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꼬이면서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1차(14일), 2차(18일) 처리 시한을 넘긴 여야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으나 최대 쟁점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진흥정책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 3차 시도 역시 무산됐다. 2월 임시국회 회기는 다음 달 5일까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22일 공식 협상을 중단한 뒤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 물밑 접촉을 벌여왔으나 여전히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치킨게임’(한쪽이 피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게임)만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장기전’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를 굉장히 많이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의 ‘데드라인’(협상 마감시한)을 묻는 질문에도 “이미 지났다.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내 핵심 관계자는 “3월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 역시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양보할 수 있는 것은 다 양보했다”며 “새누리당의 몽니 때문에 정부조직법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미래창조과학부뿐만 아니라 해양수산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개편 및 신설되는 부처의 경우 장관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고 조직 구성도 미뤄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이나 방송진흥 기능이 어느 부처 소속으로 되는지에 대해 일반 국민은 관심이 없다. 민생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정치권 모두에 손해가 되겠지만 특히 야당의 발목잡기로 비치면서 민주당에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네 탓’ 공방에만 열을 올렸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지금 국회가 ‘식물 국회’ 아니냐. 혹은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좀비 국회’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민주당이 하는 행태를 국민이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만 남았다. 내각 없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불안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도 방송정책의 미래부 이관에 대해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다. 이종걸 최민희 의원 등 일부 강경파는 의총에서 “협상은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한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는 국회 본회의에서도 날선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5분 자유발언’에서 “박 대통령이 구상하는 미래부의 정보통신기술(ICT)은 절름발이”라며 “지상파는 방통위, 케이블은 미래부에서 담당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함진규 의원은 “국회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과 정부를 유령정부로 만들면 안 된다”며 “국민이 선택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차질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야당이 협조해주는 게 관례이자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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