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랑 속에 띄운 희망의 부표들


창조문학신문사는 2013년 창조문학신문 신춘문예 마감은 12월 29일이라고 밝히고 박인과 문학평론가의 2012년 신춘문예 총평(33개 신문사의 당선작을 중심으로)을 발표했다.

삶의 격랑 속에 띄운 희망의 부표들 - 박인과 문학평론가

최근 국내·외의 정서가 심상치 않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문화가 혼란의 와중에 있다. 우리의 것을 지켜내야 하는 격변의 한반도에서 신춘문예는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부정적인 영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신춘문예는 없는 것보다는 있어서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희망이 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신춘문예 현장에서는 어김없이 많은 문학도들이 쓰고 버리며 다듬고 빛낸 보석 같은 문장들을 쏟아냈다.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 부대끼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사랑을 표현해주는 희망의 언어들로 일어서는 여러분의 따뜻한 글쓰기에 감사한다. 이렇게 써서 피땀의 결과물로 수천의 경쟁을 뚫고 당선의 영광을 안은 당선자 여러분은 우리의 귀한 승리자들이다. 이 특별한 승리자들과 함께 축배를 들며, 어둠의 터널과 같은 고뇌를 통과하고 신춘에 맑고 따뜻한 생명의 문장들로 우리에게 반짝 반짝 빛나는 미래를 선물하는 귀한 작품들의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가치를 소개해 올리고자 한다.

올해의 신춘문예는 국민일보의 3월 16일 발표를 끝으로 모든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신춘문예를 시행한 기관은 매일신문, 전북일보, 영주일보, 경남신문, 영남일보, 부산일보, 경향신문, 경인일보, 국제신문, 국민일보, 한국기독공보, 한국일보, 창조문학신문, 평화신문, 한국문학방송, 농민신문, 전남일보, 문화일보, 강원일보, 서울신문, 광주일보, 문학일보, 아시아일보, 경상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경제신춘문예, 한라일보, 무등일보, 불교신문, 전북도민일보, 동양일보, 동아일보 등으로서 33개의 신춘문예 공모가 이루어졌다.

2012 신춘문예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문> 당선작 ‘물푸레 동면기’의 작자는 당선소감에서 “힘든 세상, 환한 불빛 아래 서기 두렵지만…”, “희망이란 단어를 컴퓨터 위에 붙여두고 글을 쓰던 시간들이 행복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그렇듯 그녀의 시는 희망이다. 문법적인 부분과 시적 투명성에 좀 더 신경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녀의 ‘물푸레 동면기’는 우리의 겨울나기를 닮아 있어 행복하다.

<전북일보> 당선작 ‘노숙’은 시적 깊이에 있어서는 좀 더 단련되어야 하겠지만 문태준의 심사평처럼 “따뜻한 서정과 맑은 연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어 ”동면에 들어간 나무뿌리를 주둥이로 캐다가/홀쭉해지는 새끼들의 아랫배를 혀로 핥다가“ 등 그의 언어의 흐름이 따뜻하다.

<영주일보> 당선작 ‘우리들의 인사법法’은 변종태가 ‘첫 행의 매력에 끌렸다’고 평하듯이 그 문장들이 상당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호해지거나 헐거워질 시어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밸브를 감싸 쥐고 그 위에 나의 지문을 포갠다, 새긴다.”, “당신과 나의 선들이 교차하는 순간/내가 웃었기에 당신은 울었다.” 등 시의 각도가 여물어 있어 든든하다. 영주일보는 신춘문예 왕중왕 이성이 시인을 탄생시킨 우수한 신문사이다.

