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어디를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닌다. 컴퓨터 무료백신을 나눠줄 때부터 청춘콘서트를 진행하고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나설 때까지 온통 ‘안철수’는 화제의 중심인물로 등장했다.

시장후보를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서울대 교수직을 과감히 내던지고 출사표를 내민 것도, 문재인과의 치열한 기 싸움 끝에 결국 대선을 포기한 것도 모두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처음에는 그의 행보에 기대 반, 지지 반의 태도를 보였던 국민들이 나중에는 거듭되는 양보와 불투명한 언어구사에 머리를 돌리면서도 그래도 미련이 남아 또 한번 돌아보았으나 끝내 그는 훌훌 떠나고 말았다. 성급한 이들은 이제 안철수는 정치복귀가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빈둥빈둥 놀다가 돌아오면 ‘안랩’을 활성화시키거나 대학에서 후진양성이나 할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는 달랐다. 안철수의 불길은 아직 꺼진 것이 아니라고 봤다. 그것은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맛보기로 선을 보이다 말았기에 새로운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보궐선거가 그에게는 기회를 줬다. 4월24일 실시될 보궐선거 지역은 서울 노원병, 충남 청양 부여, 부산 영도 세 군데다. 안철수는 잽싸게 서울 노원병을 점찍었다. 가장 충격에 휩싸인 측은 국회의원직을 잃은 노회찬의 진보정의당이다. 지난 번 총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하여 여당인 새누리당을 더블 스코어로 이겼던 노회찬은 촉망받던 진보정치인으로 잘 나가다가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발이 묶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 자기 선거구에 부인을 내세우기로 전략을 폈으나 느닷없이 밀어닥친 안철수 해일에 떠밀려갈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제일야당인 민주통합당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총선에서는 야권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진보정당에게 후보를 양보했으나 이번에는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던 판에 안철수에게 허를 찔린 셈이다. 민주당 지역위원장 이동섭은 정치학박사로 대학 겸임교수를 하고 있는 중진인데 이번에는 아예 무소속 출마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나섰다.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여 단일화를 이룩해준 안철수에게 보은의 선물로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이동섭의 각오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새누리당은 아직 이렇다할 의사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회의원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민심의 향배를 엿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현직의원인 홍정욱이 스스로 정치은퇴를 선언한 덕분에 경찰청장을 역임한 허준영이 어부지리를 얻어 후보가 되었다. 그러나 야권 단일화 후보인 노회찬을 꺾기는 역부족이어서 분루(憤淚)를 삼켜야 했다.

이번에 재기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날쌔게 예비후보로 활동하고 있으나 새누리당에서는 이준석인가 하는 젊은이를 거론하는 등 결정을 미루고 있다. 너도나도 모처럼 눈앞에 펼쳐진 국회의원 배지를 두고 눈에 쌍불을 켜고 있지만 선거의 결과는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충남 청양 부여에는 충남지사 출신의 이완구가 새누리당으로 나오겠다고 하며 부산 영도에는 박근혜 선거대책본부장으로 큰 공을 세운 김무성의 후보설이 ‘무성’하다.

세 선거구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안철수가 등장하는 서울 노원병이다. 다른 선거구는 아무 말이 없는데 유독 여기만은 안철수가 ‘출마해서는 안 되는 선거구’라고 폄훼하는 말이 많다. 주로 진보진영을 두둔하는 이들이 앞장서고 있지만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모두 나름대로의 이론을 내세워 안철수 배제를 주장한다.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는 그의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부산에서도 선거구가 비었는데 고향으로 내려가 새누리당 강자인 김무성과 맞붙어야 한다는 얘기다.

참으로 그럴까. 필자는 안철수를 잘 모른다. 지지한 일도 없다. 그러나 그가 어떤 선거구를 택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할 이유가 도대체 없다. 그가 정당에 속한 인물이라면 당의 명령에 따라 선거구가 정해질 수밖에 없지만 현재는 일곱 자 막대기를 휘둘러도 걸릴 게 없는 무소속이다.

오히려 지연 따라 고향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지혜에 속한다. 더구나 그는 앞으로도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사람이다. 대선을 겨냥한 정동영, 정세균, 정몽준 등은 지역구를 서울로 옮겼고 노무현 이회창 등도 서울을 선택한바 있다. 안철수는 난생 처음 국민의 선택에 몸을 맡기는 처지다.

안철수가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야권 단일화 논의에 빠져든다면 더 이상 안철수는 없다. 비록 대선에 비하면 손바닥만한 선거라고 얕볼 수도 있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그동안 기대했던 국민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태도다. 그런 의미에서도 안철수의 선거구 선택에 대해서는 어떤 강요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에 보장한 자유 평등의 원칙 하에서 공명정대한 선거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누가 당선하느냐 보다 어떻게 페어플레이를 펼치느냐를 국민은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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