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노루 꼬리만큼 남았다. 한 해를 정리하는 즈음 어떤 나들이가 제격일까. 겨울 여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식도락(食道樂)기행’이다.

미식기행은 별미에 대한 기대와 여정 속에 낭만이 함께 있어 더 즐겁다. 특히 겨울 바다로 떠나는 낙조-별미여행은 다소 을씨년스러운 감은 있지만 낭만이 한껏 흐르는 운치 있는 여정을 담보해준다.

천지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낙조의 황홀경 속에 여기 된 연말 분위기를 억누르고 침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12월, 가족과 함께 한해를 정리하는 낙조-미식기행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지금 충남 서해안 천수만을 찾으면 온통 황금빛으로 채색하는 자연의 마법, 장엄하고도 신비로운 대자연의 드라마를 목도하는 한편 겨울바다의 싱싱한 미식거리도 함께 맛볼 수 있다.

◆천수만 최고의 일몰 포인트 ‘서산 간월암’
서해안에는 여러 곳의 낙조 명소가 있지만 천수만 인근 미식기행을 구상한다면 충남 서산군 부석면 천수만의 ‘간월암(看月庵)’을 꼽을 수 있다. 간월암은 국내 대표적 바닷가 사찰로 꼽히는 곳이다. 섬 사이로 달이 뜬다 해서 간월도라 불리는 작은 섬에는 그 섬만큼 작은 절이 있다. 말이 섬이지 손바닥만 한 밭뙈기 크기에 암자 하나가 간신히 들어앉은 형국이다. 
간월암의 황홀한 황금빛 낙조.
간월암의 황홀한 황금빛 낙조.

하루 2번씩 밀려오는 밀물 때는 물이 차 섬이 됐다가 썰물때 물이 빠져 육지와 연결되는 간월암은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답다. 조선왕조의 도읍을 서울로 정한 무학대사가 고려 말 암자를 짓고 ‘무학사’라 불렀다. 그 뒤 퇴락한 절터에 만공대사가 1941년 새로 절을 지어 ‘간월암’이라 이름 지었다.

간월암은 본래 서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지금이야 서산방조제 공사와 매립으로 육지와 가까워 졌지만 그전에는 학승들이 용맹정진 할 만한 절해고도였다. 물때를 잘 맞춰 걸어 들어가거나 물이 차면 도선의 줄을 당겨 건넌다.

대웅전 앞에 서면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어선들의 행렬이 이어지는 등 이색 풍광을 접할 수 있다. 간월암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해질녘 일몰. 특히 뭍에서 바라보는 간월암의 해넘이는 진한 여운을 드리우는 한 폭의 수채화에 다름없다.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IC~태안(안면) 방면~A지구방조제를 따라 가다가 간월삼거리에서 좌회전~간월암

◆천수만 미식기행 3선
‘식도락(食道樂)’은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즈음 서해안을 향하는 여정은 별미에 대한 기대와 겨울바다의 낭만이 함께 있어 즐겁다.

특히 대천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충남 보령, 홍성 등 천수만 일원은 수도권에서 2시간 남짓한 거리로 뻘굴, 간재미, 새조개 등 계절의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겨울의 진미 ‘굴’-보령
겨울철 최고의 미식거리로는 굴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즈음 충남 보령 천북 해변 일대를 찾으면 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천북면 장은리, '굴 마을'로 이름난 포구 일대에는 100여 군데의 굴전문구이집이 늘어서 있다.

국내에는 진해, 완도, 여수 등 굴산지가 많지만 미식가들은 그중 충남 보령 천북을 명소로 꼽는다. 장은리 등 천수만 일원은 서해로 향하는 지천이 많아 해수와 담수가 고루 섞인 뻘이 발달해 굴 서식처로는 최적의 환경이다.

거기에 뻘에서 자라 일조량이 많은 것도 천북굴을 짭조름 쫄깃한 최고의 별미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뻘밭의 화초’로도 불리 우는 천북굴은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시즌이다. 굴 채취는 장은리 포구 앞바다 뻘밭에서 이뤄진다.
일명 ‘석화구이’로도 불리는 천북굴구이.
일명 ‘석화구이’로도 불리는 싱그런 바다의 맛 천북굴구이.

물때를 맞춰 배를 타고 20여분을 나가면 광활한 뻘에 마치 하나의 커다란 꽃밭을 연상케 하는 자생지가 나선다. 자연산이라고 해봐야 갯바위에 붙어 있거나 양식장 통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종패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쉽다. 하지만 천북굴은 부드러운 뻘밭에 곱게 피어난 화초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

천북굴은 덩어리 형태가 많다. 크기가 작은 여러 굴개체가 따개비 등과 함께 붙어 있다. 또 딱딱한 굴 껍질을 까면 토실하면서도 노르스름 회색빛을 띠는 속살이 드러나고, 맛은 짭조름 쫄깃 거린다. 반면 양식굴은 일반적으로 개체가 큰 편이며, 큼직한 씨알의 육질이 덜 쫄깃한 편이다. 
천불굴을 캐는 동네 아주머니들. 보는 것 이상 고단한 작업이다.
천불굴을 캐는 동네 아주머니들. 보는 것 이상 고단한 작업이다.