<경남신문> 당선작 ‘흰꽃이 지다’는 “실로 꽃 곁에 가까이 울며 서 있는 장바구니 든 나도 진다”가 오기 위해 너무 많은 시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겉멋에 갇혀있다. 그러나 박태일과 김언희의 심사평대로 “오롯한 말솜씨와 창조적 가락”이 살아있다. 덜 필요한 문장은 없애고 좀 더 함축적이고 옹이 있는 시를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영남일보> 당선작 ‘목련꽃’은 좀 더 정확한 표현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주제를 드러내는 시점이 혼재되지 않아야 결 좋은 시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문인수와 이하석의 평처럼 “활기찬 이미지 직조·신선한 묘사”가 작자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일보> 당선작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도 정확한 표현법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종해, 천양희, 김경복의 심사평에서처럼 “새로운 어법을 통한 도전의식”이 강하게 두드러져 있고 시어 “고깃배 한 척 안개를 젖히며 희망처럼 돌아오고 있다”처럼 그의 시는 희망에 있다.

<경향신문> 당선작 ‘그늘들의 초상’은 도종환, 박주택이 “대상과 세계를 해석하는 강한 추동력과 낮은 자의 고통을 존재의 장소에서 불러내는 동일자의 윤리를 보여준다.”고 평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시적인 투명성과 진실성은 더 확보되었어야 했다. 작자와 자연과의 존재의 대화가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독특하게 자신만의 그의 시들은 세상을 향해 희망을 온기를 띄우고 있다.

<경인일보> 당선작 ‘우물이 있던 자리’도 이번 신춘문예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민용태, 김영철은 “이미지 다발의 유기적 짜임으로 의미생성을 이루는 생산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평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그 생산적 구조가 독자에게 열려있기 위해서는 시어의 문법적인 명확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중앙지 지방지의 신춘문예에 대한 편견이 바뀔 때가 되었다. 지금은 신춘문예의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방지이든 중앙지이든 어디서나 아름다운 수작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느 지면이 중앙 지면이고 어느 지면이 지방 지면이란 말인가. 인터넷 시대의 오늘의 모든 지면은 인터넷으로 전 세계로 유통된다.

<국제신문> 당선작 ‘얼룩진 벽지’는 이웃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선자인 문정희, 최영철, 박남준도 “깊고 따뜻한 응시를 가진 시”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번 신춘문예의 시들 중에서 주제에 대한 시적 통일성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산문 투의 문장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귀한 시인으로 대성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국민일보> 당선작 ‘믿음으로 가는 길’은 신앙시 공모 최우수작이다. 국민일보가 올해부터 신춘문예를 다시 시작하여 제4회 공모를 한 결과이다. 심사평에서 ‘김석’(심사위원장)은 “성서적 큰 소재인 믿음과 행위를 시인의 일상으로 끌어들여 시로써 형상화시키는 데 성공”하였다고 평가했다. 작품 속에 섞여있는 여러 주제가 통일되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 시인은 산문 투의 문장에서 탈피하고 혼란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걸러내고 압축해야 할 것이다. 시는 마구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응축시켜 가야하는 것임을 항상 인지해야 할 것이다. 부디 대성하여서 한국기독교 선교 100년이 되는 지금 기독교문예부흥의 시금석이 되기를 기도한다.

<한국기독공보> 당선작 ‘할머니의 낮잠’은 한 편의 예쁜 산문을 보는 것 같았다. 더욱 더 노력하여 “한국기독문학이 죽었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귀한 작품 생산하길 빈다. 할머니의 낮잠에 대한 작자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 따뜻함으로 차가운 세상을 끌어안을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해 내리라 믿는다.

<한국일보> 당선작 ‘월면 채굴기’는 신춘문예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황지우, 정일근, 이광호의 심사평에서 “아버지의 병과 생의 이야기를 아버지 몸속의 돌과 두개골과 달 뒤편 돌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는 발상은 매혹적이었다. ~ 다만 수사의 과잉이 있고, 다채로운 이미지의 구축에 치중하는 작법이 어법 자체의 신선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라고 평하였는데 멋진 평이었다. 평은 이렇게 해야 한다. 작자의 마지막 문장 “창 밖 저탄 더미, 캐낸 달빛이/벌써 내게 문병오고 있었다”가 이 시의 시점을 흐리고 있다.

