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죽는 날까지 위안부 실체 폭로에 평생을 받친 살아있는 '진실'"황금주"할머니 하늘나라로.. 

향년 92세 나이로 평생을 일본의 만행을 폭로하며 위안부 맏 언니로 살아오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금주 할머니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황금주 할머니가 3일 오후 1시 45분쯤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운명했다고 밝혔다.

192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열세 살 때 함흥에 수양딸로 입양됐다. 이후 주인집 큰딸이 일본 군수공장에 끌려갈 처지가 되자 주인집 딸을 대신해 일본군에게 노역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황 할머니는 군수공장이 아닌 중국 지린의 군부대에 위안부로 끌려가 지린과 만주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야말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황 할머니는 1945년 해방 이전까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을 했다.

해방 후 전쟁터에 버려졌던 황 할머니는 옷과 신발을 주워신고 만주에서 춘천까지 걸어온 뒤 석탄차를 얻어타고 겨우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에서는 채소장사와 국수장사 등을 전전하다가 조그만 식당을 내고 생활했다. 한국전쟁 중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부모 잃은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기도 했다.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피해자 신고를 한 황 할머니는 이후 인권운동가로 활동을 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  평생을 받쳤다.

1992년 8월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에 정대협 대표단과 함께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로서 겪었던 참담한 경험을 폭로해 국제 인권 전문가들에게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후에도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지를 다니며 일본제국주의가 위안부 여성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황 할머니는 또한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2005년 치매에 걸린뒤에는 부산 요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정대협에 따르면, 할머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 때 "사죄하라" "내 청춘 돌려달란 말이다"며 몸을 구르며 절규하시기도 했다. 또 할머니는 일본대사관 앞을 지키며 때로는 수요시위를 막기도 했던 한국 경찰들을 향해 "니놈들은 어느 나라 경찰이야"라고 호통치시기도 하셨다.

윤미향 공동대표는 "할머니가 못다 풀고 가는 한, 우리가 풀어드릴 수 있도록 정대협은 굴하지 않고 활동할 것"이라며 "고인께서 가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길에 명복을 빌어주시고, 남아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평화를 기원해 주시며, 할머니의 못다 한 꿈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이룰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고(故) 황금주 할머니는 올해 첫 위안부 피해 할머니 사망자이다. 

빈소는 부산 사상구 삼신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5일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된다. 이곳은 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리기 시작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 옆이다. 황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6명 중 생존자는 58명으로 줄었다.

한편 일본의 아베 신조 새 내각이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한 1993년‘고노 담화’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외교전문가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기고문을 <뉴욕 타임스>에 실어 화제가 되고 있다.

'메리 매카시' 미국 드레이크대 교수는 1일 이 신문에 보낸 기고문에서 일본의 역사인식 후퇴 경향을 비판하며 이런 흐름이 일본과 다른 나라들이 원만한 관계로 지내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는 인권과 여성권리의 문제이며 일본은 ‘여성권리의 보호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네덜란드 여성의 사례를 앞세우며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20만명의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수십년 만에 겨우 인정한 ‘고노 담화’마저 번복될 위기에 처했다고 일본 새 내각의 부정적인 움직임을 지적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는 비단 “일본의 외교나 미국의 전략적 이익 또는 역사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늘날 세계의 무력충돌 지역과 다른 위험한 곳에 있는 여성과 소녀의 실제 상황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이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매카시에 따르면 미 하원이 2007년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때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권리와 인권의 문제”로 재구성됐다. 위안부 문제는 이후 세계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았는데 여성이 인신매매로 고통받는 현실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매카시 교수는 세계의 인신매매 피해자가 240만명이며 이 가운데 80%가 성노예로 착취당한다는 유엔 자료를 인용하면서 보스니아나 콩고민주공화국 같은 내전이 벌어진 나라에서는 성폭행과 성매매 강요를 포함한 성폭력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전했다. 즉 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전세계적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되는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의 현 정부에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일본을 “인권의 보호자, 권리를 빼앗긴 이들의 옹호자”로 만들어 일본 젊은이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불어넣고있다며 일본은  외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매듭 지려는 노력과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일침했다.

정부도 위안부 문제에 관련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맹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 아직도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앞 수요집회에 나와 일본의 진실어린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정부가 나서 이번에는 꼭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받아낼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다시한번 '황금주'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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