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TV 800만 가구 아직도 아날로그 화질

디지털 방송시대 아직은 아니다.. ‘ 

유료방송 가구 대부분이 디지털 전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케이블 가입자들은 “케이블TV 전체를 디지털 전환시키기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의 주장과달리 아직 디지털 방송이 전면적으로 실시 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방송이 첫 전파를 탄지 56년 만에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이 전면 중단됐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4시부로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지상파 방송이 전면 시행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 1734만 가구의 99.7% 이상이 디지털TV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논란이 많았던 TV 화면의 절반 이상을 덮는 ‘디지털 전환 촉구’ 자막방송 등을 최대한 동원한 결과였다. 방통위는 아직 디지털 방송 수신기기를 준비하지 못한 가구에 대해서도 올해 3월까지 정부 지원을 계속하기로 했다.

디지털 전환 시점에서 디지털 수신기기(컨버터 또는 디지털TV)를 확보하지 못해 TV 시청이 불가능해진 가구는 약 5만여 가구로 추산된다. 정부는 우체국이나 주민센터를 통해 디지털 컨버터를 소지하지 못한 이들 가구에 대해 2만원에 컨버터를 대여해주기로 했으며, 저소득층의 경우 무상으로 대여해줄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4시, 서울 남산 지상파 송신소 모니터실 TV가 모두 꺼졌다. 이는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 송출 완전 중단과 100% 디지털 지상파 방송 시대를 의미한다.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코리아) 측은 디지털 전환의 장점으로 높은 수신율, 고화질, 고음질 방송과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해설방송을 꼽았다. 또한 디지털 방송은 기존의 단방향의 정보 전달을 넘어 실시간 시청자 참여, TV 홈쇼핑 등 쌍방향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을 하지 못한 5만여 가구를 제외한 나머지 1729만여 가구가 온전히 이런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실제 방송 시청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료방송 가구들은 애초에 디지털 전환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아니 무관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2010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당시까지 디지털TV를 이용해 직접 방송을 시청하는 가구의 비율은 3.3%였다. 이미 디지털 전환이 완료된 가구다. 또한 아날로그TV로 직접 방송을 시청하는 가구는 5.6%였다. 이 5.6%가 이번 디지털 전환의 실질적 대상자였다.

나머지 90% 이상은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시청하거나 아예 TV를 시청하지 않는 층이다. DTV코리아 측은 “유료방송은 디지털 전환이 아직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해도 무방하다”라며 “디지털 방송을 원한다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유료방송에 가입한 가구의 상당수는 디지털 전환의 혜택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전환에서 배제됐을까. 케이블TV방송협회는 지난해 9월 말까지 약 1490만7000명이 케이블TV를 통해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에 따르면 이들 중 디지털 케이블 상품을 이용하는 사람은 3분의 1 수준인 약 493만5000명이며, 나머지 1000만여명은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아날로그 상품의 경우 케이블방송 사업자들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로 바꿔서 시청자들에게 전송하는 것으로, DTV코리아 측이 밝힌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볼 수 없다.

양휘부 케이블TV방송협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은 디지털 방송을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시청해야 하기 때문에 고화질 방송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화면비율 왜곡현상 등 불편함을 겪어야 한다”며 “디지털 방송 소외계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디지털 사각지대에 대한 방통위의 대책은 ‘시장경쟁’이다. 지난해 10월 19일 방통위가 발표한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활성화 정책방향’의 골자는 유료방송 사업자 간의 경쟁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김용수 방통위 방송진흥기획관은 “유료방송의 디지털 전환은 시장 자율로 추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과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은 시장경쟁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 전체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 가입자들을 디지털 케이블 상품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지역의 한 케이블 방송 사업자는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 상품은 별도의 약정 없이 월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반면 디지털 케이블 방송의 가격은 3년 약정에 월 2만9000원이다.

방통위는 “시장 자율로 추진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힌바 있다.