<창조문학신문> 당선작은 ‘페이지 아웃’과 ‘교회’이다. ‘페이지 아웃’은 “기억 밖의 페이지” 즉 죽음의 페이지를 묘사하고 있다. 삶의 마침표를 찍은 ‘그’를 회상하며 “~오십 페이지/남겨진 어느 줄 즈음 쓰여질 진혼곡.”을 노래하는 것은 극한 삶의 희망의 언어이다. 그러나 긍정적일지라도 죽음의 언어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 ‘교회’는 함축되고 정제된 언어가 신앙의 깊이를 함유하고 있다.

<평화신문> 당선작 ‘그늘’에 대해서 이승하, 정호승은 “나무를 의인화한 뒤에 그늘과 바람과 새와 폭설의 의미를 짚어보면서, 생명이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아독존해서는 안 되고 주변의 모든 사물과 교류해야 함을 말해주는 주제가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신춘문예의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젖은 잠’의 시어는 이미 많은 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어이다. 올해 신춘문예 부산일보 당선작 ‘나비가 돌아오는 아침’의 시어이기도 하다. 두 작자 모두 첫 행에 ‘젖은 잠’을 꽂았다. 보다 새로운 자신만의 감각을 살려가야 할 것이다.

<한국문학방송> 당선작 ‘무릎의 아바타’는 안재동, 박남주, 이화국, 장종권이 심사하여 선정한 작품이다. 매년 발표되었던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 당선작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일간지 신춘문예 당선작과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한국문학방송 주간인 안재동 문학평론가의 순수한 문학적 의지에 대한 결과물일 것이다. ‘무릎의 아바타’는 사물에 대한 시선이 따듯하다. 신도 부정하는 언어가 극적이다. 그만큼 반전의 문학을 기대해 봄직도 하다. 시어의 흐름을 급하게 하지 않고 문법적인 부분에 좀 더 신경을 써서 창작한다면 귀한 보물을 캐내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농민신문> 당선작 ‘구름사촌’은 이번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이문재, 안도현은 “시라는 게 세상을 뒤집어 볼 줄 아는 힘을 내장한 양식이라면 이 시야말로 물구나무서서 세상 바라보기를 시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한다. 그렇다. 잘 뽑았다. 문법적인 오류도 보이지 않는다. 잘 창작된 작품은 이렇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전남일보> 당선작 ‘위풍당당 분필氏’에 대해서 안도현은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자의 난감함을 이처럼 능숙하게 표현하는 일은 범상치 않다”고 평한다. 작자의 시적 상상력이 튼튼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법적인 오류가 없고 그 주제가 명확하게 통일되어 있는 참신한 표현법이 신춘을 사로잡고 있는 위풍당당한 수작이다.

<문화일보> 당선작 ‘풍경 재봉사’는 창조문학신문 2011년 당선작인 박인과가 뽑은 ‘바다수선’을 떠올리게 한다. ‘바다수선’의 시어는 ‘바다’가 나오고 ‘풍경 재봉사’의 시어는 ‘호수’가 나온다. 항상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은 그 전의 신춘문예 당선작품들과 닮은 서정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바다수선’처럼 ‘풍경 재봉사’도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황동규, 정호승은 ‘풍경 재봉사’에 대해 “신선하고 아름답다. 유행과 시류에서 벗어난 점이 무엇보다 장점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그러나 항상 시인은 자신만의 새로운 감각을 개발해 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당선자에게 거는 기대 또한 크다.

<강원일보> 당선작 ‘거미줄 동네’ 역시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강원일보에서 매년 당선되는 작품들이 수작이었다. ‘거미줄 동네’를 당선시킨 이승훈, 이영춘은 심사평에서 “시의 후반에서 ~ 시의 전반을 지배하는 삶의 고달픔과 어두움과 공허를 발전시킨 점이 이 시를 더욱 빛냈다”고 기재하고 있다. 줄에 걸려 파닥거리는 참붕어처럼 이 시는 고통과 고뇌의 신춘의 바다에서 희망의 부표로 떠올라 더욱 생동감을 주고 있다.

