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공백 장기화

#1. 새 정부에서 신설되는 해양수산부는 한동안 ‘장관 없는 부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새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아직 일정조차 잡히지 않아서다.

지금은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이 해양 관련 업무를 보고 있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권 장관은 자동으로 장관직을 잃게 된다.

권 장관은 “그나마 국토교통부는 3월 6일에 인사청문회가 잡혀 있어서 상황이 좀 나은데 해양부나 미래창조과학부같이 기약이 없는 곳은 이런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2. 업무의 상당 부분을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겨야 할 방송통신위원회는 직원들이 사실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방통위는 정부조직법과 관련한 정치권 공방으로 조직의 미래를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태다.

현 이계철 위원장은 이미 사의를 밝혔다.

방통위의 한 공무원은 “간부 인선은커녕 후임 위원장조차 누가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라며 “작년 말부터 거의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데다 정부과천청사로 이전하는 문제도 있어 올 상반기까진 정상적 업무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선 정부 부처들이 요즘 유례없는 국정 공백기를 맞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으로 내각 구성이 지연되면서 조직 수장과 함께 정책 현안을 실무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간부급 인선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결국 새 정부의 핵심 공약 추진은 물론이고 당면 현안에 대응하는 데도 허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업무량은 두 배, 업무 효율은 바닥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로 조직이 분리되는 교육과학기술부는 장관이 사실상 3명이다.
이주호 현 장관과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또 과학기술 부문을 지휘할 미래창조과학부 김종훈 장관 후보자가 있다.

지금 교과부 공무원은 맡은 일에 따라 2, 3명의 장관에게 동시에 업무보고를 한다.

업무량은 두 배로 늘었지만 행정 효율은 바닥이다.
현 장관은 새로 정책을 추진할 상황이 못 되고, 새 장관은 정식 취임을 한 것이 아니라서 업무 지시를 내릴 수 없는 어정쩡한 상황이다. 이런 현상은 교과부뿐 아니라 새 장관이 지명된 모든 부처가 마찬가지다.

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서울에 있는 장관 후보자 사무실과 세종시를 계속 왔다 갔다 하는 통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다”며 “의전을 신경 써야 하는 비서실, 공보실은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장관 후보자들은 당장 인사청문회 준비 때문에 업무보고나 간부 인선을 챙길 틈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정책 현안에 대응하는 속도도 떨어지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전기요금제 개선,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에너지 관련 정책이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이 3개월마다 열겠다고 했던 무역진흥확대회의는 아직 첫 회의 일정도 잡지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현 정부 공약을 반영한 ‘새해 경제정책 방향’ 업무보고가 자칫 4월까지 미뤄질까 우려하고 있다. 재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은 새 정부 출범을 고려해 정책 부문을 거의 백지 상태로 비워 놨다.

각 부처는 장관 취임이 늦어지면 그만큼 하부 조직의 정비가 지연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재정부 당국자는 “이전 사례를 보면 장관 취임이 지난 정부보다 열흘 가까이 늦어지는 점을 감안했을 때 완전한 진용은 4월 초는 돼야 갖춰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핵심 공약들 상반기 추진 어려울 듯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직접 추진해야 하는 곳의 업무 공백도 심각하다.

‘경제민주화’ 정책의 선봉에 설 공정거래위원회는 김동수 위원장이 퇴임해 위원장 자리가 공석(空席)이 됐다.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공정위가 경제민주화의 ‘칼’이라고들 하지만 장수가 없는데 어떻게 칼을 휘두르란 말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국세청도 후임 청장 인선이 미뤄지면서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총괄하는 공정과세추진기획단은 부이사관급 공무원 2명이 배치된 것을 제외하면 조직 구성에 별다른 진전이 없다.

가계부채 해결 공약을 진두지휘할 금융위원회 역시 퇴임한 김석동 위원장의 후임이 아직 결정되지 않아 공약의 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산하 공공기관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현 사장의 임기가 4월 초 만료되는 한국서부발전은 늦어도 이달 말에는 사장 모집 공고를 내야 하지만 주무 부처 승인을 받지 못해 아직 공모 계획도 못 세웠다.

서부발전 관계자는 “아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취임이 안 돼 임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놓고 상황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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