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27(수) 현재, 서울, 대전, 경기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기초 단위 선거구획정안이 시·도의회에 제출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성정당과 정치인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선거구를 불법·편법적으로 분할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 우려스럽다.

경기도의 경우,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종전 3인 선거구 68곳을 58개로 줄이고, 2인 선거구는 80곳에서 87개로 늘리는 등의 안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17대 국회 때 도입한 기초의회 중선거구제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그나마 4인 선거구를 부활시킨 대구나, 종전과 같이 4인 선거구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광주의 경우에도 기성 정치인과 정당의 반발로 시·도 조례 개정 과정에서 원안이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 국회는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를 왜곡하고, 거대 유력 정당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구획정을 추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난 2005년, 제4회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17대 국회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각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소수 정당과 정치신인의 진출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기초의회 중선거구제 도입을 결정했지만, 동시에 ‘2인 선거구’의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시작부터 그 의미를 퇴색시켰다. 실제로 2006년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위원회에서 제출된 안을 살펴보면, 기성정치인과 정당의 영향 하에 2인 선거구가 40%, 3인 선거구가 42%를 차지했고, 4인 선거구는 18%(16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2005년 각 지역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시했던 안들마저도 시·도 의회의 조례 개정 과정을 거치면서 개악되었다는 점이다. ‘새벽 날치기(대구시의회, 한나라당)’, ‘버스안 날치기(경상남도의회, 한나라당)’ 등 ‘4인 선거구를 2인 선거구로 분할’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었다. 결과적으로 광주를 제외한 모든 시·도 의회에서 선거구획정위가 제안한 4인 선거구안은 분할되어 아예 사라지거나 대폭 축소되었고, 원안대로 선거가 치러진 4인 선거구는 161개 중 39개에 불과했다.

시·도 의회에서 자행된 기득권 세력의 구시대적 행태에 대한 지역민들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지방선거제도를 입법한 중앙 정당의 어느 누구도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중선거구제 도입으로 실현하고자 했던 신진 정치세력의 진출은 좌초되었고, 지방정치는 여전히 견제와 균형이 깨진 채로 일당독점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2006년 지방선거 이후 ‘중선거구제와 선거구 획정’에 대한 여러 실증적인 연구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2005-6년도에 걸쳐 기초의회 선거구 획정과정에서 벌어진 사태들이 올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은 다분하다. 벌써부터 ‘4인 선거구 분할’ 등을 통해 신진 정치세력의 진출을 가로막기 위해 장벽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기왕에 기초의회 중선거구제를 도입한 이상, 국회는 입법취지가 왜곡되지 않고, 중선거구제의 긍정적인 면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손질을 해야 할 것이다. 우선, 공직선거법 26조를 개정하여 4인 선거구 분할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날치기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나아가 선거구획정위원회의 획정 단계에서부터 2인 선거구가 남용되지 않도록, ‘최소한 3인으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2인 선거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기성정당의 나눠먹기식 선거구 획정을 넘어설 수 있다.

2월 19일이면 기초의회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된다. 예비후보등록이 시작되면 선거구 획정안을 수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는 지난 2006년 초,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4인 선거구 분할’을 되돌리기 위해 당시 열린우리당 등 4당이 ‘선거구 획정 권한을 중앙선관위로 이양할 것’을 합의했다가 불발에 그치고 말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이제 여야 정당은 지난 4년 지방자치의 폐단을 돌이켜보고, 지금 당장 개혁해야할 제도적 과제가 무엇인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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