올해 10월까지 실시될 채널 재배치도 디지털 전환 이후의 예상되는 문제점 중 하나다. 방통위는 올해 10월까지 전국을 3개 구역(전라·경상권, 수도권, 강원·충청권)으로 나눠 채널 재배치를 실시할 계획이다.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기 이전까지 지상파 방송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방송으로 동시에 송출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면서 비게 된 채널(주파수)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7일 방통위는 전체 회의에서 현재 470~860MHz 대역에 산재되어 있었던 채널을 아날로그 방송 종료 이후 470~698MHz 대역으로 재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방통위는 약 186만 가구에서 일부 또는 모든 지상파 채널이 일시적으로 방송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 가구가 다시 지상파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채널을 재설정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시범지역에서는 이미 채널 재배치로 인해 혼란이 발생한 사례가 있다. 2011년 11월 시범지역이었던 전남 강진은 채널 재배치가 이뤄졌다. 종전에는 2번부터 69번까지 사용되던 채널이 14번에서 51번으로 변경됐다. 당시 강진에서는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하는 가구의 90%가량인 약 1200 가구가 3일가량 TV를 보지 못하는 블랙아웃 현상을 겪었다.

당시 방통위는 해명자료에서 “11개 팀을 구성해 전체를 직접 방문하여 채널 재배치 지원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역 가구의 상당수는 목포·광주 등 타 지역의 전파를 수신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 10월 채널 재배치로 인해 혼란이 예상되는 가구수는 방통위 추정치에 의거하더라도 186만 가구에 이른다. 또한 전국적인 채널 재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전남 강진의 사례처럼 타 지역의 전파를 수신해 방송을 시청하는 일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방통위는 ‘강진 블랙아웃’ 사태가 언론에 보도되자 해명에 급급할 뿐 이후 채널 재배치에서 발생할 문제점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진 않았다. 방통위 측은 “강진지역은 총 1만8400여 가구로, 이 중 채널 재배치와 관련이 있는 것은 6.9%인 1272 가구”라며 피해규모가 크지 않았다는 해명만 냈다. 1년 뒤 전체 가구의 99.7%가 지상파 디지털TV를 시청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의 사례보다도 높은 수치라며 마치 99.7%가 모두 디지털 전환을 이룬 것처럼 발표한 것과 대비되는 장면이다.

실례로 서울 영등포동에 사는 최순희(50)씨는 지난해 큰맘 먹고 32인치 디지털TV를 장만했다. 지난해 마지막 날 전면 시작된 고화질 디지털방송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최씨가 즐겨보는 케이블 드라마 채널은 여전히 화질이 흐릿하다.

최씨는 케이블방송사에 화질에 대한 불만을 문의했다. 답변이 황당했다. 이번 디지털 전환은 지상파방송을 안테나로 수신해 보는 시청자들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는 지금보다 3배쯤 비싼 요금을 지불해야 디지털방송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와 케이블 방송사에는 이와 비슷한 항의성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는 현재 전국 1000만 명(800만 가구)에 이른다. 방통위는 전체 1734만 시청가구의 99.7%가 디지털방송을 보게 됐다고 발표했지만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2가구 중 1가구는 사실상 디지털 사각지대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하대 김대호(언론정보학) 교수는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차기 정부는 이들에 대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업계·학계에서는 당선인의 공약대로 유료방송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남대 주정민(신문방송학) 교수는 “방통위가 지상파에만 허용한 8VSB 전송방식을 케이블에도 적용하면 당장 500만 가구 이상이 추가 비용 없이 케이블 채널을 고화질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식이 도입될 경우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라도 디지털 TV만 있으면 17-1, 24-1 같은 번호 형태로 모든 채널을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지상파방송 디지털 전환을 위해 2008년부터 총 2248억원을 투입했다. 이중 약 1000억원은 저소득층 디지털TV 구매와 디지털 수신 환경개선 등에 사용됐다. 혜택을 입은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2%인 40만 가구. 똑같은 저소득층이라 할지라도 유료방송을 보는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방통위는 올 6월께 케이블방송사 2~3곳을 선정해 아날로그 가입자를 모두 디지털케이블로 전환시키는 시범사업을 계획 중이다. 예산은 3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지상파의 경우 시범사업에만 122억원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방송사들과 정부가 디지털 전환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모두 2조 2천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렇게 많은 예산을 쓰고도 시청자에게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정부도, 방송 사업자도, 분명히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전환은 끝이 아니라 이제야 시작이다. 

다채널 서비스와 내실 있는 데이터 방송 서비스, 그리고 나아가 차세대 하이브리드 서비스까지, 정부와 방송사, 관련 사업자들 모두가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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