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 명판결의 대명사는 ‘솔로몬의 재판’이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어린 아기 하나를 놓고 여인 두 사람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한다. 요즘 같으면 DNA검사를 하면 간단히 결판이 나겠지만 솔로몬 당시에는 그런 것이 없을 때다. 늦둥이로 둔 아들과의 닮은 곳을 찾다 못해 “발가락이 닮았다”는 대 발견을 한 소설 속의 아버지처럼 두 여인과의 닮은 곳을 찾았다면 솔로몬의 재판은 지금까지 전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완강하게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고 말하는 두 여인에게 솔로몬왕은 한 가지 제의를 한다. “너희들이 서로 엄마라고 주장하니 짐으로서는 저 아이를 둘로 나눠 한 쪽씩을 나눠주려고 한다.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 이에 한 여인이 나서 “그렇게 해주십시오.”하고 수락한다. 그러나 다른 한 여인은 울면서 “아이를 둘로 나누다니요? 그렇게 되면 아이가 죽지 않습니까. 차라리 저 여인에게 아이를 줘서 아기가 살수 있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절히 빌었다.

솔로몬은 “저 여인이 아기의 진짜 엄마다. 아기를 살리려는 어머니의 진정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판결하여 아기의 목숨도 살리고 진짜 엄마도 찾아준다. 이런 판결은 섹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도 나온다. 가난한 상인 바나시오는 사랑하는 포셔와 결혼하기 위해서 친구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마침 그의 재산은 멀리 항해중인 배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3000더컷을 빌린다.

마침내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왔지만 안토니오의 배는 암초에 걸려 침몰했다는 풍문이 떠돌고 샤일록의 성화는 불길 같아 결국 안토니오와 샤일록은 재판관을 찾아간다. 이때 남편 바나시오가 빌린 돈 때문에 살 1파운드를 떼 내어 죽게 된 안토니오를 구하기 위해서 포셔는 재판관으로 등장한다. 물론 가짜다. 재판관은 샤일록에게 살 1파운드를 떼 내되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한다.

차용증서에 쓰여 있는 그대로만 해야 된다는 판결이다. 궁지에 몰린 샤일록은 결국 돈 받기를 포기하고 살신성인할 뻔했던 안토니오와 바나시오는 감격의 눈물로 해피엔딩 한다. 조선왕조시대의 유명한 황희 정승이 노복 두 사람의 주장이 서로 엇갈려 대감에게 자기의 말이 옳다고 각각 주장한다. 황희는 갑의 말을 듣고 “음, 들어보니 네 말이 맞다”고 응대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을이 나서서 그렇지 않다고 장황하게 하소연한다.

황희는 “그래 네 말을 들어보니 그렇구나.” 하고 수긍해준다. 옆에 있던 부인이 “아니 영감,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옳다고 하면 진짜 누구 말이 맞는 것입니까?”하고 타박을 주자 “임자의 말도 맞소.”라고 대답하여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끝마쳤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이처럼 판단을 잘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재판관들이 공들여 공부하고 익힌 법조문과 현실을 조화해가며 사회정의에 맞는 판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이다.

필자는 젊어서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법정에 서야했다. 파란 수의를 걸치고 굴비처럼 엮여서 법정에 들어서면 법대 위의 판사가 그렇게 높아 보일 수 없었다. 당시의 검사는 어차피 독재자의 앞잡이지만 판사만은 올바른 판단으로 무죄를 선고해주기를 바랐고 간절한 마음으로 탄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무죄를 선고한 판사는 없다. 나는 집행유예조차도 받지 못하고 모두 실형을 선고받고 오랜 세월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야 했다.

긴급조치 9호위반이라고 나를 판결한 재판관은 징역 5년의 중형을 선고했는데 김대중정권은 그를 헌법재판관으로 발탁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요즈음 강기갑 무죄, PD수첩 무죄, 시국선언 교사 무죄 등 이해하기 힘든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판사도 고민을 거듭했겠지만 국회 사무총장이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은 공무수행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이런 사건에 무죄를 판결하는 판사의 상당수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고 해서 해체의 목소리가 높다. 대법원장도 해체를 바란다고 한다. 단순한 학술연구단체로 변명하지만 진보성향의 판사들이 모인 것은 틀림없다. 일본에서도 과거에 청년법률가협회가 말썽을 빚었으나 인사상 불이익을 줘 자연해체를 유도했다. 대법원장이 진정 해체를 원한다면 그의 인사권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판사의 독립성이다. 삼권분립과 관여 받지 않는 독립권한을 내세우지만 독재정권시대에는 판결문을 공소장 그대로 내밀었던 부끄러운 전력도 있다. 민주화시대라고 “내 맘대로”라는 사고방식은 합법과 합리를 추구해야 할 판사의 취할 태도가 아니다. 독립적인 재판을 하되 국가와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와 정도에 입각한 최선의 합리성을 지향하지 않으면 자칫 우리법연구회가 편협하고 편향적인 이념조직으로 전락할 것임을 경고한다.

전대열 /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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