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 일주일만에 초비상이 걸렸다. 정부조직개편 법안이 여야의 첨예한 갈등으로 국회에서 표류 중인 가운데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전격 사퇴하면서 국정혼란이 표면화하고 있다. 임시국회 회기마감일인 5일까지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내각 출범 지연으로 국정공백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결연한 어조로 정부조직개편 등 국정운영의 진정성을 거듭 호소하면서 방송통신·ICT 정책의 융합을 골자로 하는 미래창조과학부 원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야당에게 촉구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야당에 대한 압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야와 청와대가 자신들만의 명분에 집착하다 정치 실종 사태를 불어오면서 국정공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朴대통령 “ICT·방통융합 없는 미래부는 빈껍데기” vs 민주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운영의 차질이 발생한 것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국회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의 협조를 다시 한번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안과 국민경제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7일이 되도록 정부조직법이 통과하지 못해 국정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했다.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정부 출범 일주일만에 이례적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 자체가 정국운영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보고 있다. 집권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인한 촛불시위로 어려움을 겪은 이명박 전 대통령도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나서야 대국민 담화를 했었다.

박 대통령은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장악 의도가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의도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이 자리에서 국민께 약속드릴 수 있다”고 일축했다. 또 ‘물러설 수 없다’는 표현을 쓰며 미래창조과학부 원안 고수 의지를 강조했다. 그는 “방송통신 융합 기반한 ICT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은 저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라면서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 만큼은 물러설수 없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것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어질 필요없다. 이 부분이 없는 것을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며 사태 수습을 위한 여야 영수회담을 거듭 제안했다.

여야는 지난 3일 심야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을 벌였지만 종합 유선방송(SO)의 인허가권과 법률제개정권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과(課) 1~2개의 업무를 놓고 정부 17개 부처 개편안이 송두리째 발목이 잡혀있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이같은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대(對) 야당 압박용 카드’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문희상 민주당 비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발표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오늘 대통령 담화 내용은 청와대가 국회를 무시하는 구태정치를 또 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의 담화는 오만과 독선의 일방통행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 대통령의 회동 요청에 대해서도 “정부조직법은 이미 협상이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국회에서 처리돼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 김종훈 미래부 장관 내정자 전격 사의

게다가 미래창조과학부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면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야당의 비협조를 비난하며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정부조직개편안의 혼란을 보면서 저의 꿈도 산산조각 났다”며 “대통령의 면담 제안조차 거부하는 야당을 보면서 조국에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접게 됐다”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내정자는 지난 3일 박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우리 정치 현실에 좌절을 느끼고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며 “정말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앞으로 우리가 새 시대를 열어가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데는 인적 자원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인재들이 들어와서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조국 위해 헌신하려는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은 김 내정자의 사의 표명을 야당에 대한 공세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김 내정자의 사의 표명을 CIA연루설과 재산증식 과정에서의 의혹에 따른 사퇴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김종훈 내정자의 자진사퇴 기자회견은 지켜보는 국민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정치적 헐리우드 액션’의 백미”라면서 “발목잡기 엄살을 넘어서 압박축구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의 자격미달을 야당 탓으로 돌리려는 헐리우드 액션에 혀가 내둘러질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 “5일까지 정부조직법 통과안되면 장기 국정공백 불가피”

정치권은 이같은 청와대와 야당의 ‘강대강(强對强)’식 정면충돌이 이어진다면 오는 5일 2월 국회 회기 마감일까지 정부조직법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가 ‘식물정부’로 전락하면서 정상적인 출범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전날 밤 협상에서 이견을 상당부분 좁혔음에도 불구하고 김종훈 내정자 사퇴와 박 대통령 담화로 상황이 더 악화된 것 같다”면서 “극적인 타협을 볼 수 있는 여지가 점점 더 좁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5일까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즉각 임시국회를 열어 법 통과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야당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라는 부담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조직법의 조속한 처리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여당의 의석수가 국회 과반수를 약간 초과하는 150여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가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면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3월 내내 정부공백이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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