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2월 한 달 동안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야 했다.

이달 3일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로 선임될 때만 해도 그는 반전의 주역이었다.

지난해 7월 초대 KB금융지주 회장 선임 당시 그는 외부인사인 황영기 전 회장에 밀려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은행장이었던 그에게 지주회사 회장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여겨졌던 만큼 패배는 뼈아픈 것이었다.

하지만 황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 손실 등의 책임을 지고 뜻하지 않게 1년 만에 물러나면서 재도전의 기회가 왔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강 행장은 다른 2명의 후보가 회장 선임 과정의 공정성을 문제 삼으며 중도 사퇴하는 등 혼란한 와중에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 단독으로 참여, 재기에 성공했다.

당시 면접을 강행한 그의 결단에 대해서는 `뚝심 행보'라는 평과 `패착'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 행장은 회장 선임 당시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30년 금융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의욕을 보였다.

그는 또 감독당국을 의식한 듯 지주사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접고 "회장과 은행장을 분리해 빠른 시일 내 행장 선임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금융당국이 강 행장을 탐탁지않게 여긴다는 소문이 계속 흘러나왔고 교체설이 끊이지 않아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험로가 예고됐다.

특히 금융당국이 자신을 회장으로 뽑아준 사외이사들의 비리 문제까지 들춰내며 자신을 압박해오자 끝내 용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회장에 내정된 지 불과 29일 만으로, 강 행장의 금융인생에 생채기를 남긴 셈이다.

금융권은 강 행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리에 물러난 것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강 행장은 30년간 은행권에 몸담아온 전문 금융인으로, 줄곧 KB금융를 이끌어갈 적격자로 꼽혔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국민은행장을 맡아 누구보다 은행 사정에 정통한데다 외환은행 인수를 추진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금융권 재편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았다.

그는 1979년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 입사한 이후 뱅크스트러스트그룹, 도이체방크 한국대표를 거쳐 서울은행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국민은행장에 선임됐다. 2005년에는 금융권 최초로 2조 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3년 연속 `2조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2007년 9월에 행장 연임에 성공한 뒤 증권사 인수, 지주회사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추진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지만 치밀한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황 전 회장과 호흡을 맞추던 시절 여러 현안에서 이사회를 앞세워 제 목소리를 굽히지 않았는가 하면 지난 9월 황 전 회장이 퇴임하자마자 `물갈이성' 인사를 단행하는 등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조치를 취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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