각, 합병 등의 방식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LG상사는 자원개발과 산업재 등 주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자 국내 수입유통사업을 모두 정리하는 절차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상용차를 청산한 데 이어 현재 픽스딕스, 트윈와인, 지오바인의 청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무역업 자회사 윈인터내셔널과 플러스원의 매각과 합병 작업을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LG가 지아웃도어, 벅스컴애드를 연말이나 내년 초 청산할 예정이다.

LG는 2008년 36개였던 계열사가 숫자상으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인수 기업들의 자회사 등을 도로 내놓거나 청산함으로써 조직을 슬림화할 방침이다.

SK그룹과 롯데그룹도 계열사 줄이기에 적극적이다.

SK는 하반기 들어 합병 등의 작업을 통해 계열사 수를 96개에서 91개로 줄이는 등 중복 사업을 조정하고 비핵심사업을 정리하는 최적화 방안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SK네트웍스서비스는 SK네트웍스인터넷을 흡수합병했고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하이스텍, 하이로지텍, 하이닉스인재개발원은 하이스텍으로 합병했다.

SK브로드밴드는 연말까지 고객관리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 CS로 합병할 계획이다.

SK의 한 관계자는 "사업체별로 다각도의 경영진단을 거쳐 구조개선 대상회사를 선정한다"며 "합병, 매각, 분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최적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유사 업종간 합병으로 사업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 초 78개 계열사가 11월 현재 75개로 줄었고 예정된 합병 작업이 모두 끝나는 내년 초에는 72개까지 감소할 예정이다.

유통부문 '몸통'인 롯데쇼핑이 지난 8월 롯데스퀘어를 합병한 데 이어 내년 1월 롯데미도파를 흡수할 예정이다.

호남석유화학도 다음달 27일 케이피케미칼과 합병한다.

롯데삼강은 지난해 11월 파스퇴르 유업, 올해 1월 웰가, 10월 롯데후레쉬델리카와 차례로 합친 데 이어 내년 1월 롯데햄까지 합병해 신선식품 부문의 중추가 된다.

롯데칠성과 롯데주류가 지난해 10월 합병하고 롯데리아가 지난해 12월 나뚜루를 흡수합병하는 등 식음료 부문의 계열 정리는 이미 마무리된 상태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는 포스코도 경제민주화를 크게 의식하지는 않지만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한 재정비 차원에서 올해 초부터 구조 개편을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포스코에너지가 포항연료전지발전, 신안에너지를 이달 말 흡수합병할 예정이다.

포스코에이에스티는 포스코엔에스티를 흡수합병하기로 하고, 포스메이트는 승광을 흡수합병해 골프장 운영 사업을 통합하는 등 계열사 10여곳 사이에서 합병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또 보험사인 포스케이트인슈어, 광고대행사 포레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사 엔투비 등 핵심사업과 거리가 먼 계열사는 분리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008년 37개, 2009년 41개, 2010년 42개, 2011년 63개로 매년 계열사 수를 늘려오다 올해 57개로 줄었다.

이는 지난해 인수한 현대건설의 자회사 21개 중 특수목적법인(SPC)이 올해 들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가 불황인 데다 자동차, 건설, 제철 등 그룹의 3대 성장축을 구축한만큼 앞으로도 계열사 수를 늘리기보다는 경영 내실화에 치중한다는 것이 현대차의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매우 불확실해 새 사업에 투자하기는 무리"라며 "당분간 경영 내실을 다지고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전에서 격돌한 대한항공(한진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은 무조건적인 몸집 줄이기보다는 KAI 인수를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이들 그룹은 이달 말 본입찰을 앞두고 예비실사를 진행 중이다.

대한항공 측은 "다른 계열사를 줄일 계획은 별도로 없다"고 했고,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도 "KAI 인수 건이 있어 계열사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조선·중공업 불황으로 추가 인수·합병은 신중히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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