<광주일보> 당선작 ‘귀화(歸化), 혹은 흑두루미의 귀환(歸還)’에 대한 심사평은 “다소 설명적이어서, 행간에 이미지의 증폭이 없어 시의 맛이 반감되고 있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당선자는 시를 산문처럼 쓰고 있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새의 낙관’처럼 아직도 자신의 시의 틀을 온전히 갖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문학일보> 제정례의 ‘골목길을 벗어나’는 제3회 文學日報 신춘문예 공모로서 <낭만시인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2012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긍정과 창조의 언어가 팽팽한 문장 속으로 스며들어 초록 짙은 세계내존재의 봄을 구축하고 있다.

<아시아일보> 신춘문예는 금년에 제1회 시행하여 손상호, 김을남, 심형민, 이소정, 이혜순 등 5명의 신인을 당선시켰다. 단 한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을 당선자로 선정한 아시아일보에게 박수를 보낸다.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1년에 1명을 뽑을 경우 10년이 되어도 10명 밖에 뽑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한다. 문학인구가 50년 전신춘문예의 상황에 비해 엄청난 차이가 있고 그 많은 문학도들을 낙심케 하고 폐인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것이 단 한 명만 뽑는 신춘문예 제도에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된다면 많이 뽑아서 창작의 기회를 주어 모국어의 텃밭을 기름지게 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일보의 당선작 중 ‘이별연습1’은 시적 이미지가 선명하다. 더욱 더 갈고 닦아 대성하길 빈다.

<경상일보> 당선작 ‘노루귀가 피는 곳’은 신앙의 눈으로 사물을 표출시키고 있다. “가려워 진물 흐르는 대지에/아니 너와 나의 그곳에/누가 아련히 뜸을 뜨고 계시다”며 세계를 운영하는 신의 존재를 묘사하고 있고, “어느 세상의 기혈이 뚫렸나 하루도 환하다”며 혈도는 세상을 추구하는 따뜻한 서정을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 문법적인 부분과 시어의 함축에 더욱 신경을 쓴다면 대성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선일보> 당선작 ‘조련사K’에 대해 문정희, 조정권은 “삶의 구체성에 대한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고 했고 “인간과 현실에서 삶의 남루함을 포착하는 섬뜩한 시적 투시력”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맞는 평가이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우리에게 따듯한 희망을 준다. 그러나 시를 쓰기 보다는 산문을 쓰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이 시의 처음부터 문법적 오류도 보인다. 시어의 함축과 문장의 절제로 인해 더욱 담금질 된 시를 낳기를 바란다.

<경제신문> 가작 ‘정중한 각도’에 대해 선자는 “산문처럼 늘어지지 않는 시적 긴장도를 갖춘다면 더욱 좋은 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산문적인 표현이 이 시의 긴장력을 낮추고 있지만 다른 모 신문의 당선작보다 뛰어나다.

<한라일보> 가작 ‘링거 속의 바다’에 대해 김규린은 “형식적인 면에서 가장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자신의 색체가 부족하고 소품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좀 더 치열한 시적 긴장력으로 승부한다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철새를 만나다’는 양병호가 선했으며, “철새를 통해 인생의 한 단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철새를 만나다’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선명한 묘사력, 구조적 안정감과 더불어 유려한 리듬감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이 시는 운문보다는 산문의 영역에 더 깊이 머물러 있다. 좀 더 문장들을 응축하고 시적 긴장력을 갖추어야 한다.

<동양일보> 당선작 ‘조장’은 정연덕이 뽑으며 “ ‘그를 바라보는 나도 시신이 되어 던져진다/독수리에게 물고 뜯기는 나의 살점이 나를 바라본다’는 이미지 포착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이 작자 역시 산문적 틀에서 벗어나기를 권한다.

