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전원 귀가 후에도 여전한 불안감

▲ 불산가스 유출 후 농작물이 모두 마르자(왼), 생업에 복귀한 주민들이 불산피해 농작물을 제거하며 불산피해 후유증 제거에 나서고 있다 (오른쪽)













사상 최악의 화학물질 사고를 겪은 ‘구미 불산 가스 누출사고’의 산동면 주민들이 집단거주생활 80여일 만에 전원 귀가했지만 안전성에 대해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민심을 안심시키기에만 급급하고 사고의 책임을 떠넘기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주민들의 불만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봉산리 주민 100여 명과 임천리 주민 150여 명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집단거주 시설을 떠나 각기 집으로 돌아왔다.

귀가한 주민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 집안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고 콤바인 등 장비 8대를 동원해 마을 앞 불산피해 농작물을 제거하는 등 불산피해 후유증 제거에 나섰다.

이 지역 주민들이 애초보다 귀가 시기를 앞당긴 것은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집단거주 식대가 많이 나가 귀가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봉산리, 임천리 주민들은 지난 지난 23일 귀가 여부 찬반 투표 결과 선 도배장판 교체 후 귀가보다, 선 귀가 후 도배장판 교체에 찬성한 주민들이 많아 일단 귀가했다고 밝혔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 정부의 초기 대응

지난 9월 27일 오후, 경북 구미시 산동면에 위치한 주식회사 휴브글로벌 공장에서 탱크차에 실린 불산가스를 공장 내 설비에 주입하던 중 근로자의 실수로 탱크차의 밸브가 열리면서 불산가스가 유출됐다.

사고가 일어난 곳에는 각종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공장 인근의 마을에는 산동면 봉산리 314가구 535명, 임천리 252가구 642명이 거주하고 있다.

외부로 유출된 희뿌연 연기는 하늘을 뒤덮더니 이내 인근 마을을 덮쳤고, 신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추수를 앞둔 농작물이 죽고 가축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이는 등 2차 피해가 속출했다.

문제의 연기는 인체에 치명적인 불산이었고, 20톤가량의 엄청난 양이 누출됐다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주민들은 급기야 정든 집을 떠나 긴급 대피길에 올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는 특별 재난지역으로 지정하고 사고수습에 안간힘을 썼지만 성난 주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이상이 없다’는 환경영향조사 발표는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감만 더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사고의 휴유증을 안고 있었다.

피해 주민들은 임시 대피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지만, 정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산동면의 한 주민은 “사고가 발생하고 정확한 진단도 내리지 못했으면서 안전하니 집으로 복귀하라는 것은 주민들을 안심시키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사고 발생 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정부에서는 보상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에는 사고로 인한 피해 지역의 오염 농축산물 폐기처분 작업이 시작됐다.

구미시는 피해지역 내 3654마리의 가축을 도살 처분하고, 농작물 9100여 톤을 전량 소각할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박종욱 불산피해 대책위원장은 “주민들은 일단 귀가해 생업에 종사하겠지만 앞으로 불산 피해로 인한 건강상 후유증이 나타날까 주민들이 걱정해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구미 사고’ 이후 달라지는 것은?

앞으로는 구미 불산사고와 같은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하면 환경부가 초기대응부터 사고수습까지 맡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환경부에 화학사고를 전담하는 중앙·지방기관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유해화학물질 안전관리 개선대책’을 확정했다.

그동안 유해화학물질은 환경부가 맡고, 독성가스는 지식경제부, 중대산업사고는 고용노동부가 맡고 있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경계선이 모호해 혼선을 빚어왔다.

구미 불산사고 당시에는 고용노동부가 관할하는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했는데 고용노동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뒤이어 환경부가 나섰지만 사고는 이미 2차피해로 확산된 후였고 애꿎은 환경부만 지난 9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정부는 이런 시선들을 의식해 화학물질 사고 발생시 부처간 소관이 중첩되거나 현행법상 관리제외 물질인 경우 환경부로 대응·수습 체계를 일원화해 사고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화학사고 등 대규모 인적재난 발생시 중앙대책사고본부를 중심으로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범정부적 대응을 추진토록 하고 피해 지원대상을 법령상 구체화하는 등 재난 수습체계를 명확히 하기로 했다.

사고 발생시 현장의 원활한 수습을 위해 시·군·구청장(주민·근로자 대피)과 소방서장(응급구조, 방제·방역)의 권한을 다시 구분했다.

피해확산이 빠른 화학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주민대피령 발령을 ‘심각’에서 ‘경계’ 단계로 현실화하는 등 위기대응 매뉴얼의 미비점도 보완키로 했다.

환경부측은 “부처별로 운영·관리하고 있는 위험물질 정보시스템을 '화학사고 대응정보시스템'에 상호 연계해 관련 정보를 최대한 공유토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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