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가계부채대책을 발표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모습. (사진=새누리당)

정부가 가계부채 해소 방안으로 내세운 국민행복기금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빚 탕감’이 가능한 수혜 대상자가 얼마나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아직까지 정부는 수혜 대상의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 국민행복기금, 다중채무자 구제 위한 가계부채 해소 정책

국민행복기금이란 국가나 나서 가계부채의 가장 취약한 고리인 다중채무(여러 금융회사에 진 빚)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금융회사가 개별적으로 연체채권을 ‘처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금으로 여러 금융회사에 있는 채무조정 신청자의 빚을 ‘모집·조정’하는 개념이다.

지난 11일 금융위원회는 국민행복기금의 채무재조정 대상자를 올해 2월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로 확정하는 한편 은행·저축은행·카드·보험 등 제도권 금융기관의 채무뿐만 아니라 등록 대부업체의 채무도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은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18조원 규모로 국민행복기금을 조성, 다중 채무자의 빚을 50~70% 탕감해주고 연 2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 대출로 바꿔줄 계획이다.

이에 따른 ‘금융대사면’의 대상자가 최소 40만여명에서 최대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금융권은 관측하고 있다. 이는 최소와 최대 추정치 차이가 무려 4배가량 된다는 점에서 현 경제의 가계부채 문제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으로 채무를 조정할 대상으로 2월말 기준으로 6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1억원 이하 채권으로 정했다.

우선 대상은 은행, 카드·할부금융사, 저축은행, 상호금융사, 보험사 등의 연체채권이다. 여기에 자산 100억원 이상 대부업체의 6개월 이상 연체채권과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들인 상각채권(금융회사가 손실처리한 채권)도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12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은행연합회와 NICE 신용평가정보의 자료를 인용, 지난달 15일을 기준으로 제도금융권에서만 6개월 이상 연체자가 모두 94만2348명(연체잔액 15조6560억원)인 것으로 집계했다.

금융기관별로는 은행 연체자가 21만1332명(3조920억원)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이어 신용카드사 17만5315명(9560억원), 보험사 5만7379명(4400억원), 협동조합 12만1328명(7조5110억원), 캐피탈사 18만8866명(1조6180억원), 저축은행 18만8128명(2조380억원) 등 순으로 조사됐다.

이는 제도금융권이 아닌 대부업체 연체채권이나 캠코의 65만명분의 상각채권은 포함되지 않은 추정치다. 제도금융권에 외면 받거나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채무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기대는 대부업체의 연체율이 매우 높아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수십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도금융권에 대부업체 및 캠코의 상각채권 등을 모두 포함하면 채무조정 대상자가 200만명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에는 다중채무자가 중복으로 집계되고 채무조정 대상이 아닌 1억원 초과 연체자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각종 금융기관 등에서 빚진 다중채무자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한 실태를 아직 파악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속한다.

이에 따라 실제 채무조정 대상자는 통계상의 연체자 숫자보다 상당수 정도 적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다중채무 연체자 수는 중복으로 계산돼 과다계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다중채무자를 고려하면 ‘국민행복기금’으로 채무조정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40만명을 약간 웃돌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에 6개월 이상 연체한 고객이 20만여명에 달하고, 대부업체 등 비제도권 금융회사의 6개월 이상 연체자 가운데 제도권 금융기관과 중복되지 않은 연체자는 9만여명이라는 추론을 토대로 한 수치를 본 결과다.

또한 매각이나 상각된 채권의 연체자도 수십만명에 이르나, 실제 채무 재조정이 가능한 대상은 14만명 정도라는 추산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 성실 상납자에 대한 역차별 논란…‘빚 탕감’ 하려다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도

이런 가운데 국민행복기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성실하게 채무를 상환하고 있는 사람들은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이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의 한 누리꾼은 “적은 부채를 가진 성실한 세금납부자가 결국 흥청망청 쓰다가 신용불량의 덫에 걸린 사람한테 졌다”며 “연체자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이자를 감면해주는 방법이 더욱 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정부가 개인의 빚을 해결해주는 양 나타나는 모습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돈을 빌렸으면 갚을 의무는 개인에게 있는데 마치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나서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언젠가는 정부가 빚을 갚아주겠지’ 하는 식의 풍토가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우려는 즉각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문제다. 지난 7일 조원동 청와대 경제 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국민행복기금이 곧 나오는 것을 앞두고 미리 비싼 자금을 빌려놓으려는 행태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권추심회사들 역시 최근 채권 회수율이 많이 떨어진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정부는 현재 국민행복기금으로 촉발된 도덕적 해이, 성실 상납자와 다중채무자의 역차별 논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을 일괄매입하는 금융회사의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키고, 정상적인 대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일각의 걱정 어린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기금의 건전성 악화에 따른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까지 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2일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행복기금은 기본적으로 신용회복기금의 가용재원과 차입금, 유동화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것”이라며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신용회복기금의 경우 안정적으로 수익성을 확보하고 있어 (행복기금의) 부실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박원석 진보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를 통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 내정자는 “행복기금 운영 과정에서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출을 취급한 금융기관도 일정부분 손실을 분담하도록 하는 구조를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행복기금과는 별도로 금융권이 자율적으로 채무자의 채무부담을 완화하는 자체 프리워크아웃도 지속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재조정을 신청하고 원금 탕감을 받았는데도 계획을 이행하지 않는 등 상환의지를 보이지 않는 신청자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준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특별한 사정없이 재조정된 원금을 안 갚는 경우 연체이자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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