<동아일보> 당선작으로 ‘나의 고아원’과 ‘식탁에서’를 선정한 장석주, 장석남은 당선작에 대해 “현존의 혼돈을 뚫고 그 눈길이 가닿은 지점에 어김없이 생의 기미들과 예감들이 우글거렸다.”고 평가했다. ‘나의 고아원’은 올해 신춘문예의 수작이다. 다만 시적 표현이 통일성이 없어서 어색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시어의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야 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새파란 싹이 나는 감자를 도려냈다. 어깨가 아팠다.”의 시어에서 그녀의 깊은 시적 감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무등일보> 당선작으로 ‘불고기, 물꼬기’를 뽑은 신덕룡은 심사평에서 “언어로 동화되지 않는 현실의 틈새를 발견하고, 그 틈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시어와 시어 사이의 관계성을 고려하여 연이나 시행의 구별을 적절히 할 수 있다면 좀 더 깊고 내밀한 시를 창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불교신문> 당선작 ‘암자에 홀로 앉아’는 시로서 보면 참 짧은 시이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자의 시적 표현력이 노련하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신춘문예 당선 시가 이렇게 짧아도 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는 짧을수록 좋다. 시를 길게 쓰거나 짧게 쓰거나 하는 계획은 작자가 하는 것이고 시의 완성도 면에서도 길게 쓴 시가 짧은 시보다 더 낫다는 주장은 할 수 없다. 작자의 이 시는 불교적 심상과 개인의 경험을 아울러 형상화한 심도 깊은 작품이다. 부처님은 행복의 조건을 무소유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당선자의 시 ‘암자에 홀로 앉아’ 전문을 보기로 한다.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빈 골짝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련다”

이 시에서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 / 빈 골짝 / 다 쏟아 붓고” 나비가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형이상학이다. 다만, “날 좀 때려주오 /천년고찰 범종 치듯”이 한 문장으로 이루어졌고 도치법이 시행되었다면 ‘범종 치듯’ 다음에 마침표가 와야 한다. 이 마침표가 없음으로 해서 이 시어 ‘천년고찰 범종 치듯’은 자연히 다음 문장 “안으로 /다져놓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을 빈 골짝에 쏟아 붓는 것이라면 ‘빈 골짝’의 시어에 ‘에’를 붙여 ‘빈 골짝에’로 해야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고 시의 해석이 가능해진다. ‘에’가 없음으로 해서 이 시는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을 쏟아 붓는 것으로도 ‘빈 골짝’을 쏟아 붓는 것으로도 해석이 되게 되어 있다. 천년고찰 범종 치듯 나를 때려서 내가 ‘전탑(塼塔)언어 청태(靑苔)눈물’을 다 쏟아 붓고 나비 되어 가겠다는 시적 의도라면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작품으로서 이 시에서 나비 되어 날아가는 작자의 무소유의 언어를 깊이 만나는 문장의 숲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무소유는 존재의 따뜻한 희망의 나비이다. 귀한 시인으로 대성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신문> 당선작 ‘저무는, 집’에 대해 함성호, 송찬호는 “반복되는 말과 말로 공간을 이루고 거기에 막연과 아연의 풍경들을 자리하게 해, 시 자체가 하나의 사건을 이루고 있었다.”고 평한다. 그러나, “막연과 아연의 풍경들을 자리하게” 했다기보다는 이 작품은 이미와 아직의 현재의 공간에서 문장을 수식하는 것이다. 이미 온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의 사이의 긴장의 현실을 문장의 현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저무는 세상에서, 세상마저 저무는 존재의 집에서 문장이 구원의 서정을 대표하며 이미 당도한 세계와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의 이미저리로 새로운 문장이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는 이 시의 “집에는 아직 당도한 문장과 이미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에서 ‘아직’과 ‘이미’를 바꾸어서 <집에는 이미 당도한 문장과 아직 당도하지 않은 문장이 있네>라고 되어야 문법적으로 옳다. 이 ‘이미’와 ‘아직’의 순서를 뒤바꾸어서 얻는 문장 혹은 구원의 긴장력이란 있을 수 없다. ‘아직’과 ‘이미’의 본질을 뒤바꾼 마지막 시어에 의해 이 시적 행위는 언어의 유희에 갇혀 생명의 법을 떠나 죽음의 법에 놀아난 겉멋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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