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고,줄고 새해예산안?

국회는 31일 저녁 본회의를 열어 새해 예산안 총지출(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을 정부가 제출한 291조 8000억보다 1조원 증가한 292조 8000억원으로 의결했다.

▲ 김형오 국회의장 직권상정 하고 있다. 
이날 표결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의원들이 참여했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여야간 합의 처리 원칙을 깨고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데 대해 의장석 주변에서 강력 항의하는 가운데 이뤄졌다.

새해 예산안은 표결 결과, 재석 의원 177명 가운데 찬성 174명, 반대 2명, 기권 1명으로 통과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날 예산안 파행 처리와 관련, “원천 무효”라고 맹비난했고, 국세기본법 등 예산부수법안의 국회의장 직권상정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발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정국이 급격히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7시 30분경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소집해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본회의로 넘겼다.

지출 규모가 늘었지만 법인세ㆍ소득세 최고세율이 2년 유예되는 등 국회에서 증세가 이뤄졌고 올해 경제여건이 예상보다 좋아짐에 따라 적자국채 발행규모는 30조 9000억원에서 29조 3000억원으로 줄었다.

국회에서 총지출이 늘어난 것도 내국세 증가에 따라 지방자치 교부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사업비 증액은 주로 서민, 노인, 아동, 장애인 관련 복지예산에서 이뤄졌다.

예컨대 노인 일자리 창출 및 틀니 지원, 장애인과 사병 사기 진작 관련 후생비가 늘어났다. 논란이 됐던 4대강 사업은 국토해양부 소관 예산에서 2800억원이 감액된 것을 비롯해 총 4250억원 줄었다.

한나라당은 국토해양부 소관 예산(3조 5000억원)에서 2800억원을 삭감한 것을 비롯해 수자원공사 이자보전금(800억원)에서 100억원을 깎았다. 또 환경부와 농림수산식품부의 4대강 예산에선 각각 650억원, 700억원을 삭감했다.

한나라당은 4대강 예산 삭감분 중 1800억원을 적자국채 발행 축소에, 나머지 2450억원은 4대강이 아닌 소하천 및 지방하천 정비에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머지 주요 감액분은 기준환율 조정에 따른 외화예산 삭감, 예비비 감액, 공공 자금관리기금의 국공채 인수규모 축소 및 국채이자 감액 등이다.

주요 증액 내역은 긴급복지, 노인 일자리 창출, 대학생학자금 융자, 노인틀니 지원, 지방교부금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증액을 통한 지방재정 확충, 국제대회 지원확대 등이다.

아울러 관리대상수지 적자는 당초 32조원에서 30조 1000억원(GDP 대비 -2.9%→ -2 .7%)으로 조정됐고, 일반회계 국채발행 규모도 30조 9000억원에서 29조 3000억원으로 줄 었다.

포괄 분야별로 다시 살펴보면 당초 291조 8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에서 ▷R&D 1000억 증액 ▷산업ㆍ중소기업ㆍ에너지 7000억원 증액 ▷수송ㆍ교통 3000억원 증액 ▷농림수산식품 1000억원 증액 ▷보건ㆍ복지ㆍ노동 2000억원 증액 ▷교육 5000억원 증액 ▷문화ㆍ체육ㆍ관광 2000억원 ▷통일ㆍ외교 1000억원 감액 ▷일반공공행정 8000억원 감액이다.

국회에서 예산이 증액된 것은 2005년 예산안 이후 5년만에 처음이다. 2005년 예산안은 국회에서 2조 9000억원 증액된 바 있다.

올해 예산안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부가 수정예산안이 제출하면서 대폭 증액됐지만 정착 국회에서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중심으로 1000억원 감액됐다.

2008년 예산안도 1조 1000억원 감액됐고 2007년과 2008년에도 각각 1조 4000억원, 1조 1000억원 감액됐다.

국회 상임위원장들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틈만 있으면 "불량 상임위"라고 비난하던 환경노동위원회와 교육과학위원회. 두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추미애, 이종걸 위원장의 명암이 연말에 엇갈렸다.

민주 "추미애, 위원장직 내놔라"


▲ 추미애 의원.
반면 한나라당과 함께 노조법을 처리한 환경노동위원회 추미애 위원장은 하루아침에 민주당에서 '배신자'가 됐다. 이들은 환노위 사건을 '추한(추미애-한나라당) 연대'라고까지 했다.

