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 지연으로 '꽉 막힌' 국정을 풀기 위해 고심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첫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정치, 경제 현안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 나흘째인 28일 공식일정을 일체 잡지않은 채 청와대에서 정국 구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취임식 이후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해왔다"며 "오늘은 특별한 일정 없이 그간 구상해온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가다듬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참모들로부터 분야별 현안 보고를 받으며, 내달 1일 열리는 제94주년 '3·1절' 기념사 준비, 그리고 마무리되지 않은 청와대 비서관 등의 인선 작업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여야 간 이견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 수시로 국회 동향을 점검하는 한편, 전날부터 시작된 장관 내정자들의 국회 인사청문회 상황도 주의 깊게 지켜봤다는 후문이다.

앞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마련해 새누리당이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내각은 국무총리, 그리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17개 부처 장관 등 총 18명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날까지 임명 절차를 모두 마친 인사는 정홍원 총리 단 1명뿐이다.

때문에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에선 이명박 정부가 임명한 장·차관들이 관련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다.

더구나 새 정부에서 신설 또는 재도입되는 미래창조과학부(과학부)와 해양수산부의 경우 국회에 장관 내정자의 인사 청문을 요청할 근거가 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인사 청문 요청안이 국회에 접수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인사 청문 요청안이 제출된 새 정부 인사들 중에서도 현오석 경제부총리,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에 대해선 청문 일정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

야당은 현 내정자에 대해선 인사 청문 요청안이 '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제출된 점을 들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이후 '부총리 겸 장관 후보자'임을 명시해 다시 청문 요청안을 제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김 내정자에 대해선 각종 의혹을 이유로 '자진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역시 정부조직법 개정 지연의 여파로 장관급 '3실장' 가운데 한 명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아직 '내정자'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등 국정공백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 총리는 이날 취임 인사차 강창희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야 지도부를 잇달아 예방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했다.

이에 앞서서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차관회의를 소집, 행정 공백이 없도록 국정 현안을 철저히 챙겨줄 것을 각 부처에 주문하기도 했다.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도 전날 국회를 찾아 여야 원내지도부 등에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협조를 당부하고 돌아갔다.

박 대통령이 전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통해 "정치라는 게 다 국민을 위한 것인데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정부조직법의 조속한 개정 필요성을 강조한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주변에선 대(對)국회 압박 차원에서 새 장관 내정자들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정부조직법 개정 전까지 임명을 보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경우 "박 대통령 스스로 국정공백의 장기화를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판단할 몫이지만, 장관 내정자들에 대한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됐는데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임명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야당이 앞서 얘기했던 '법이 개정되지도 않았는데 인사 청문은 왜 요청했냐'는 말을 또 다시 들을 수 있다"며 "현재로선 법 개정이 최대한 빨리 이뤄지도록 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마지막 쟁점은 인터넷TV(IPTV)와 종합유선방송국(SS), 일반 채널사업자(PP), 위성방송 등 보도 기능이 없는 방송매체에 대한 소관 부서를 현행 방송통신위에서 새 정부의 과학부로 이관하는 문제.

이와 관련, 민주당은 전날 IPTV의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은 현재와 같이 방통위에 두고, IPTV 사업 진흥 업무만 과학부에 이관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새누리당은 "의미 없다"며 법 개정안의 원안 처리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과학부로의 방통위 기능 이관 문제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정부조직법을 처리하지 않기로 일단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그러나 여권 일각에선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문제가 계속 지체될 경우 국정 마비로 인해 국회는 물론, 박 대통령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여야가 정치력을 잃어버린 현 상황에선 결국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며 "박 대통령이 오늘 일정을 비운 것도 그런 고민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이제 박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며 "여당 지도부는 협상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박 대통령이 결단해 (문제를) 풀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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