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강 회장의 사의 표명에 대해 금융가에선 '올것이 왔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동안 주요 금융지주 회장 및 금융공기관 수장들은 정권의 '시그널'을 기다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정권 초기에 금융 CEO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았다.

박근혜 정부는 알아서 자리를 비켜줄 것을 기다렸다. '국정 철학 공유'나 '임기보장은 없다'는 발언 등으로 은근한 압박을 가했다.

명확치 않은 '시그널'에 금융기관 CEO들은 기다렸다. 하지만 MB맨의 대표주자 격인 강만수 회장이 임기 1년여를 앞두고 자진 사의를 표하면서 '시그널'이 명확해졌다.

임기 만료가 임박한 경우는 자연스럽게 교체될 것으로 보이고 1년여 임기가 남은 CEO들은 입장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MB맨 대표주자..강만수 사의 표명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은 28일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를 지냈고 기획재정부 장관도 역임했다.

대통령실경제특별보좌관을 거쳐 산은지주 회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을 세운 핵심 인물이다.

강 회장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철학을 함께 할 인물을 뽑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인사는 철저히 배제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반면 강 회장은 임기 도중 자진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라고 다짐했다.

직접적인 정권의 사퇴 요구는 없었다. 다만 감사원이 산업은행에 대해 강도높은 감사를 벌였고 강만수 회장의 업적이었던 다이렉트예금을 역마진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산은지주 민영화 실패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됐다. 여기에 더해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금융 CEO의 임기를 보장할 수 없다'고 간접적인 압력도 가했다.

전방위적인 압박에 강 회장은 결국 자진 사의를 표했다. 강 회장은 지난 26일 주주총회를 마친 뒤 사퇴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 회장은 내년 3월까지 임기가 예정돼 있다.

강만수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MB맨으로 불리는 금융지주 회장은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등이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전 회장도 MB맨으로 분류되지만 이미 현직에서 물러나 중국에 머물고 있다.

어윤대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문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로 40년 가까이 절친한 교분을 맺고 있다.

이팔성 회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에 서울시향 대표로 취임했고 선거캠프 경제살리기 특위에도 참여했다.

강 회장의 사의 표명은 어윤대·이팔성 회장의 행보에도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윤대 회장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모습이 예상된다. 어 회장은 오는 7월이 임기 만료다.

차기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회장추천위원회는 이르면 다음달 초 결성되며 회장 선임과정은 2~3개월여가 걸린다.

어 회장이 조기에 사의를 표해도 차기 회장 선출 과정에 2~3개월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임기 채우기가 무난할 전망이다.

이팔성 회장이 애매하다. 이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로 강만수 회장과 비슷하다. 우리금융 내부에선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팔성 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와 우리카드 분사, 서민금융 활성화 등 내부 살림 챙기기에 집중하고 있다.

강만수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다른 금융 공기업 및 금융기관 CEO들도 좌불안석이다.

MB맨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다수고 MB맨으로 분류되진 않아도 정권 교체기에 인사 수요를 감안하면 자리 비켜주기가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당장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 오는 7월 임기가 도래하고 11월엔 장영철 자산관리공사 사장 임기가 만료된다.

내년 2월과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용환 수출입은행장과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의 거취도 관심사다.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사장의 임기는 내년 8월이며 서종대 주택금융공사 사장의 임기는 내년 11월이다.

기술보증기금과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전임 사장들이 모두 정권 교체기에도 임기를 채웠던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도 재연될지 미지수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교체설까지 나온다. 김 총재의 임기는 내년 3월이다. 한국은행은 독립성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임기 중 총재가 교체된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MB맨이란 꼬리표 탓에 김 총재도 퇴진 수순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안팎에서 제기된다.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이사장직을 연임하면서 1년 연임을 택했다. 통상 2년 임기를 보장받는데 1년 연임을 선택해 정권 교체 후 자연스러운 임기 만료를 선택했다.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사업인 국민행복기금의 초대 이사장에 낙점되면서 부담을 덜었다.

금융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자마자 사의를 표한 김석동 위원장이나 권혁세 금감원장, 전광우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등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며 "정권 교체 후 인사 수요를 감안하면 공기업 CEO들에 대한 자진 사퇴 압박을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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