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2013년도 예산안이 해를 넘겨 통과했다. 법정 기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국회의 특권처럼 되어왔다.
 
국회의원들이 늑장을 부리는 이유는 다른 일에 쫓겨 미처 예산안에 대한 분석을 다하지 못했다는데 있겠지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년 되풀이되는 꼬락서니가 마치 몽니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보기에 안쓰럽다. 기일 내에 통과시키면 정부에 굴종하는 것으로 느끼지 않고서야 어찌 해마다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일부러 시일을 질질 끌어 정부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일종의 가학적 쾌감을 만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연말 마지막 날 밤 12시를 넘긴 일은 없다. 해를 넘기지 않는 전통조차 이번에는 사라졌다. 회차(會次)를 연장하여 합법성을 가장하긴 했겠지만 넘기지 안 해도 될 일을 구태여 6시간 넘겨서 통과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제주 해군기지 예산안을 붙들고 늘어져 원안을 통과시키는 조건으로 70일의 유예기간을 두었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국가의 중요사업이 이런 부대조건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례를 우리는 이미 새만금에서 배웠다.
 
이미 정부 주요사업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느닷없이 환경조사라는 이름으로 1년씩 공사중단을 하면 정부나 업체나 모두 큰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주 해군기지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정부에서 시작한 사업을 다른 정권이 한다고 친노세력이 반대한다는 것은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억지를 부려 통과시킨 예산안을 보면 가장 관심을 쏟아야할 극빈층에 대한 배려가 전무하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는 경쟁적으로 복지를 약속하며 사회 양극화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첫째 목표인양 떠들어댔다. 그렇다면 사회 최저변층에 자리 잡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해서는 우선적인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숫자는 무려 140만 명이나 된다. 국가유공자와 탈북자를 포함하여 156만이 의료급여 혜택을 입는 사람들인데 이들에 대한 예산 4919억원중 2224억을 삭감하고 2695억만 배정했다. 이렇게 되면 의료급여 환자에 대한 병원 측의 진료는 부실해 질 가능성이 많다. 병의원들도 운영을 위한 최저경비가 제 때 공급되지 못하면 문을 닫는 수가 생긴다.

정부에서 지급해야 할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들에 대한 진료비용을 외상으로 6개월씩 미룬다면 진료서비스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이 문제는 언젠가 소설가 김홍신이 국회의원을 할 때 보사위에서 활동하며 실태를 조사 발표한 일이 있다. 오래전 일이지만 당시 기초수급 환자들이 병의원에서 냉대를 받고 제대로 된 약 처방을 받지 못하여 생돈을 빌려 치료에 임한 사실이 알려져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번 예산안에서는 극빈층 예산을 삭감하고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 극빈층 예산을 빼돌려 국회의원 몫으로 무려 5574억을 끼워 넣었다. 원래 예산안 심의에 들어갈 때 여야는 사회 간접자본 사업예산은 삭감하고 복지예산은 늘린다고 합의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말짱 거짓말이다.

의원용 예산을 3679억 늘린 것이다. 그것도 여야 지도부 인사들이 앞장섰다.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장 건립비 615억과 관광 도로 산업 등의 추가 예산 60억으로 가장 많은 675억을 따냈다. 원내대표 이한구 역시 대구순환고속도로 등 234억. 민주당 원내대표 박기춘은 남양주 고용지원센터 등 141억, 민주당 국토위간사인 이윤석은 신안과 무안 일대의 국토건설 사업예산 646억을 확보했다.
 
그 외에도 예결위원장 장윤석은 120억, 새누리당 사무총장 서병수는 65억, 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박지원은 58억을 지역구를 위해서 확보했으니 이런 예산이 모두 복지예산에서 빼낸 것이 아니라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번 예산안에서는 국가 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안보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국정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었으니 나라 지키는 일보다 지역구 일이 더 급하단 말인가. 그것만이 아니다.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1조9000억을 유류감면비 등에 지원하도록 했으며 덩달아 버스업체도 2900억의 지원을 받도록 했으니 택시와 버스는 노다지를 만난 셈이다.
 
노선과 금액이 확정되어 있지 않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한다는 발상은 대선후보들의 공약으로 나온 선거용인데 이번에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법까지 마련되었으니 특혜 중의 특혜가 아니고 무엇인가.

택시가 도시교통으로 한 몫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시내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성은 없다. 따라서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켜 국민의 혈세로 지원한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뉴욕이나 도쿄 같은 세계 최대의 도시에서도 서울처럼 엄청나게 많은 택시가 생 기름때면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서울 택시는 너무 많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지자체에서 지나치게 많은 택시허가를 내준 잘못이 국가재정까지 좀먹게 되었다. 택시 대중교통법은 마땅히 이명박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여 다시 한 번 거를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의 멋대로 국민의 혈세가 농단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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