뻘밭에 나가 굴을 캐며 자식들을 가르치고 시집장가까지 다 보냈다는 이 마을 임이분씨(64)는 “굴 캐다가 한 점씩 맛보는 천북 뻘굴 맛이 이 세상 최고의 별미”라면서 “이제는 다른 데서 나는 굴은 심심해 못 먹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인근 마을 아주머니들이 칼바람을 이기며 채취한 굴은 하루 평균 20여t. 신선한 것들부터 장은리 포구 굴 구이 집으로 직행한다.
천북굴은 씨알이 작지만 노르스름 회색빛을 띠는 속살이 짭조름 쫄깃 거린다.
 
벌건 숯불에 오른 굴 껍질이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해 ‘딱’ ‘딱’ 소리를 내며 입을 살짝 벌릴 때 까먹는 굴 맛이 그만이다. 소주잔 몇 순배에 화덕 주변은 금세 ‘굴무지’로 변하고 만다. 한광주리(10kg 정도, 3만 원선)면 넷이서 실컷 먹을 수 있다. 굴밥, 칼국수 천북수산 등 굴 전문점 등 맛집이 즐비하다.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광천 IC~광천면 소재지~이정표 따라 장은리
▶쫄깃한 서해의 풍미 ‘새조개’-홍성
새조개. 속살 모양이 작은 새를 닮았다 하여 붙였졌다.
새조개. 속살 모양이 작은 새를 닮았다 하여 붙였졌다.
 겨울철 서해안에는 귀한 미식거리가 있다. 새조개가 그것이다. 새조개 산지로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항이 꼽힌다. 남당리는 서해안 천수만의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이다.
철마다 천수만 일대에서 나는 제철 해산물이 넘쳐나 서해안 미식 1번지로 불릴 정도다. 새조개는 겨울다운 추위가 닥칠수록 작황이 더 좋다. 12월부터 3월초까지 천수만 연안에서 형망(끌방) 조업이 이어진다.

새조개는 살집이 크면서도 부드러워 통째로 물에 데쳐 먹거나 구워 먹는데, 입 안 가득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이 지역 회집에서는 주로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먹는 샤브샤브를 많이 낸다.

냄비에 무, 대파, 팽이버섯, 마늘 따위 야채를 듬뿍 넣고 펄펄 끓인 뒤 여기에 새조갯살을 담가 살짝 익힌 뒤 초고추장에 찍어 김에 싸서 한입에 먹는다. 조개를 데쳐 먹은 야채국물엔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데, 이 맛 또한 별미다.
겨울철 뜨끈한 국물이 입맛을 돋구는 새조개 샤브샤브.
겨울철 뜨끈한 국물이 입맛을 돋구는 새조개 샤브샤브.

값비싼 새조개는 그 해 작황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한 편이다. 대략 껍질을 깐 새조개 1㎏(2인분, 20마리 정도)이 4~5만원 수준이다.

◇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 좌회전, 29번국도 타고가다 40번 국도로 좌회전~갈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남당리 팻말보고 7~8분가면 다시 40번국도. 좌회전해 8㎞쯤 들어가면 어사리 지나 남당리.

▶가오리보다 한 수 위 ‘간재미’-오천
일명 ‘갱개미’로도 불리는 간재미도 겨울 별미로 그만이다. 간재미는 우리나라 서해안에 고르게 서식하지만 유독 천수만, 태안반도 인근해역에서 많이 나는 심해성 어종이다. 생김새가 가오리와 비슷하지만 크기가 작고 맛도 홍어에 견줄 만 해 겨울철 진미로 통한다.

굳이 ‘겨울 간재미’로 불리는 것은 바닷물이 따뜻해지면 육질이 얇고 질겨지는데다 뼈도 단단해져 특유의 오돌오돌한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업도 연중 12~4월 사이 집중된다.

간재미는 춥고 눈 올 때 살아 있는 싱싱한 것을 막 조리해 먹어야 제 맛이다. 활어 회는 껍질을 벗긴 후 살과 뼈째 알맞게 썰어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홍어처럼 톡 쏘는 맛이나 생선 특유의 비린 맛이 없어 평소 회를 즐기지 않는 이들도 쉽게 입맛을 붙일 수 있다.
간재미 찜.
간재미 찜.

무침은 고추장에 식초와 참기름, 대파, 배, 오이 등을 썰어 넣고 발갛게 버무려 상에 올리는데, 매콤 새콤한 양념과 쫄깃, 오들오들 씹히는 맛이 어우러져 식감을 더한다. 한 마리를 통째로 쪄내는 찜은 양념이 밴 속살과 연골이 입에서 사르르 녹듯 부드럽게 넘어간다.

간재미를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탕을 즐겨 찾는다. 간재미를 토막 내 신 김치와 함께 넣고 푹 끓여낸 국물 맛이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보령 오천항, 태안 등지에서 맛볼 수 있다. 작황에 따라 가격차가 있지만 대체로 4~5만 원 선이면 넷이서 먹을 만하다 .

◇오천항: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보령 방면~21번국도 (주포방향)으로 좌회전~ 8km 가면 주포, 좌회전 이정표 따라~오천항.
◆김형우(여행기자)

조선일보 출판국 기자, 스포츠조선 레저팀장을 거쳐 현재 여행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관광기자협회장, 2010~2012 한국방문의해 위원, 서울시 관광진흥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관광공사 베스트 그곳 선정 자문위원, 한양대 관광학부 강사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여행기자들이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공저)’ 등이 있다.
 
▲   김형우 여행기자 

                                                                                           
 
 
 
 
 
 
 
 
 
출처:공감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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