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경비원 선호현상…고령 경비원 해고로 이어져


▲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해고된 민씨 등 60대 경비원 2명이 지난 31일부터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굴뚝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 1층에서 아파트를 지켜야 할 경비원들이 사흘째 매서운 추위와 칼바람을 견뎌가며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어 그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들은 업체로부터 일방적으로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업체측은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서 지난달 28일자로 해고된 민 모씨 등 60대 경비원 2명은 지난 31일부터 근무태만으로 인한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며 아파트 9층 높이에 이르는 굴뚝 위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밤 많은 양의 눈이 내렸지만 민 씨는 굴뚝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전원 복직을 수용할 때까지 농성을 계속할 계획을 밝혔다.

그는 왜 해고 통보를 받았나

2003년 경비일을 시작한 민씨는 최근 한국주택관리㈜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60세 정년은 이미 넘겼지만 관리회사는 근무평가가 우수한 경비원을 62세까지 촉탁직으로 재고용해 왔는데, 민씨는 이에 해당되는 인력이었던 것.

민씨는 2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내년까지 정년퇴직이 보장돼 있었는데 시말서 한 장 썼다고 그만두라고 했다”며 “12월 28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 억울함을 해결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어서 올라왔다”고 밝혔다.

또 “3일전에 해고 통보를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해고당한 15명 중 일부는 3일전에라도 통보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연락도 못 받고 그만뒀다”고 말했다.

해고 이유로 지적된 근무태만에 대해서는 9년 4개월 동안 야간순찰 하다 처음으로 한 시간 정도 깜빡 졸았는데, 시말서 한 장으로 해고됐다고 설명했다.

또 “초소에 형광등을 켜면 실내는 환하지만 바깥을 못 봐 형광등을 살짝 가렸는데 어떤 주민이 초소가 안 보인다며 떼라고 했다”며 “그러면 바깥이 안 보여 누가 누구인지 구별을 못해 다시 (신문지를)붙였다. 이것으로도 시말서 쓴 예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3월에는 나이 든 경비원이 너무 많다며 근무자 연령을 낮춰 줄 것을 요구하는 입주자 대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에 경비원들은 노조를 꾸려 62세까지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합의를 봤지만, 주택관리 측은 근무 태만 등을 이유로 민 씨 등 14명의 재계약을 거부했다.

용역 업체측은 경비원들의 나이, 인건비 등을 해고 사유로 언급하며 해당 경비원들의 복직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민형기 서울일반노조 신현대아파트 경기분회장은 “단체장을 맡고 있는 나조차도 해고자 명단을 못 받았다”며 “법률적으로 고지를 해 줘야 하는데 명단도 못 받았으니 어떤 기준으로 해고됐는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촉탁직은 신입사원과 똑같은 봉급을 받는다”며 “10년 근무 경력을 가진 유능한 경력사원을 신입사원 월급으로 채용하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무슨 얘기인가”라고 말했다.

경비 노동자들의 취약한 근무환경 또한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해당 경비원들은 “감시단속직이라는 명목 하에 최저임금의 90%을 받고 있는데, 사업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엄연히 (휴식이 아니라)대기시간이고, 대기시간에는 임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 분회장은 “휴식시간을 갖고 임금을 조정하기 때문에 휴식시간이 4~5시간인 다른 사업장은 임금이 더 떨어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민씨가 해고된 업체인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측은 “입주자 대표들이 지나친 고령화를 우려해 내린 결정”이라며 “이곳 급여가 다른 곳보다 높은 만큼 이왕이면 젊고 유능한 경비원을 쓰는 게 맞다”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민씨처럼 친숙한 경비원이 계속 일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젊은 경비원 선호로 갈 곳 없어진 고령 경비원

이처럼 고령 명예 퇴직자에게 ‘제2의 안정된 일자리’로 손꼽히던 경비원 자리도 40, 50대 조기 퇴직자가 급증하면서 위협받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 서초구의 고급 아파트를 중심으로 젊은 경비원의 비율이 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경비원이 젊을수록 아파트 이미지가 좋아져 집값이 오르고 각종 돌발 상황에도 기동력 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을 선호 사유로 들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최고급 아파트 경비원은 모두 50여 명이다. 이들을 고용하는 경비관리업체는 ‘같은 값이면 젊은 직원을 쓴다’는 방침으로 최근에는 주로 40세 전후의 경비원을 채용하고 있다.

이 지역 부근의 다른 아파트도 40, 50대 경비원이 대부분이고 60대 이상은 3명밖에 지나지 않는다.

정년이 비교적 높은 곳도 근무조건은 까다로웠다. 경비원 정년이 68세인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인원 중 절반은 1년 이상 근무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경비원 O모씨는 “1년을 근무하면 퇴직금과 월차 수당 등 200만 원을 받는다”며 “회사는 이 돈을 아끼려고 잠깐만 졸아도 근무 태만을 이유로 1년 이내에 해직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의 안전과 재산 보호를 위해 일하지만 실제론 주민들의 생활을 돕는 도우미 역할에 가깝다”며 “나이나 신체 능력보다 경험과 친화력, 성실성이 더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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