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용어 자체가 사라진 것은 정책 추진의 큰 동력을 잃은 것이다.” “단어만 빠졌을 뿐, 140개 세부 국정과제에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이) 다 포함 돼 있다.”

25일 ‘박근혜 정부’가 공식 출범했지만 경제민주화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세부 국정과제에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실종되면서 박 대통령의 실천의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국정 과제 자료집에 ‘경제민주화’란 용어 대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를 넣은 것은 경제민주화 가치를 훼손하고 의미를 축소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다른 쪽에선 “표현만 달라졌을 뿐,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경제부흥을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며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공정한 시장질서가 확립돼야만 국민 모두가 희망을 갖고 땀 흘려 일할 수 있다”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좌절하게 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재차 언급한 것은 경제민주화 실현 의지가 퇴색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별도의 국정목표가 아닌 경제부흥과 창조경제를 이루는 수단 차원의 언급이어서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을 말끔히 씻어 내기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대선 출마 선언 당시 국민행복을 위한 3대 과제로
▲경제민주화
▲일자리창출
▲한국형 복지확립을 제시한 것과 달리
경제민주화가 성장의 하위개념으로 위상이 떨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취임사에서 압축 고도 성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한강의 기적’이 네 차례나 등장한 것을 두고 시민단체들은 “재벌과 정·관계가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 퇴색’, ‘성장론 중심으로 정책 선회’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앞으로 (경제민주화 정책 입법 저지를 위한) 재벌의 조직적 로비와 관료들의 정보 왜곡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가 실효성 있는 경제민주화 입법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할 순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한 만큼, 박 대통령은 우선 불공정 거래 관행 근절 등 경제적 강자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단가조정 협의권 부여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적합업종제도 실효성 제고 등의 실천을 약속한 바 있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경제구조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기 보다 글로벌 경제위기 국면에 대응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며 “법치에 근거,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를 규제하고 가계부채 및 ‘하우스푸어’ 등 민생경제 문제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위 연구위원은 “중소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단기적으로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무역보험 역할을 확대하고 환율위험을 피하기 위한 공적 역할 강화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금산분리 강화 등 재벌이 직접 영향권에 있는 부분은 후순위로 밀렸거나 여파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순환출자에 대한 기존 구조를 그대로 인정했고, 금융계열사의 의결권을 5%로 제한하기로 했지만 삼성이나 현대 등 재벌 체제는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며 “이는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 후퇴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재계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없어 안도하면서 새 정부에 불확실성 배제와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주문했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투자와 고용 등)장·단기 계획을 짜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이 중요하다”며 “최근 경제민주화 등의 이슈는 학계에서도 해석이 엇갈려 개념이 정립되기 전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방향으로 흘러 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기업이 투자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길 바란다”며 “새 정부는 복지·국방·성장 등을 주요 정책으로 삼고 있는데,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규제 적용에 유연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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