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새정치 실험은 66일만에 중단됐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23일 후보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야권 단일화 후보를 양보한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는 23일 오후 8시20분 6분동안 읽어 내려간 사퇴 회견문에서 “더이상 단일화방식을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권교체를 위해서 백의종군할 것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또 “이제 문 후보님과 저는 두 사람 중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저는 얼마전 제 모든 것을 걸고 단일화를 이루어 내겠다고 말 한 적 있다. 제가 후보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 특사 담판 결렬 후 양보 결단 내려‥단일화 불발 우려 부담 느낀듯

안 후보의 전격 사퇴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안 후보는 전날부터 대선후보로서의 일정을 중단한 채 후보 단일화에 매달렸다. 전날 오전 10시30분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문 후보와 1시간 30분 가량 단일화 담판이 끝난 후 이날 기자회견까지 거의 32시간의 대부분을 혼자서 숙고와 판단의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는 전날 문 후보측에 제안한 ‘가상대결 50%’와 ‘지지도 조사 50%’가 혼합된 중재안이 이날 각 후보의 특사 담판에서도 거부됐음을 확인한 이후 사퇴 의사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는 기자회견 일정을 발표한 오후 8시쯤 캠프의 주요 보직자들에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안 후보가 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불협화음이 새정치에 대한 의지를 퇴색시키고 정권교체 가능성을 줄이게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단일화 불발 우려가 안 후보에게 적잖은 부담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두 후보가 약속한 단일화 협상 마감시일인 26일에 가까워 질수록 단일화 불발에 대한 야권 지지층의 불안우려가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급기야 전북 완주의 50대 유모씨는 단일화 요구를 담은 유서를 남겨놓고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22일에는 황석영 작가 등 시민사회 원로와 조국 서울대 교수 등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공평동 캠프 주변인 종각역에서 촛불시위를 벌였고, 이들 중 일부는 이날 기자회견 계획이 알려지자 공평동 캠프 사무실로 몰려와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록 새정치에 대한 실망감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대선승리에 유리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제가 대통령이 되어 새로운 정치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이 국민 앞에 드리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한다”면서 “더이상 단일화 방식 놓고 대립하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새정치에 어긋나고 국민에게 더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다자구도 지지율, 야권후보 적합도, 야권후보 지지도에서 안 후보를 앞서는 결과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 민주당의 ‘단일화 프레임’에 갇혀 선명성 퇴색···“현실정치 벽 못 넘어”

안 후보의 사퇴는 결국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이 안 후보 출마 이후부터 쳐놓은 단일화 프레임에 갇힌 결과라는 해석이다.

안 후보 캠프는 지난 5일 단일화 회동을 제안한 안 후보의 전남대 강연 이후 최근까지 거의 매일 민주당 문 후보 캠프와 신경전을 펼쳤다.

양 후보의 6일 회동 이후 민주당발(發)로 나온 ‘안철수 양보론’ 보도와 민주당의 여론조사 조직동원 행태 등을 놓고 갈등이 벌어졌다.

안 후보측 협상팀의 이태규 미래기획실장의 한나라당 이력 등을 문제삼은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과 협상논의 내용에 대한 언론플레이 등을 두고 격렬하게 대립했다.

안 후보는 이런 구태를 지적하며 지난 14일 단일화 협상 중단을 결정했고, 16일에는 “민주당의 낡은 정치 관행을 근절할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안 후보측 지지자들과 문 후보측 지지자들이 인터넷 게시판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격렬하게 싸우기도 했다.

문 후보에 대한 오판도 사퇴 원인으로 꼽힌다.

문 후보는 6일 단일화 회동에서 단일화 7개 원칙에 합의한 이후 통큰 양보론을 주장하며 안 후보의 새정치 구상에 동의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지만 단일화 협상이 재개된 이후에는 각종 언론 인터뷰와 양자 TV토론에서 안후보측의 양보를 요구했다.

새정치 선언 구상의 핵심인 의원 정수 축소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안 후보는 이번 대선 출마를 포기했으나 정치활동을 계속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출마 선언 이후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계속 정치인으로 살겠다”고 한 바 있다.

이날 사퇴회견문에서 “비록 새정치의 꿈은 잠시 미뤄지겠지만 저 안철수는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한다”면서 “제가 부족한 탓에 국민 여러분의 변화의 열망을 활짝 꽃피우지 못하고 여기서 물러나지만 제게 주어진 시대와 역사의 소명, 결코 잊지 않겠다. 그것이 어떤 가시밭길이라고 해도 온몸을 던져 계속 그 길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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