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대충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던 새해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야당의 격한 반대가 있었으나 몸싸움이나 실력 저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나라당은 오전 예결위 전체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292조8천억원 규모의 새해 예산안을 빠른 속도로 단독 처리했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등 야당 의원 70명은 본회의 예정시각인 오후 8시를 15분 가량 앞두고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해 의장석 주위를 둘러쌌다.

이들은 ‘대운하 사업 즉각 중단’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김형오는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방청석에서는 ‘4대강 삽질 예산 중단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도 등장했다.

김형오 의장은 이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 민주주의를 부르짖을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이들이냐”고 힐난했다. 그래도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김 의장은 30여분이 지난 8시15분 본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김 의장은 먼저 법사위에 계류 중인 예산부수법안 통과를 위해 ‘공휴일 본회의 개회건’을 표결에 부쳐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 174명 중 173명의 찬성을 얻어 이를 통과시켰다.

이어 곧바로 8시20분 새해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 등 4건의 안건을 상정했다.

한나라당 소속 심재철 예결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에 점거당한 단상 아래 1m 근처에서 육성으로 심사보고서를 읽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속기사 녹음기로 ‘증거’를 남겼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반대토론을 요구했지만 단상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8시37분 토론 종결을 선언하면서 전격적으로 표결에 들어갔다.

결국 1분 뒤 새해 예산안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등 의원 177명 중 174명의 찬성(반대 2명과 기권 1명)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산안에 따른 동의안 3개도 모두 일사천리로 처리됐다.

김 의장은 처리 직후 “여러분의 행위가 민주주의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법사위의 산회 조치에 대해 “직권상정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 밖에 없다. 법에 의한 법의 도전”이라며 질타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정부측 인사말까지 마친 8시48분 일제히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출입문 바로 앞에 앉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웃음을 머금은 채 악수를 나눠 눈길을 끌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악수를 나눠 직전의 ‘전투 모드’를 무색케 했다.

이후 본회의장에 남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 170여명은 조용히 표결에 임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예산안이 상정되던 시점인 8시20분께 서둘러 본회의장에 입장한 뒤 마지막 안건까지 표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본회의장을 퇴장한 민주당 의원들은 이후 국회 본청 중앙홀에서 ‘김형오 의장 규탄대회’를 진행하는 등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이어서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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