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봤는데… 인생이 더 드라마틱해 재미없더라"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잠행 5일 만에 나타나 던진 메시지는 "모든 것을 지지자 처지에서 판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안 전 후보는 캠프 핵심 인사들과 만나 대선 정국의 최대 현안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원'에 대해선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야권 후보 단일화나 정권 교체보다는 자기가 내세운 '새 정치'에 더 비중을 두고 진로를 정하겠다는 의미로 비쳤다.

안 전 후보의 지원이 절실한 문 후보와 민주당으로선 '안철수 끌어안기'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돼버린 셈이다.

安 "영화보다 인생이 더 드라마틱"

안 전 후보는 이날 서울 종로구 공평동 캠프 인근의 한 중식당에서 박선숙·김성식·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과 실장급 인사 18명과 1시간30분 동안 점심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안 전 후보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진심으로 고맙다"며 "취재진과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큰 마음의 빚을 졌다.

평생 빚진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또 "앞으로 저 개인 입장이 아니라 지지해 주신 분들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 후보 대선 선거운동 지원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은 채 참석자들의 얘기를 주로 들었다고 한다.
캠프 인사들도 문 후보 지원에 대해 묻지 않았다.

또 지난 26일로 예정했다 미뤄진 캠프 해단식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은 채 또 다시 지방으로 내려갔다.

한 참석자는 "무거운 분위기였고, 해단식이나 문 후보 지원에 대해선 물론이고 캠프 사람들이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전혀 안 했다"고 했다.

안 전 후보는 정치나 선거운동 얘기보단 지난 5일간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많이 얘기했다.

그는 부인 김미경씨, 딸 설희씨와 함께 직접 승용차를 몰고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이 기간에 영화 '연가시'와 '도둑들' 등을 보았고,
'십자군 이야기' 등의 책을 읽었다고도 했다.
그는 "영화보다 실제 인생이 더 드라마틱해서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도층 기류 보며 시기 고민 중

안 전 후보 측에선 이번 주 안에 문 후보 지원에 나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안 전 후보가 이날 밝힌 '지지층의 입장'은 "문 후보를 무조건 빨리 도우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는 "우리 지지층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야당 지지층과 '새 정치'를 원하는 중도·무당파층이 결합돼 있는데, 안 전 후보가 주시하는 핵심 지지층은 중도·무당파층"이라며 "안 전 후보는 자기 지지층을 만나면서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후보 단일화가 사실상 결렬된 상태에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지원하려면 중도·무당파층을 설득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획기적 정치 쇄신안을 내놓고 안 후보의 핵심 공약을 수용한다는 선언이 있어야 안 전 후보가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문·안 후보가 양측 간 세력 통합을 위해 합의했던 '국민 연대'도 쉽게 가동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안 전 후보 측 핵심 관계자는 "'국민 연대'는 양측 간 단일화가 정상적으로 추진됐을 때를 가정한 것인데, 안 전 후보 사퇴로 정상적 추진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고 했다.

안 전 후보가 민주당이 내놓을 카드를 기다리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민주당이 안 전 후보의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당권이나 안 전 후보 정책 전면 수용 등의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 전 후보는 그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