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만에 초단기 낙마…청문회제도 도입후 청문前 탈락 첫 사례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29일 헌정 이래 역대 정권에서 지명한 초대 총리 중 낙마한 두 번째 사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초대 총리가 낙마한 첫 사례는 제헌국회의 초대 총리로 내정된 이윤영 씨였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7월22일 이씨를 국무총리 서리에 지명했지만 9일 후인 31일 실시된 국회의 임명동의안 투표에서 30.6%의 찬성에 그쳐 부결됐다.

이씨는 이승만정권에서 이후에도 3차례 국무총리 서리에 임명됐지만 인준이 모두 부결되는 불운을 겪었다.

김 지명자는 총리로 지명된 후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직에서 물러난 첫 지명자, 그것도 지명후 불과 5일 만에 물러난 최단기 지명자라는 오명도 쓰게 됐다.

제헌국회 이래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후보자는 모두 6명이다. 제헌국회의 이윤영씨 외에 이승만 전 대통령 시절의 백낙준(1950년), 이갑성(1952년), 윤보선 전 대통령 때 김도연(1960년) 씨가 국회 동의 절차에서 탈락했다.

2000년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지 2년 뒤 두 명의 총리 서리가 연달아 낙마하는 일이 발생했다.

2002년 7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 후보로 장상 당시 이화여대 총장을 총리 서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장남의 이중국적 문제 등이 불거졌고, 같은달 말 국회에서 인준안이 부결됐다.

한 달 뒤인 8월 김 전 대통령은 장대환 당시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총리 서리로 임명했지만 장 서리 역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의혹에 휘말리면서 국회 임명동의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통령의 총리 지명 이후 국회 임명동의 표결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중도하차한 후보자는 김 지명자를 포함해 모두 3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7년 이한기 씨를 총리서리로 지명했지만 6ㆍ29 선언 이후 지병을 이유로 사퇴하는 바람에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 인준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후보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총리로 지명했지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등 야당의 거센 공격을 받으며 인사청문회 4일 후 사퇴를 선언했다.

김 지명자는 국회에 임명동의안이 제출되기도 전에 부동산 투기,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 등이 제기됨에 따라 후보자 지명 5일 만에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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