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사 세우고 진술조력인 양성…피해자 적극 구제에 정부 앞장

아동,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진술조력인 제도가 올해 처음 생긴다. 피해자 연령에 관계없이 국선변호사를 선임해주고 가족 의료비도 지원한다. 성폭력 상담사 양성에 전문성을 기하고 예방교육 의무기관을 확대한다.

광주광역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인형극을 이용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인형극을 이용한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박경미(25) 씨는 올해부터 바뀐 정부의 성폭력 관련 정책에 안도감을 느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른바 ‘성폭행 우범지역’으로 꼽히던 곳에 살았던 이씨는 성폭력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박씨와 같은 고민을 가진 여성을 위해 올해부터 성범죄자 신상공개 사이트 ‘성범죄자알림e(www.sexoffender.go.kr)’가 바뀐다. 불확실한 주소정보 제공으로 문제가 되던 부분을 개선해 사진과 성명·나이·신체정보·주소에 도로명·건물번호까지 조회가 가능하다. 범죄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2008년까지 소급적용하며 죄명과 횟수, 전자 발찌 착용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안에 휴대전화를 통한 성범죄자 신상정보 모바일 서비스도 구축할 계획이다. 박씨는 “성범죄자 조회가 좀 더 구체화 한 것 같아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질 듯하다”고 말했다.

피해자·가족 의료비 지원 확대
 
성폭력 사건의 최우선 과제는 피해자의 신속한 정신적·육체적 상처 회복이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는 연간 500만원 이상의 의료비가 들 경우 지자체 심의를 거쳐야 했다. 올해부터는 이런 심의 절차를 모두 폐지한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10월 25일부터 의료비 심의제도를 폐지하고 피해자의 모든 가족구성원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지금까지 성폭력 피해자 가족 의료비를 19세 미만 피해자의 부모 등 보호자에게만 지원했다. 올해부터는 성인 피해자 가족과 미성년 피해자의 형제·자매까지 지원대상 범위에 포함했다.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임종필 사무관은 “성폭력 피해 가족을 전방위적으로 돕기 위한 목적에서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며 “올해 책정한 예산은 1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5억원이 늘었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사·진술조력인 제도 도입
올 7월부터는 피해 사실 진술에 취약한 어린이·장애인을 위한 진술조력인도 양성한다. 그동안 어린이와 장애인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진술조력인은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피해자의 원활한 진술을 돕는다. 조사 과정과 공판 절차에 참여해 형사사법기관을 대상으로 피해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일을 수행한다.

법무부 박지영 여성아동정책팀장은 “진술조력인은 6개월간의 양성기간을 거쳐 빠르면 올해 말부터 지원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문성을 갖춘 진술조력인이 향후 성폭력 수사과정과 재판에서 활약하게 되면 실체적 진실 발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가가 무료로 지원하는 국선변호사 제도는 모든 성폭력 피해자로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2012년 3월 시행된 국선변호사제도는 그동안 19세 미만 아동·청소년 피해자에 한해서만 지원했다. 국선변호사는 변호인이 없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국가가 변호사를 선정해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규정 또한 전면 폐지됨에 따라 올 6월부터 모든 성폭력 피해자는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말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피해자 국선변호사 업무 매뉴얼’을 제작해 정형화한 매뉴얼을 통한 성폭력 피해자 보호·지원에 나섰다. 박 팀장은 “국선변호사 제도로 2012년 2,680명의 피해자를 도울 수 있었다”며 “국민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선변호사 지원으로 성폭력 피해자 구제와 공정사회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손도장을 찍으며 성폭력 추방을 다짐했다.
2011년 11월 ‘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핸드프린팅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이 손도장을 찍으며 성폭력 추방을 다짐했다.

처벌은 강화, 교육은 전방위로
 
어린이 성범죄자 처벌은 더욱 강화된다.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강간 및 강제추행 범죄의 법정 형량이 ‘5년 이상 유기징역’에서 ‘무기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대폭 높아진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는 전면 폐지된다.

성폭력 예방교육 의무기관도 확대했다. 기존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초·중·고교에서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단체까지 대상 범위를 크게 넓혔다. 범죄에 취약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체험형 성범죄 예방교육을 시행한다.

전문 성폭력 상담사 양성을 위해 ‘상담원 교육훈련시설’은 신고제로 바뀐다.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해온 성폭력 상담원 교육훈련시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는 6월 19일부터 성폭력 상담원 교육시설은 반드시 관할 시·군·구청장에 신고해야 한다. 상담원이 되려면 신고된 교육훈련시설에서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성폭력 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

임종필 사무관은 “성폭력 피해자와 1차적으로 소통하는 상담원은 그 누구보다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며 “상담 업무의 전문성을 위해 국가가 교육,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으로 피해 여성을 돕고자 하는 취지”라고 새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글·사진: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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