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 측면을 중심으로 -

글로벌 금융위기의 회복시점에서 한국경제는 OECD 국가중 가장 빠른 V자형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리만사태 이후 지난 1년여 동안 정부는 확대 재정 및 금융정책을 취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금융부담을 크게 완화시켰고 수입의 급속한 감소로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다. 반면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쉽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고용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우리 경제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려면 정부의 이와 같은 정책적 노력이 민간의 자생적 성장 동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우리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 세계적으로 취해진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들이 민간의 자생력으로 원활히 연결되지 못하면 세계경제는 다시 한번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이번 글로벌 위기 과정에서 한국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를 톡톡히 경험했다. 국내경제가 상대적으로 건실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금융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금융기관들이 부실해지면서 디레버리징 과정에서 외국자금이 이탈하였고 국내금융기관의 외화차입과 만기연장도 어려워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또한 국내 금융기관들은 그동안 한정된 국내시장에서 과당경쟁을 하며 시장성 수신 비중을 높이고 예대율을 상승시켰는데, 이로 인해 유동성리스크에 대한 의구심이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위기시에는 비록 건전성이 아무리 괜찮다 하더라도 유동성리스크에 노출되면 해당 금융기관은 시장의 불신을 받게 된다.

이번 위기로부터 얻은 교훈 중 하나는 국내금융의 구조적 취약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아무리 국내경제의 펀더멘털이 괜찮다고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다시 국내금융시장에서 외화 및 원화 유동성 위기가 재발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자본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금융시장에 자유로이 드나드는 외국인 자금을 정부가 직접 콘트롤할 방법이 없다. 토빈세와 같이 단기유동성 투자자금에 대해 세금을 부과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한 국가들이 대부분 부작용을 경험하고 동 조치를 철회하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시장이 완전 개방되어 있고 원화의 국제화도 단기간에 용이하지 않다면 위기에 대비하여 국가전체의 외환유동성에 대한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금융기관의 외화차입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조치와 더불어 정부는 적정수준의 외화를 보유하고 양자간 또는 다자간 통화스왑이 가능하도록 사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회사들은 대형화, 효율화 등을 위한 구조조정을 추진하였지만 여전히 금융회사의 수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예대율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과당경쟁을 추구한 결과 수익성 저하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상위에 소수의 대형사가 과점적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지역별, 상품별, 고객별로 특화된 수많은 중소 전문금융기관들이 하위에 포진하여 다양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구조개편과 함께 국내금융기관들은 포화상태인 국내금융시장에 안주하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글로벌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의 발전경로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지역에서 소규모 금융기관으로 활동하다가 경쟁력을 확보하여 해당지역의 선두주자가 되고 결국 국내의 대표기관으로 발돋음 한 뒤 인접지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세계적인 금융기관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생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대부분 국내외 시장에서 M&A를 통해 업무영역을 넓히고 현지화에 성공하였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도 더 이상 한정된 국내시장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물부문과 연계하여 아시아권 등 인접지역으로 진출하는 글로벌화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많은 외국 금융기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국내금융기관에게는 해외진출의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 지난 1년 반 동안 추진된 정부의 다양한 재정, 금융정책들은 경기가 호전되면서 서서히 원상 회복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이 때 정책 전환의 타이밍을 놓치면 더블딥 또는 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다만 이와 같은 정책은 향후 예상되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의 흐름 및 주요국의 정책 추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두바이 사태와 그리스 경제의 국가신용등급하락에서도 보듯이 세계경제는 아직도 불안정한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가계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끝나지 않았으며 정부정책의 효과가 민간의 성장동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지도 미지수이다.

반면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를 적게 받은 개도국의 경우 해외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면서 자산버블이 유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경우 과도하게 유입된 자금이 반대요인에 의해 급격히 유출되면 외화유동성 위기가 재발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국내외 상황하에서 향후 1년 동안 한국경제의 소프트랜딩 여부는 출구전략을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세계경제에 아직 불안정성이 내재된 상황에서 향후 출구전략은 거시정책보다도 미시적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부문의 자생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금리인상 등 거시정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도 미시적 정책을 통해 지원이 필요한 사항과 버블이 우려되는 부문 등을 선별적으로 타겟팅하여 정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시장의 활력을 제고하면서 안정성을 유지하는데 바람직하다.

향후 이와 관련하여 중소기업 금융지원 축소와 가계부채 조정 문제 등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금년 한해에도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시장의 불안요인이 수시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정부는 다소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상황 인식과 선제적 조치를 통해 시장불안정성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김 태 준-          
[전]한국경제학회 이사
[전]동덕여자대학교 부총장
[현]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현]한국금융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