김재윤, 김상희, 원혜영, 이찬열 의원 등 민주당 환노위원들과 홍영표 민주당 노동특별위원장, 최영희 제5정책조정위원장 등 노동 관계 의원들은 3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위원회의 불법적이고 폭력적 운영에 대한 책임이 있는 추미애 의원은 당장 위원장직을 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어 "정치사에 유례없는 사태를 벌인 추미애 의원에 대해 응분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민주당 지도부에 거듭 요청드린다"며 공식적으로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단 김형오 의장이 이날 예산부수법안에 대한 심사기일을 새로 지정하면서 노조법까지 포함시킬지는 미지수이지만, 만약 노조법 연내 처리가 무산될 경우 추 위원장의 입장은 대단히 난처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종걸 위원장은 31일 오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한나라당 임해규, 민주당 안민석 간사와 함께 '교육과학기술위원회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종걸, '등록금 상한제' 여야 합의 끌어내

▲ 이종걸 의원. ⓒ신대한뉴스
 
교과위의 '취업학자금 상환제'(ICL)는 여야가 상당 기간 대립해온 쟁점 사안이다. 이종걸 위원장의 버티기에 한나라당 교과위원들이 집단 사퇴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쟁점은 ICL 보완을 위한 등록금 상한제 도입 여부. 이종걸 위원장은 국립 사립을 가리지 않고 등록금을 액수를 정해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국립대에 한해 등록금 인상률만 제한해야 한다며 맞섰다. 더불어 이 위원장은 등록금 상한제를 병행하지 않을 경우 ICL 도입을 처리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던 중 31일 여야가 원만한 합의 사항을 내놨다. 이 위원장과 여야 간사는 "장학재단설립에 관한 법률과 취업 후 상환제법을 합의처리 하되 취업 후 등록금 상환제도 시행과 관련해 국공사립대 등록금액상한제가 병행실시되도록 한다"고 합의했다. 또한 "2월1일 본회의 처리를 양당 지도부에 요청"키로 했다.

아직 금액이냐, 인상률이냐 등 등록금 상한 방식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남아 있고, 대학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지만 여야가 등록금 상한제 도입을 합의한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는 평가다.

이에 새해첫날 2010년 첫 국회 본회의는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 하나라당 단독 처리에 강한 성토를 하고 있는 민주당    © 신대한,파이넨셜,이중앙 뉴스 연합
야당 국회의원은 "노동관계법을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바꿨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12월31일 저녁 8시에 열린 본회의에서 예산안 통과를 저지하지 못한 야당은 1월1일 새벽 1시에 시작한 본회의에서는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카드를 꺼냈다. 마라톤 반대토론에 나선 것이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김상희 민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홍영표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잇달아 토론에 나섰다. 이들은 일제히 김형오 국회의장의 '말 바꾸기'에 화력을 집중했다.

새벽 1시28분, 토론 단상에 선 김상희 의원은 "31일 오전까지도 노동관계법은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갑자기 말을 바꿨다. 국회의장이 모든 것을 날치기 하고 있다. 청와대 용역깡패다"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의 변심에는 '청와대가 배후'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직권상정 하지 않고 있으니) 이명박 대통령이 김형오 의장 작살내고 안상수 원내대표 작살내서 나온 결과 아니냐"라고 소리 질렀다.

새벽 1시45분 반대토론을 시작한 홍영표 의원은 "대한민국 국회의장이 사기꾼이 되었다. 아침에 한 말과 저녁에 한 말이 다르다. 자기 스스로 국회법도 안 지킨다"라고 말했다. 대우자동차 용접공 출신으로 대우차 노동자 대표를 지내며 3차례 구속되기도 한 그가 노동관계법을 직권 상정한 김 의장을 성토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국회에) 막 들어와서 뭘 안다고 떠드느냐"라고 고성을 질러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김형오 의장은 홍 의원에게 "당신, 후회할 말하지 마라"며 반말로 경고를 했다. 이어 김 의장은 "(홍 의원은) 대단히 큰 잘못을 하고 있다. 홍영표 의원의 자식이나 손자가 몇 십 년 후에 이 회의록을 보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다"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형오 의장은 "법사위가 열자마자 산회를 했고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다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 국회의장으로서 직무 유기를 할 수 없었다"라고 노동관계법 직권 상정을 해명했다.

민주당,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

한편 예산안과 예산부수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국회법을 어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세입·세출에 영향을 주는 예산부수법안이 개정되기 전에는 예산안을 심사할 수 없다는 국회법 84조 8항을 어겼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김형오 의장이 예산부수법안을 직권상정하기 위한 공문을 보냈지만 법사위 회의가 이미 끝나 절차상 무효이고, 예산부수법을 예산안보다 늦게 처리해 국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난 미디어법 통과 때처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방침이다. 결국 31일 오전 법사위를 기습 산회시킨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김형오 국회의장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앞서 31일 오전 10시9분, 유선호 법사위원장은 "예산안이 날치기로 통과한 이상 예산부수법안 상정은 무위미하다"라며 산회를 선포했었다.

김형오 국회의장의 심사기일 상정 지정 공문은 산회가 되고 6분 늦은 10시15분에 법사위에 도착했다. 직권 상정을 위해서 필요한 심사기일 상정 통보 자체가 효력을 상실한 셈이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산회가 된 뒤 상임위는 같은 날 다시 열 수 없기에 의장의 지정 공문은 효력을 잃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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