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뿌리내린 화교(華僑)의 운명
130년 뿌리내린 화교(華僑)의 운명
  • 전대열 大記者
  • 승인 2013.03.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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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차이나타운이 없는 곳은 없다. 인도가 뒤를 바짝 쫓고 있지만 중국 인구를 따라 잡으려면 아직은 족탈불급이다. 현재의 추세로는 2050년 정도면 인도의 인구가 중국을 능가할 것이라는 통계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그건 두고 볼 일이다.

그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일찍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실용적 성품을 지닌 그들은 세계 어디를 가나 떼를 뭉쳐 산다. 대부분이 장사를 한다. 원래 뛰어난 상재(商才)로 태어난 덕분에 중국인 상가는 번창한다.
 
많은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이 생긴다. 검소하고 소박한 그들의 천품으로 백년이 가더라도 상가는 떼 국물이 그대로 남아 좀 지저분하다. 그것이 차이나타운의 특징이요 개성이다. 일부러 그런 정경만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으니 그것도 상재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중국인들이 들어온 지 벌써 130년이나 되었다. 조선조 말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조정에서는 청나라에 이를 평정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제 나라 군대를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고 외국군대를 불러들이는 허약한 몰골이 한심스러웠지만 나라가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 전조(前兆)였다. 1882년 7월이다.
 
이 때 청나라는 광동성 수군제독 오장경을 대장으로 한 3000명의 병력을 파견하는데 군부대 보급 지원을 하기 위해서 40여 명의 상인들이 따라왔다. 이듬해 군대는 중국으로 돌아갔으나 상인들은 남았다.
 
당시 조선 사람들은 장사에 눈을 뜨지 못했을 때였고 중국인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라 조선에서의 장사가 그들에게는 많은 이윤을 남기는 노다지였는지도 모른다. 이들이 조선 화교의 시조다. 그들의 후손이 5대를 내려오며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온다.

중국 산동성 출신이 대부분이다. 예전에는 청요리집이라고도 불렀지만 흔히 ‘중국집’이라고 하면 중국식 음식점을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을 많이 받아온 음식은 단연 자장면이다. 중국 본토에는 한국에서 팔고 있는 자장면은 없다. 산동성 사람들이 비슷한 면류를 가지고 만들어내지만 한국인들이 즐기는 자장면은 아니다.
 
아무튼 자장면의 시조를 자처하는 중국집이 지금 인천 차이나타운 한 복판에 자리 잡은 ‘공화춘(共和春)’이다. 이들 중국인들은 오랜 세월 대를 물려가며 한국에 살면서도 귀화하는 이들은 드물다. 그저 화교라는 이름으로 살아간다. 광복 이후 6.25전쟁을 겪으며 그들은 모두 ‘자유 중국’의 국적을 가졌다.
 
중국 본토는 공산당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면서 본토를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일부 중국국적을 취득하여 산동성 등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긴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은 대만 국적을 가졌다.

이들 중 한국 영주권을 가진 화교는 1만3천여 명이고 영주권이 없는 장기거주자는 5천9백여 명이다. 이들은 중국인이 가장 성공하지 못하는 나라로 한국을 꼽으면서도 130년 내려오는 뿌리에 몸을 실은 채 한국에 사는 보람을 만끽한다. 그들은 이미 대만이나 중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포기했다. 신분은 대만인이지만 사실상 한국인이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다수여서 우리 정부에서도 이들에게는 이중국적을 부여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지만 본토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인지 진전이 없다. 현재 화교들이 가지고 있는 애로는 하나둘이 아니다.
 
외국을 여행할 때에는 대만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받아야 하는데 1년 이상 대만에 거주한 사람에 한해서 호적을 취득할 수 있다. 이는 화교들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압박이 된다. 한국에서의 생활기반을 버리고 일부러 대만에서 1년 이상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한 불편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 ‘대만 동포증’을 가지지 못한 화교는 중국 본토에서도 인정받지 못해 은행계좌를 개설하지 못한다. 대만과 무비자 협정이 맺어져 있는 131개국을 방문하더라도 일일이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외국에 나갈 일이 많지 않았던 구세대 화교들에게는 별 문제가 아니었으나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후손들은 비자문제가 매우 심각한 현실로 다가섰다.
 
영주권을 가진 화교들도 한국의 지방자치 선거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는 먼발치에서 바라볼 뿐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한다.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복지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이는 글로벌 시대를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자체모순이다. 130년의 세월은 화교의 정신을 한국인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받고 있는 대우에 비견하는 대우를 화교들에게도 베푸는 것이 도리요 금도다.
 
그들이 한국에서 봉사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헌신으로 봐줘야 한다. 며칠 전 우리는 해외 봉사자 1만명 시대를 열었다. 낯설고 물선 아프리카에서도 많은 원조와 봉사를 한다. 아시아 각국과의 국제결혼도 엄청난 숫자로 불어난다.
 
이런 판국에 130년 5대를 살아온 화교들에게 각박한 대우를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들에게도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한국 여권을 발급해주고, 건강보험 등 당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주는 게 우선이다. 그들의 고향은 한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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