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중도금대출 연체율 1년 만에 2.5배 상승


정부가 가계부채 해소를 위해 마련한 국민행복기금이 대대적인 ‘채무 탕감’을 해줄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2.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지불해야 하는 중도금과 이주비 등을 단체로 빌리는 것을 말한다. 이들 집단대출자의 1인당 평균 대출금은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사이다.

특히 집단대출 잔액이 19조원인 농협은행의 연체율은 이달 중순 3.5% 가까이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 말 1.4%이던 연체율이 1년 만에 2.5배로 뛰어오른 것이다. 집단대출 잔액이 23조원으로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연체율도 같은 기간 2.2%→2.9%로 급등했다.

농협과 국민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을 합치면 42조원으로 이는 은행권 전체의 약 40%를 차지하는 큰 금액이다. 이들 두 은행이 평균 연체율(1월 말 기준 2.0%) 상승을 이끌었다.

은행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집단대출 연체율 상승의 결정적 원인은 집값 하락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최근에는 새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에 따른 부채 탕감 지원대책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일선 창구에서 대출자들이 ‘돈을 안 갚고 버티다 보면 정부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며 배짱을 부리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도 “지금 대출금을 갚고 입주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하우스푸어’ 대책에 집단대출까지 포함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더구나 대책이 나오더라도 대출금 감면은 아니라는 게 그간의 공식 견해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전날 인사청문회에서 “하우스푸어는 채무 불이행보다는 유동성 위험이 더 커 만기연장이나 장기 분할상환으로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빚을 안 갚고 버티는 세태는 다른 대출자는 물론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지난 1월 말 123만9000명이다. 이 가운데 6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이 112만5000명으로 90.8%를 차지한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의 채무 장기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에는 114만명이 신청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30만명(26.3%)이 중도에 탈락했다.

연체 기간이 길어지고 상환 포기가 속출하는 배경에도 새 정부의 연체 채무자 구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한몫했다는 게 정설처럼 됐다. 이는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대출금의 50~70%를 깎아주고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는 소식에 ‘빚을 안 갚는 게 상책’이라는 심리가 확산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채무자의 버티기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국가 경제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구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실행에 속도를 내려다보니 기금으로 연체 채권을 사들이는 기준과 절차 등을 놓고 지나치게 압박한다는 비판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정부 주도의 채무 감면이 빚을 성실하게 갚아나가는 채무자나 아예 빚을 질 능력이 되지 않는 극빈층을 역차별한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신 내정자는 청문회에서 국민행복기금과 관련해 “일부 역차별 요소는 분명히 있어 마음이 무겁다”고 인정하면서 “사회보장 차원에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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